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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Mar 24. 2021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살아가는 이야기

                                                                                                              



요즘은 소록도와 관련된 책을 읽는 빈도수가 높아지고 있다. 문호준 작가의 '군도의 아침'이나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그리고 소록도 역사와 관련된 자료들이 그것이다. 소록도와 연관된 책을 자주 읽는 것은 내가 현재 소록도에 근무하고 있는 관계로 한센인에 대한 몰이해를 희석하고 싶고 또, 나 스스로 한센인의 삶을 재조명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다.


내가 소록도에 근무하게 된 배경은 작년 가을에 우연찮게 찾아들었다. 그 전 직장에서 획일화된 제복을 입는 계급사회 속에  칠 년 여의 반복 업무로 권태를 느끼고 있을 때, 마침 소록도병원에 지원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전 직장에서 강의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소록도 근무를 망설일 개재는 아니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조백헌 원장이 소록도로 부임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때 이미 소록도 원생들은 주정수와 사또라는 권력자들에 의해 인권침해와 탄압, 박해, 범죄와 비윤리적인 단종을 받아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조백헌 원장이 원생들의 패배감과 절망감을 체감하고 희망에 찬 소록도 낙토 만들기를 꿈꾸었지만 원생들이 경계를 놓지 않은 것도 그 연유였다.


조백헌 원장은 부임 후 원생 두 명이 섬을 탈출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의 탈출하는 일이 없도록 소록도의 유토피아를 만들려고 했다. 이에 보건과장 이상욱은 과거부터 소록도의 허무한 왕국의 건설에 대한 슬픈 역사를 몸소 경험했던 터라 진정한 천국 건설은 이루어질 수 없다며 유토피아 건설을 반대한다. 


조백헌 원장은 원생들이 의기투합하고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축구팀을 만들고자 했을 때도 이상욱은 손가락 발가락이 없는 사람들이 공을 찬다는 것은 우습고 잔인하다며 드러내 놓고 반대 주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건강인과 똑같이 싸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던 원장의 집요한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마을마다 축구공을 나누어주고 원생들한테 합숙훈련까지 시켜서 마침내 도대회에 나가 우승컵을 안기게 한다.


그런데 원장의 어마어마한 계획은 다른데 있었다. 축구경기를 보급시켜 승리를 맛보게 함으로써 원생들에 대해 자신감을 심어 준 다음 본래의 사업을 추진했다. 그것은 고흥반도 동쪽 거대한 득량만 바다를 막아 농토를 개간하려는 당찬 계획이었다.  원장은 이상욱과 황장로의 혹독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생들만의 옥토를 만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다.  


오마도의 간척사업은 허황된 망상처럼 녹록지 않았다. 먼저 원생들이 누구를 위한 천국이냐고 반대를 했고 원생들을 설득시켰을 때는 득량만과 인접한 원주민들이 문둥이와 같이 살 수 없다며 들고일어났다. 또 그들을 설득시키고 개간사업을 하는데 아무리 바닷속에 돌 둑을 쌓아도 바다 위로 땅이 떠올라주지 않았다. 급기야는 채석장 바위가 내려앉는 인명 사고까지 발생한다. 


그러면서도 원생들의 노력에 의해 가나안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어느새 땅과 바다가 모습을 바꾸어 가고 있었다. 제2의 천지 창조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해 제주도에서 점령해오던 태풍이 고흥반도를 강타하면서 다시 땅과 바다를 원형대로 바꾸어 놓았다. 남은 것은 바다에 대한 끊임없는 적개심뿐이었다. 다시 원생들이 절망을 딛고 작업을 시작했을 때 원장은 인사명령을 받고 섬을 떠난다. 


소설에서는 오마도 간척사업의 성공 여부를  끝까지 제시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끊임없이 질문만 던질 뿐이다. 작가는 소설이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의문과 질문의 과정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문학의 양상을 성실히 따르고 있다. 


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한쪽 가슴이 싸하게 아려 오는 것일까. 이 소설에 내재되어 있는 낯선 한센인들의 사랑, 믿음, 배신, 동상, 본성, 욕심 때문일까. 조원장은 어떤 인물일까. 축구팀을 창설하거나 오마도 간척사업을 밀어붙이는  추진력을 높이 사야 할까. 아니면 그보다도 원생들의 낙토를 만들어준다는 명분으로 지배와 피지배자의 질서를 이용해서 너무 원생들을 가학 한 것은 아니었을까. 


조백헌 원장과 대항하는 이상욱과 황장로 역시 너무 나태하게 그려지지는 않았을까. 주정수의 불의에 항거했던 원생들 역시 이 소설에서는 하나같이 수동적이거나 나약하게 그려지고 있다. 소설에는 정상인 서미연과 음성환자 윤해원을 결혼시킴으로써 한센인의 한가닥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한센인의 천국'을 담보할 수는 없었다. 


이 소설과 나의 카테고리를 찾는다면 내가 소록도에 근무한다는 점과 그로 인하여 원생들과 직간접적으로 대화나 소통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원봉사하러 소록도에 온 어느 여학생은 처음에는 원생이 신발끈을 매어달라고 하자 '자원봉사를 와서 신발끈까지 매어주어야 하나' 하고 처음에는 오해를 했지만 손가락이 하나도 없어 신발끈조차 맬 수 없는 원생을 보고 그 여학생은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나도 소록도에 전입해 와서 원생들과 악수를 했을 때 감응적으로 놀라고 말았다. 내가 손가락이 하나도 없는 뭉툭한 손 뭉치와 악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센인 중에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없는 환자들이 부지기수다. 원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에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김 채취 강제노역을 시켰는데 개인장구인 장갑과 장화조차 보급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한겨울 찬 바닷물에서 김 작업을 하고 집에 돌아와 너무 추워 불을 쬐면 손가락에 진물이 올라 손가락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


삼 일 전에 만난 한센인 문인은 '당신들의 천국'소설에서 오마도 간척 사업할 때 원생이 동네 부녀자를 겁탈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사실과 맞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그 당시 고흥에 흉년이 들어 마을 주민들이 밥도 못 먹고 굶고 있었는데  원생들이 주민들을 오라고 해서 밥과 국을 퍼주는 호의를 베풀었다고 한다. 


그 당시 주민들이 한센인들이 밥을 얻어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원생들은 인근에 있는 녹동항 식당조차 이용할 수 없었다. 식당에 들어갈라고 하면 식당 주인이 문둥이가 왔다면서 재수 없다고, 손님 끊긴다고 내쫓았다고 한다. 원생들이 동네 마음대로 식당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지금은 소록도에 한센인 음성환자만 살고 있다. 아니 양성 환자가 발생하더라도 알약 몇 알이면 바로 한센병 완치가 가능하다. 다만 그들은 한센의 병력을 앓았던 터라 눈썹이 없거나 입술이 조금 돌아가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없어 옆에서 바라보기에 조금 불편해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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