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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May 31. 2023

조정래 소설 '인간연습', 아직 끝나지 않은 이념

독서의 힘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읽은 것은 2000년 초반, 그러니까 내 나이 30대 초반이었다.  그 소설을 읽은 후,  남과 북의 이념적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흑백이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에서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작가의 치밀한 소설적 장치에 감동을 받았었다.


그다음 읽은 책이 '아리랑'이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는 일제의 잔혹성 앞에 철저히 무너져가는 민중들의 삶 속에서 본인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민초를 괴롭히는 악랄한 친일파와 거기에 항거하여 봉기하는 의병의 존엄한 투쟁이 손에 땀을 쥐게 그려지고 있었다. 


또한, 한강변의 기적을 담은 그의 소설 '한강'에서는 오욕의 세월 속에 산업화를 이끌어 온 정부와 기업이라는 일반적 가치에서 민중의 고혈로 산업화를 이룩했다는 절대적 가치로 작가의 온당한 시선 이동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심화된 부익부 앞에서 살아남기 위한 민중의 사투는 처절하지만 감동이었다. 


이번에 읽은 소설 '인간연습'은 벌써 십 년이 훨씬 넘은 2006년도에 나왔다. '한강'에서 다루지 못한 분단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아픔을 고문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전향한 주인공 윤혁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이 소설에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작가의 말에서 '내 문학에서 분단문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소설을 지었다'라고 고백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론의 이상향인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왜 성공할 수 없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진다. 


해방이 되고 많은 식자층에서는 사회주의적 이상향을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았다. 심지어 해방직후 미군정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우리 민중의 78퍼센트가 사회주의 국가를 선호했다. 사회주의는 누구나 평등한 삶, 노동자와 농민의 해방운동을 통해 절대적 유토피아를 꿈꾸게 했다. 


하지만 6.25 동란 전에 남한보다 잘 살았던 북한이 공산주의라는 이론의 우월한 이데올로기로 무장을 했으면서도 결국 남한보다 가난해져 헐벗고 굶주리는 기아선상에 놓이게 되었다. 8년 여 간의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전형적인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 역시 식량 걱정을 하면서 근근히 살아가야만 했다. 


이 소설은 남파하여 전향한 박동건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그가 죽어가면서 윤혁의 손바닥에 손가락 끝으로 남긴 것은 전향하지 않았다는 진실이었다. 그가 생명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중태에서도 전향의 문제에서 벗어나 못한 것은 무슨 강박관념이었을까. 


박동건이 남파했을 때 온몸이 가지색이 들도록 두들겨 맞고 물고문을 당해 기절하자 떡공이(?)들이 인주를 묻히고 전향서에 손도장을 눌러 버린 것이다. 그는 패배감과 굴욕감에 사기라고 절규하면서 한평생을 살았지만 늘 감시당했고 귀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상적 동지였던 박동건의 죽음으로 윤혁은 끊임없는 악몽에 시달리는데, 운동장에 가득 찬 인민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기도 하고 국군이 아닌 인민군에게 쫓기다가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떨어지기도 했다.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해 꼬박 밤을 새우기도 했지만 늙은 육신은 피곤을 이겨내지 못했다.


윤혁이 전향자라는 굴욕과 처절한 악몽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두 갈래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오갈 데 없는 남매한테 새로운 정이 싹튼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옥에서 사회주의를 우월성을 깨우치려 했던 강민규와의 만남이다. 


윤혁은 어느 가게 앞에서 남매가 먹을 것을 훔치다가 걸려 어른들에게 머리를 쥐어박히고 경찰서를 끌려 가는 광경을 목도하고, 사흘 굶어 남의 담 안 넘어갈 사람이 어디 있냐며 위기로부터 남매를 구해주고 짜장면을 사주면서 남매와의 인간적 관계를 확대했다.


또한 사회주의에 이상향을 갖고 있는 강민규가 노동운동으로 투옥되자 처음에는 사회주의 우월성을 일깨워주려고 했지만 오히려 사회주의 몰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천착하고 그와 세상사의 깊은 토론을 나누면서 많은 깨우침을 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강민규는 사회주의가 몰락에 관한 세미나에서 들은 다양한 견해를 전달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당이 인민들의 균등한 행복을 위한다며 당의 일방적인 계획대로 직업을 배치하고, 행동을 통제한 어리석은 자만을 비판했습니다. (...) 인간을 마치 기계나 기계 부속품처럼 취급해서 자율성을 박탈하고 창조성을 파괴함으로써 성취욕을 꺾음과 동시에 노동의 질적 저하, 게으른 타성을 만연 시켜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소설의 후반부터는 윤혁이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해 가면서 새로운 삶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강민규가 북송으로 인하여 장기수 사범들에 대해 세상의 눈길이 온통 쏠리게 된 현 상황이 수기를 쓰는 절호의 찬스라며 작심하고 말하자 고민 끝에 윤혁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써나가자고 마음먹는다. 


윤혁은 남파하기 전 서울 시내에 서점을 차리라는 지령을 받고 내려왔다. 그 경영 이익으로 다른 동지들의 활동자금을 대는 영구적 거점을 확보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한에 살고 있었던 친구를 다방에서 만나기로 한 날, 그 불알친구의 신고로 자살할 기회마저 놓친 채 붙잡히게 된다. 


검찰에서의 고문취조는 혹독했다. 재판 결과 무기형을 선고받았을 때 그 갑작스러운 환희가 솟구쳐 오르기도 했다.  그는 분명 사형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속 같은 햇빛도 들지 않은 독방에서 15년을 버틸 때는 독방공포증이 밀려왔다. 병세가 심화되어 '지옥 속의 천당'이라는 병사로 옮겨졌고 그는 후에 석방되었다.  


윤혁의 수기는 넉 달만에 완성되었다. 강민규는 책이 아주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면서 이제는 부자 될 꿈만 꾸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한 달 만에 만 부를 넘겨 찍었다. 독자들의 편지도 받았다. 어서 통일이 되어 부인을 만나기 바란다는 여성들의 편지에서는 눈시울을 젖게 했다.   


윤혁은 독자인 최선숙과의 만남이 인연이 된다. 최선숙은 편지에서 아무런 부담 느끼지 마시고 어린아이들의 꽃밭인 보육원으로 언제든지 오셔서 여생을 웃음꽃 속에서 살아가자고 한다. 강민규는 여복을 타고났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윤혁은 남매를 데리고 보육원이 있는 대전으로 이사를 한다. 


윤혁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화장실 청소며 보육원을 돌본다. 강민규가가 보육원에 와서 왜 화장실 청소를 하냐고 얼굴이 구겨져서 묻자 윤혁은 밝은 웃음이 흘러넘쳐 이야기한다. 


'이런 일이 어때서 그래, 이게 좀 좋아. 내가 청소를 말끔히 해서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 깨끗한 변소를 쓰게 되면 그보다 도 좋은 일이 어디 있나. 자네 모르지? 예쁜 아이들 똥에서는 쿠린내가 아니라 단내가 난다는 거'


이 소설은 사회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새로운 삶. 강민규 사회노동 운동가와 버려진 남매의 인간관계 통해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남파하여 고문에 의해 저항했지만 결국 사회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새로운 삶에 동요동화는 모습은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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