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힘
이 소설은 조선인 신길만이 일제 탄압의 항거 불능으로 군에 입대하여 갖은 고생을 하다가 독일군 포로, 미군 포로, 마지막은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스탈린 정권에 의해 총살당하는 한 많은 인생의 파노라마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조정래 작가가 이 소설에서 천착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이 책에서 '언제 어느 때나 문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다'라고 서술하지만 사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시사하려고 한 인간의 탐구에 대해서는 이해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 소설은 쇄락해 가는 조선에서 태어난 신길만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불행한 수난의 삶을 살아가다 생을 마감하는 스토리를 3인칭 관찰자의 시점에서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의 근간이 되는 발단 전개 위기 결말이라는 과정보다는 현실에서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주인공 신길만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워 조선인으로서 살아간 질곡의 일대기를 시간적 진술에 의해 위기의 연속선상으로 그려진다.
- 아휴 배고파. 이러다가 총 맞아 죽기 전에 굶어 죽는 것 아니냐?
이 소설은 전운이 감도는 몽골의 관동군 부대에서 보급로가 차단되어 두 끼에서 한 끼로 배식이 줄자 사기가 꺾인 신길만의 투정으로 시작된다.
소련군의 침입으로 화염병이라는 불탄을 쏘아대고 부대원 김경두는 '사람 살려' 숨 막히는 고통 속에서 외마디 비명과 함께 불길에 휩싸여 죽고 만다. 신길만은 포탄이 쏟아지는 참호 안에서 소련군에게 군복 상의를 벗어서 흔들어 항복한다. 소련군의 포로가 된 것이다. 군트럭에 실려 사흘을 달려 도착한 곳은 몽골처럼 막막한 초원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희였다.
과거로 돌아가 신길만이 군에 지원한 동기는 사실상 일제의 강압이었다. 군에 지원을 해서 제대를 하면 면서기를 준다는 것은 사탕발림이었고 조선인을 전쟁이 없는 함경도에 배치한다는 것은 사기라는 것을 지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군에 지원하지 않으면 만주로 추방하겠다는 겁박 앞에서 흐물흐물 주저앉고 말았다. 만주에 추방당하면 집단촌에 강제 수용되어 총을 든 일본군의 감시 하에 노예처럼 강제 농사를 짓다가 허망하게 죽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소련군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신길만은 조사를 받았던 통역관한테 우리는 일본군이 아닌 조선인으로서 만주 국경까지만 데려다주면 고향을 찾아가겠고 했지만 통역관은 만주에 가기 전에 체포될 것이 뻔하고 그러면 스파이를 침투시켰다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니까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독일군이 쳐들어오자 소련군은 이제 히틀러와 독일군의 무덤을 만들 차례라며 스탈린 대원수를 부르며 처절한 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독일군의 무서운 기세로 포탄을 퍼부으면서 신길만은 결국 독일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신길만이 사흘 넘게 기차를 타고 끌려간 곳은 철도 공사장이었다. 포로수용소에서 침목을 나르고 철로를 놓는 강제 노역에 시달려야만 했다.
포로수용소에서 탈영병이 생기자 독일군은 포로들을 잠을 자지 못하도록 수시로 연병장에서 불시점호를 취했다. 수용소는 혹독한 추위보다 더 두려운 공포 분위기 속에서 수용자가 죽어나가는 것이었다. 신길만은 죽지 않기 위해 결국 독일군에 입대한다.
신길만은 프랑스 땅 노르망디 해변에서 적의 침투를 막는 방어망인 날카로운 철조기둥을 박는데 투입된다. 그리고 그해 6월 세상은 온통 폭음과 총소리로 범벅이 되고 탄약상자를 나르다가 또다시 포로가 된다. 이번에는 미군의 포로였다.
신길만은 소련군이 아니고 조선인이라고 혈서를 써서 대항하지만 극단적인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영창에 갇히고 만다. 그리고 강대국들의 배타적인 군국주의로 인하여 소련으로 송환 도중 어느 야산에서 총살당하면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소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전쟁이라는 광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원초적인 야만성에 의해 인간이 얼마나 황폐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적나라하게 파헤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끝까지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했던 신길만이 소수민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강대국에 의해 짓밟히는 불행과 비참함이 가슴 한쪽을 쥐어뜯는다.
다만 이 소설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신길만을 수동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불합리한 저항에 항거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는 나약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로 인하여 소설의 긴장미가 극도로 떨어진다.
조정래 작가는 국내의 한 방송사에서 방영한 노르망디 조선인의 포로 2부작 다큐멘터리를 보고 모티브를 얻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이 소설은 약소국에서 태어난 조선인이 얼마나 비참한 질곡의 삶 끝에 처절하게 죽어가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을 뿐 - 이 소설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 그만큼 문학성은 담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소설의 금자탑을 쌓은 조정래 작가의 작품 중 다소 아쉬움이 남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