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돌돌 Nov 27. 2023

너무 아픈 사랑이 아니었으면

그녀와 여행을 한 후 우리는...


1988. 2. 19. 금


어젯밤 신새벽까지 도라도란 대화를 나눌 때 웃목에 자는 후배의 미미한 몸뒤채임이 있었다. 우리는 아무 얘기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머리는 몽롱했고 정신은 명료했다. 제일 먼저 눈이 마주친 것은 그녀였다. 어젯밤 그녀와 기억을 떠올리니 부끄러움이 먼저 앞질러 갔다. 아마 그녀도 낮달같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우리 둘은 그날 아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어젯밤 심연 깊이 나눈 우리 둘만의 밀어 때문이라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후배 어머니가 가마솥에 물들 데워 주셨다. 후배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아궁이 옆에 웅크려 매운 생솔가지를 지폈을 것이다. 우리는 덕분에 한 겨울이지만 따스한 물에 세수를 할 수 있었다.


개다리소반에 아침밥을 차려왔다. 고봉밥이었다. 후배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어촌의 환경이어서 그랬을까.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이 많았다. 맛있는 바지막 무침이 올라왔고 긴 맛조개를 넣고 끓인 된장국이 올라왔다. 된장국은 최고였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어선에 올랐다. 후배의 아버지가 어선을 움직였다. 우리는 어선을 타고 광활한 바다를 달렸다. 우리가 내렸을 때 옆에는 해변가가 길게 휘돌아가고 있었다. 그녀와 나는 그곳에서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했다.


처음으로...

그녀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35년이 지난 일기장에는 네 잎클로버가 색이 바래 있다



1988. 1. 24. 월


오늘은 창립법회날이다. 안양에 있는 대안사에 갔다. 거기 영숙이가 있었다. 몇 개월 만에 처음 본 것 같았다.  영숙이는 가정형편상 수원에 있는 삼일실고 야간을 들어갔다. 대화 도중 영숙이가 내게 잠간 바깥에서 보자고 했다.


영숙이는 내게 대나무 바구니를 건넸다. 그 바구니 안에는 색깔이 들어간 은박지로 곱게 접은 종이학과 종이별이 가득 섞여 있었다. 그리고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내가 못 받겠다고 멈칫하자 영숙이는 받으라며 내 손에 바구니를 안겨 주었다.


영숙이는 낮에는 하루 종일 공장에서 8시간 동안 천을 짜고 밤에는 야간 수업을 받는다고 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데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면서 정성껏 접은 종이학과 종이별을 그것도 초콜릿과 함께 건네준 것이다.


내가 그 초콜릿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내 마음에는 사실 영숙이가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이미 내 안에는 그녀가 들어와 외로운 풍차를 돌리고 있었다.


문득 그녀가 초콜릿에 대해서 물으면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88. 1. 30. 토


모레가 개학이다. 개학과 동시에 시험이다. 7과목 보는 가운데 내가 공부한 것은 국영수 3과목이었다. 내게는 전공과목보다 대입이 우선이었다.


괴테는 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사랑을 하면 할수록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인 공허는 어떻게 할까. 무엇으로 채울까.  


사람들은 어려서 사랑을 모른다고 하지만 어리니까 사랑이 더 아프다는 것을 알까.



1988. 1.31. 일요일


오늘도 반월에서 과천 가는 첫차 직행버스를 탔다. 군포역에서 그녀가 탔다. 그녀 옆에는 그녀 친구 두 명이 있었다. 그중 명순이는 얼마 전 양명여고 후기에 최종 합격을 했다.


오후 2시에 도서관을 나왔다.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대공원으로 향했다. 꿈돌이 놀이동산이 멀거니 보였다. 그런데 그녀와 그녀 친구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타자고 했다.


나는 롤러스케이트를 타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성화의 의해 어쩔 수 없이 롤러스케이트를 신었다. 중심 잡기도 힘들었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 안에 들어갔을 때 신명 나는 음악이 흘러나왔고 스케이트장처럼 노선을 빙글빙글 돌면서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나는 연신 넘어졌다. 내가 넘어지는 것만큼 그녀와 그녀 친구들은 해맑게 웃었다.


버스를 잘못 타서 잠실에 갔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내 옆에는 그녀가 앉았기 때문이다. 서울의 잠실은 과천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한적했다. 다만 잠실 도로가 조금 넓었을 뿐이었다.



1988. 1. 25 금.


공중전화에서 10원 가지고 시외통화를 했다. 거는 방법을 후배가 알려주었다. 의외로 간단했다. 10원짜리를 동전 투입구에 넣고 수화기를 한번 툭 치면 끝이었다. 삐 소리와 함께 전화를 걸 수 있었고 10원은 계속 깜박이고 있었다.


하지만 몰래 하는 전화여서 마음이 켕긴 것도 사실이다.  



1988. 2. 7. 일.


독서실에 도착했다. 독서실 총무한테 그녀를 불러달라고 했다. 우리의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우리는 어떠한 인연으로 만났고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불교의 연기론을 보면 옷깃만 스치는 것도 삼천겁의 연분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녀와 나는 전생에서 얼마나 많은 인연이 있었을까.


사실 나는 종교를 떠나 신을 믿지 않는다. 궁합이나, 연분, 토정비결, 사주팔자 다 마찬가지다. 이것은 불확실한 믿음을 전제로 인간의 나약한 마음에 파고들어 가 돈벌이를 해보겠다는 비열한 자들의 속세의 저속한 욕망이라 생각을 한다.


나는 이런 운명에 절망하느니 차라리 숙명이라 받아들이고 굳게 헤쳐 나가리.



1988. 2. 8. 월


안양에 있는 대동서림에 갔다. 5.18 민중항쟁 책에 연신 시선이 갔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5.18 광주 폭동은 잘못되었다고 한다. 폭도가 아니고 민중항쟁이었다고 한다. 계엄군이 쏜 총에 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사실일까. 그렇다면 억울하게 사멸한 목숨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밤 9시 50분에 그녀를 만났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1988. 2. 10. 수


오늘은 학교 졸업식이다. 졸업은 인생의 종지부가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한다. 내년도 내가 졸업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나는 사실 지금 이대로가 너무나 좋다. 왜냐하면 내 옆에는 사랑하는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1988. 2. 14. 일. 맑음


아침 4시에 일어났다. 첫차 97-1을 타고 호계동에 갔다. 친구 영훈이를 만났다. 과천도서관에서 그녀를 만났다. 내게 발렌타인데이라고 유리병에 든 초콜릿을 선물해 주었다.  


도서관을 나와 그녀와 함께 과천에서 군포까지 걸어왔다. 다리가 뭉근했지만 그녀와 걸어서 내 마음에는 맑은 강물이 흐를 뿐이다.



1988. 2. 16. 화. 맑음


후배 현충이가 그녀한테 책을 선물했다. 그녀가 버스에 오를 때였다. 그녀는 받기 싫은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받아도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못 이기는 척하며 말없이 받았다. 후배는 부담 없이 주는 책인데도 받지 않으려고 한다며 그녀가 내게 푹 빠졌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그녀가 나한테 빠진 게 아니고 내가 그녀한테 빠진 것이다. 다만 그것을 후배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녁에 다시 군포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내게 물었다.


- 오빠, 남이 주는 선물 거절하면 몰상식한 거야?

- 몰상식한 것은 아니지만 맹목적인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불편할 것 같아. 하지만 후배가 준 선물은 내 앞에서 준 거니까 마음 편히 받아도 될 것 같은데...



1988. 2. 18. 목


오늘은 현충이 자취방에 갔다. 나와 내 친구 인식, 그녀와 그녀 친구 희순이, 그리고 후배 현충이 다섯 명이 방에 뺑둘러 앉아서 10원짜리 민화토를 쳤다. 내가 180원을 땄다.


그다음 윷놀이를 했다. 그녀가 갑자기 '오빠, 이거 맥주 사 오기야'하고 농담 섞인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게임에서 진 인식이와 현충이가 잠간 나갔다 오는데 손에는 맥주 두병과 오징어땅콩 과자가 들려 있는 것이 아닌가.


맥주 한 병에 1잔씩 돌아갔다. 두 번째 병을 땄을 때는 그녀가 취한 것 같다고 말을 했다. 내가 조금 마셔주었다. 그녀가 졸리다고 했다. 우리는 후배의 방에 나란히 누웠다.


술에 취해서였을까. 그녀는 신열에 들떴다. 몸이 뜨거웠다. 나는 그녀의 귀속말로 '사랑해'라고 속삭였다. 그녀도 내 귀에 '나도 오빠 사랑해'하고 화답했다.


후배 집에서 나올 때 가슴이 떨렸다. 나는 길거리에서... - 이 뒤에는 지워져 있었다. 둘은 무엇을 했을까. 그리고 왜 지웠을까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졌다. - 그러자 그녀는 '아니 오빠는?' 나도 '아니' 했다. 우리 사이에 또 다른 비밀이 자라고 있었다.




 1988. 2.28. 일     


오후 2시에 도서관을 나왔다. 서울대공원 방향으로 그녀와 함께 길을 걸었다. 그녀와의 여행은 우리 둘 사이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오늘 그녀는 내게 말했다. '오빠의 단점까지 좋아하고 싶다고.' 그때 그녀의 두 손이 내 오른팔을 끼고 있었다.


둘이서 맹세했다. ‘변하지 말라. 변하면 쓸 수 없다’는 상월원각대조사법어의 말처럼 정말 우리 이 마음 변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정말 공부 열심히 하자고 했다. 그것이 세인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는 길이고 그녀와 내가 서로 우리에게 이르는 길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누가 봐도 아직 어리다. 남들이 만약 이 일기장을 본다면 어린것들이 경솔하다며 숱한 비난을 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내일모레면 어느덧 고3이다.


이 세상에는 상식적인 삶의 패턴이 너무 많다. 하지 말라는 금기 사항도 너무 많다. 학생이니까 공부하라고 한다. 연애는 대학에 가서 해도 늦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런가. 왜 그런 상식적인 패턴에 주저앉아야 하는가.  


중 3 때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다. 바로  조용필의 자서전 '초혼의 노래'였다. 그는 노래에 미쳐 고등학교 3학년 때 수업료로 음악학원 다니고 그것이 적발되자 누나는 택시 안에서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조용필은 끝내 꿈을 이루기 위해 고3 때 가출을 했다.


내 나이가 조용필이 가출한 나이다. 조용필은 상대의 손가질이나 비방의 눈짓에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고 가시밭길을 꾸준히 걸었다. 그것이 그를 우리나라의 최고의 가수로 만든 기폭제였을 것이다.


나는 조용필을 좋아한다. 가수로서 좋아하지만 인간적으로 더 좋아한다. 자살을 기도할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그 열정을, 혼이 그 팔색의 가창력을...






1988. 2.29. 월     


2월의 마지막이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수학 강사 님하고 빵 사기 오목을 두었다. 3승 1패로 내가 이겼다. 아마 그 강사님은 내가 한 번도 진적이 없는 재야의 오목 고수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학원 아이들과 함께 빵집에 갔다. 강사님은 다양하게 빵을 주문했다. 그러데 빵을 사는 강사님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문득 강사님이 일부러 빵을 사주기 위해 오목을 져 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승패를 떠나 학원 강사가 고3학생한테 오목으로 이겨서 빵을 얻어먹는다는 것이 아마 성격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정작 오목 내기에서 진 것은 나였다.      


밤 열 시에 도서관에 도착했다.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내년에 멋진 대학생이 될 수 있을까.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만약 대학에 떨어지면 어떡할까. 만약 합격을 했는데 아버지가 학비를 대주지 않으면 그때는 결국 대학에 대한 피나는 노력은 가닿을 수 없는 꿈의 항구로 끝나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노력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이전 03화 젊은 우리 사랑은 어디로 흘러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