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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Jun 08. 2023

구례 사성암을 아시나요?

기행수첩 


달포 전이었을까. 구례 사성암 유튜브 방송을 보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유튜버는 사성암을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한국의 사찰이라고 소개했다. 그 방송에서 사성암은 기암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황홀 그 자체였다. 나는 독백했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사찰이라. 그런데도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왜 오십이 넘도록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까?'


나는 시간을 내서 반드시 사성암을 가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어제, 그렇게 흠모했던 사성암을 직접 알현하게 되었다. 늘 여행은 설렘이 가슴을 흔들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낯선 곳의 신선함은 심오하기까지 했다. 


사성암을 가기 위해 신발끈을 조인 것은 오전 10시 10분이었다. 대지는 햇살이 공평하게 태동하고 있었다. 내 나름대로의 계획은 구례 부부식당에 가서 다슬기수제비를 먹은 후 사성암을 관람할 예정이었다. 부부식당은 전국 맛집으로 소문이 난 집인데 다슬기수제비와 다슬기초무침이 유명하다. 


섬진강을 지나서 구례 읍내에 도달했을 때 부부식당이 시야에 들어왔다. 주변에는 주차할 공간조차 없었고 식당 앞은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카운터에서 번호표를 연신 뽑아대고 있었다. 내 대기표는 57번이었다. 카운터 종업원은 대기자가 30명 정도 밀려서 1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일단 번호표를 받았다. 


카카오톡 내비게이션으로 사성암을 검색했다. 소요시간 8분이 나왔다. 운이 좋으면 사성암을 구경도 할 수 있고 또 수제비칼국수를 먹을 시간도 맞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차에 시동을 켰다. 그런데 네비가 안내한 곳은 사성암이 아니었고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사성암 마을버스 주차장이었다. 


사성암 마을버스는 부릉부릉 거리며 출발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버스 요금은 왕복 3천4백 원이었고 택시요금은 왕복 12,000원이었다. 부리나케 버스표를 끊고 차에 올랐다. 버스는 후미져 돌아가는 깊은 산 비탈길을 위태위태하게 달렸다. 


사성암 입구 주차장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벌써 여름이 잇대오는지 햇살이 뜨겁게 날아와 박혔다. 대부분 관광객들이 차양모를 쓰고 있었다. 나는 미처 모자를 준비하지 못했다. 버스에서 하차한 곳은 해발 500미터 되는 것 같았다. 발아래로 섬진강 전망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사성암은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사와 암자를 잘 구분하지 못했다. 나도 그 차이를 큰스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찰과 암자의 차이는 절의 규모에 따라 명명되는 것이 아니라 다리 - 교각 - 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구분한다. 


산사는 물이 흐르고 다리가 있다. 암자는 물도 흐르지 않으며 다리도 없다. 내가 즐겨 가는 남해 금산 보리암과 여수 금오산 향일암에는 다리가 없었다.  호남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달마산의 도솔암에도 다리가 없었다. 그래서 산사가 아니라 암자라 부른다. 어떤 산사는 일부러 8개의 다리를 만든다고도 한다. 깨달음에 이르는 팔정도를 깨우치기 위함이다. 


휴학하고 입대하기 전에 나는 소백산에 있는 어느 산사에서 신춘문예를 준비를 했었다. 그때 잠시나마 불경이 좋아 반야심경과 천수경을 수학한 적이 있었다. 가끔 산사에 가서 관음전과 관음보전의 차이, 또 어려운 현판을 읽고 해석하는 나를 보면 주변에서는 조선 선비가 강림한 것처럼 신기해했다.


사성암은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버스에서 하차하여 5분 정도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면 절벽 끝에 위태하게 매달린 암자가 한 폭의 신선도처럼 걸려있었다. 그 경관을 보면 저절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 암자는 원래 오산암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지리적으로 죽마리 오산 정점에 있어서 오산암이라 불렀던 것 같다. 그러다가 4명의 고승인 원효, 도선, 진각, 의상이 수도를 한 이후로 사성암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약사전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마애여래입상' 유형문화재가 눈에 들어왔다. 이 마애여래입상은 원효대사가 직접 바위에 손톱 끝으로 새겨서 그렸다고 한다. 어느 산사에나 기원의 전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득도한 스님이 초월적 힘을 발휘해서 바다를 가르거나, 심지어 집채만 한 바위를 들어 올리기도 한다. 또 돌이 물고기로 변하기도 하고 망부석으로 변하는 전설들도 여럿 있다. 사실 애써 자아낸 기상천외한 전설은 오히려 허구의 짙은 농도를 가중시키고 만다. 



약사전 건물 위로 도선굴이 보였다. 마치 향일암 올라가는 길에 있는 거대한 바윗굴 같기도 했다. 도선굴을 지나서 20여분 오르자 오산 정상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그곳에서 20여 미터 걸어가면 구례의 전망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팔각정이 관광객을 쉬게 하고 있었다. 


팔각정에 올라갔다. 시원한 바람이 귓등을 스쳐 지나갔다. 다시 주차장까지 내려오는데 한 시간 반정도 걸린 것 같았다. 사성암은 오산 정상을 포함하여 약 두 시간 정도면 충분히 관람이 가능할 것 같았다.  



내려오면서 부부식당에 전화했는데 이미 영업이 종료되었다고 했다. 오후 2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궁리 끝에 구례장에 있는 가마솥 소머리국밥을 먹기로 했다. 소머리국밥은 1인분에 만원이었다. 요즘 돼지국밥도 만천 원하는 곳도 있는데 소머리국밥이 만원이면 참 착한 가격이다. 


뚝배기에 담겨 소머리국밥이 나왔다. 반찬으로 나온 양파를 뚝배기에 훌훌 털어 넣었다. 펄펄 끊는 뚝배기에 양파를 넣는 것은 내 방식이다. 날 양파는 싫어해도 익은 양파는 좋아한다. 달달하기 때문이다.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았다. 국물이 진하게 우러났다. 함께 들어 있는 수육도 참 맛있었다. 


돌아오면서 문득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나라도 갈 곳이 많은데 세계는 얼마나 갈 곳이 많을까. 여행은 나이 먹고 다리가 떨릴 때 가는 것이 아니다. 젊었을 때 심장이 떨릴 때 가야 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여행이라는 말에 나는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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