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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Mar 29. 2021

볏짚단 별곡

살아가는 이야기


인동을 앞둔, 삼엄한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아침에 이웃집 친구인 종필이가 우리 집에 온 것은 방학숙제를 같이 하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연탄을 때고 있었다. 연탄 난방은 화력이 좋지 않았고 게다가 웃풍이 심한 집이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윗목에 떠놓은 자리끼마저 살얼음이 얼 정도의 추위에 몸을 저며야만 했다. 


우리 집에서 방학숙제를 하던 그가 추위에 옴짝할 수 없었던지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다며 차라리 들녘에 나가서 불을 지펴 몸을 녹이자고 했다.


친구와 나는 고샅길 남새밭을 지나서 논두렁길을 거닐었다. 대지에는 공평하게 칼바람이 불고 있었고 우리는 연신 옷깃을 여몄다. 마을을 벗어나 재 넘어까지 걸어갔다. 논에는 가을에 추수한 볏짚단이 정교하게 적재되어 하늘과 키재기를 하고 있었다.


먼저 우리는 꽁꽁 언 손을 녹이기 위해 볏짚단 몇 단을 꺼내 짚북데기로 쌓아 불을 지폈다. 짚북데기는 삽시간에 활활 타올랐다. 


이번에는 더 크게 짚북데기를 만들어 불을 놓았다. 한기가 가시는 듯했다. 그때 문득 불에 손을 쬐던 종필이가 뜬금없이 말을 건넸다. 


“저렇게 많은 볏짚단에 불을 지피면 얼마나 따스할까?” 


볏짚단은 집채만한 높이로 쌓여 있었다. 그는 볏짚단이 수확을 하고 남은 부산물이기에 쓸모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가 아무렇지 않은 듯 대궐같이 쌓아놓은 볏짚단에 성냥을 그었다. 볏짚단은 불꽃처럼 후드득거리며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길은 거센 바람을 타고 어느새 커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섬광처럼 하늘로 치솟았다. 


우리는 치솟는 불길을 보며 마음껏 환호성을 지르고 탄성을 자아냈다. 그리고 이웃해 있는 집채만한 볏짚단에도 불을 놓았다. 불은 하늘과 땅의 경계를 허물면서 온통 세상을 붉은 빛으로 물들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뒤에서 '이 놈들' 하는 땡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다보니 동네 논 주인 두 분이 바지랑대를 손 머리에 들고 쫓아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혼비백산해서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다. 얼마나 뛰었을까. 이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런데 논 주인은 어느새 우리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논두렁에 발을 헛디뎌 내 몸은 허공 중에 맴돌더니 미끄러지면서 결국 논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다시 일어나 달렸다. 발을 삐었다. 절뚝거리며 달렸다. 하지만 멀리 가지 못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낮은 언덕배기 아래에 몸을 숨기는 일이었다. 나는 닭처럼 모가지만 조아리고 숨어 있었다. 주인이 내 목덜미를 후려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이 놈아, 도망가면 안 잡힐 줄 알았냐?’ 고랑진 주름살이 깊은 논 주인은 독사처럼 퍼렇게 불타올라 있었다. 


고물상 드럼통에 숨어 있던 친구 종필이도 내가 잡힌 것을 직감하고는 모습을 드러냈다. 논 주인은 볏짚단이 다음 해에 거름으로 이용할 퇴비라며 우리들 학교와 이름을 묻더니 배상을 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또 지금 사는 집으로 가자며 우리를 앞세웠는데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도살장 가는 기운처럼 두려움이 엄습했다.


종필이네 집에 다다랐을 때였다. 논 주인이 우리 앞에서 대문을 열자 종필이가 나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도망가자’ 부모님한테 혼나는 것이 무서웠던 우리는 다시 줄달음질 놓기 시작했다. 주인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아니, 집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를 따라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몇 시간을 배회하다가 종필이와 헤어져서 집에 왔다. 음울한 밤이었다. 혼이 날 생각에 가슴이 간동 간동하여 수심만 볏짚단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정작 오늘의 일이 과거로 소급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기가 밀려왔지만 어머니한테 밥 달라는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다음 날 저녁이었다.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하신 아버지가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시자마자 나를 찾았다. 나는 감응적으로 직감했다. 종필이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가 친구사이였고 가끔 읍내에서 술잔을 기울인다는 것을 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날 나는 아버지한테 심한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다음 날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나를 종필이네 집으로 데려갔다. 그 집은 아침 식사를 하고 계셨는데 반찬으로 굴비가 올라와 있었다. 아껴두었던 굴비인데 논 주인집에 가져다 주기 전에 맛이라도 보기 위해 화덕에 구웠다고 했다. 


우리들은 아버지들의 뒤를 따라 논 주인집으로 향했다.  논 주인집에 가는 길은 흡사 저승길 가는 기분이었다. 논 주인집에 도착했을 때 종필이와 나는 풀이 죽어 엉거주춤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고 아버지는 아이들이 철없이 저지른 일이니 용서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논 주인은 요지부동이었다. 가져간 굴비마저도 물리면서 일체의 대화를 거부했고 배상을 요구했다. 오히려 아버지만 연신 계면쩍은 모습을 지었다.  


논 주인은 손해 배상액으로 12만 원을 요구했다. 그때 내 등록금이 3만 원이 조금 넘는 시절이었다. 정작 큰돈이었다. 종필이네와 우리 집에서 6만 원씩 도합 12만 원을 물어주어야만 했다. 


세월은 모든 것을 퇴락시키며 잊게 한다. 그런데도 벌써 30 년이 훨씬 지난 일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은 과거에 대한 막연한 기억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그저 혼나는 것이 싫었을 뿐 부모의 고마움을 폐부로 느끼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느티나무처럼 마을 평상을 부리시던 아버지가 그립다. 주자십회에 보면 불효 부모 사후회(不孝父母 死後悔)라는 말이 나온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다음에 후회한다는 말이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고 어느새 나도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오늘따라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리운 것은 아버지 떠난 그 빈자리에 어느덧 공허함만이 남아서 사위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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