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돌돌 May 23. 2023

소록도의 해루질은 무엇이 잡힐까

소록도에서의 해루질  



몇 년 전, 우연히 해루질을 접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신기루였다. 써치를 밝혀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조과를 떠나 정작 신명 나고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바닷속은 미지의 세상이었고 해루질은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릴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얻어지는 어패류는 덤이었다. 물때를 잘 만나 서해 태안에서 꽃게를 50여 마리를 잡은 날이 있었고 동해 대진항에서는 밤을 새워 쌀 한 가마 무게 이상의 도루묵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해루질을 이끌어 주는 동반자, 물때와 계절, 용왕님의 지원까지 삼박자를 두루 갖춰야 한다. 


해루질 나갈 때는 어부가 만선을 꿈꾸듯이 늘 만통을 꿈꾼다. 그러나 낙지 한 두 마리 정도와 소라 한 두 개 정도 잡는 날이 무수하다. 그런데 소록도 해루질은 달랐다. 출조할 때마다 제법 많은 낙지를 잡을 수 있었다. 아마도 남도 오지이고 민간인 통제지역이다 보니까 생태계의 살아있는 보고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소록도에 사는 어느 직원은 플래시 하나 들고 바다에 나가 두어 시간 만에 칠십 여마리의 낙지를 잡은 적이 있다고  했다. 사실 그 직원은 밉지 않은 약간의 전라도 특유의 허풍과 위트가 있어서 사실 그대로를 담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초자인 내가 바다에 나가 두 어 시간만에 스물일곱 마리의 낙지를 잡은 것을 감안하면 전문가의 그 직원의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일 가능성도 있다. 


소록도에서 해루질한다고 해서 무조건 낙지를 많이 잡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물색이 안 나와서 공치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물색이 나오는데도 이상하게 낙지가 보이지 않아 달랑 낙지 두 마리의 조과밖에 거두지 못하고 집에 들어온 날도 있었다. 


어제 2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해루질을 나갔다. 줄기세포 무릎수술을 하고 해루질을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환경이었다. 무릎수술은 2년 넘게 옴짝 없이 나를 가둬놓고 말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해루질에 대한 열망은 높아가고만 있었다.


내가 가본 곳 중에 낙지가 제일 많이 나오는 곳은 병원 본관 앞의 해안가다. 사실 다른 곳은 많이 가보지 않았다. 낯선 곳의 해루질은 경이로움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 두려움도 웅숭이기 때문에 늘 해루질의 신대륙을 발견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나는 바다가 그리울 때면 소록도 해수욕장을 찾고는 한다. 소록도 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이어서 바닷속이 훤히 들여다 보여서 좋다. 바닷속에 유영하는 다양한 생태계를 고찰할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작은 학꽁치들이 무리 지어 앞으로 나아갔고 어떤 때는 하모가 유영하며 다녔다. 


졸복은 군락을 이루며 떼서리로 몰려다닌다. 잘 도망가지도 않았다. 뜰채로 뜨면 물을 뿜는 소리를 내면서 배를 한껏 부풀리는데 폼이 앙증맞았다. 작아서 졸복이지만 강한 독을 갖고 있다고 했다. 과거에는 몇 년에 한 번씩 졸복을 잘 못 먹어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소록도 해수욕장에서 해루질하다 보면 운이 좋은 경우 팔뚝만 한 숭어를 뜰채로 건질 수도 있었다. 또 달덩이처럼 납작 펼쳐진 무수한 골뱅이 밭을 발견한 적도 있었다.  그 작은 골뱅이도 몸을 펼치면 달덩이처럼 커진다는 것을 바다에 나가 처음 알았다.  


오늘은 낙지가 많이 나오는 병원 본관 앞에 펼쳐진 바다로 가기로 했다. 해안가에 도착했을 때 대지의 밤공기가 농밀했다. 야릇하고도 달큼한 습도는 미미한 비린내를 몰고 왔다. 바람은 일지 않아 더없이 투명했다. 해루질하기 좋은 날씨다. 사위의 분위기는 고양되었다.  


멀리서 소록대교의 야경은 아스라했으나 형형했다. 작은 사슴을 닮았다는 소록도, 어쩌면 아름다운 소록도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신이 내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루질을 기다리는 것은 어렸을  때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드디어 가슴장화를 입고 써치를 밝혀 바다에 들어갔다. 개펄에는 갯고동이 지천에 깔려 있었고 많은 게 들이 아물아물 분주하게 움직였다. 바닷속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20여분 지났을까. 마침내 뻘밭을 기어 다니는 낙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세포들이 깨어나는 순간이다. 쾌재를 부르면서 뜰채로  떴다. 제법 씨알 굵은 낙지였다. 


그다음 잡은 것은 소라였다. 처음에는 빈껍데기인 줄 알고 지나쳤으나 등을 보이고 있는 것이 꼭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뜰채로 떠서 보니 아주 달망지고 싱싱한 소라였다. 소록도 뻘 속에서도 소라가 산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나는 탄성을 자아냈다. 제법 큰 주먹소라를 네 마리나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바닷속을 1시간 40분 정도 들쑤시고 다녔다. 해루질하는 것은 건강한 노동을 필요하다. 바다에서 나올 때는 늘 많은 체력이 소진한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가슴장화를 입고 그 위에 무거운 배터리를 짊어 메야한다. 왼손에는 써치로 바닷속을 예의 주시 해야 하고 오른손에는 흡사 여의봉 같은 긴 장대의 뜰채를 들어야 한다. 게다가 뻘이 깊은 곳은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도 버겁다.  


조과는 나쁘지 않았다. 실한 낙지 아홉 마리를 잡았고 소라도 네 마리 잡았다. 남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양태는 득템으로 잡았다. 집에 오니까 밤 열 시를 넘기고 있었다. 낙지 탕탕이를 해서 시원하게 캔 맥주 하나를 들이켰다. 해루질을 한 날은 몸이 노곤해서 숙면을 취하고는 한다. 


내일도 해루질이 가능한 물때다. 나는 내일도 등에 무거운 배터리를 메고 바다에 나가 멋진 향연을 즐길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김용철 작가 '빈집' 소설의 다양한 사랑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