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그녀와 헤어진 벌써 이십 년,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그런데도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설렘이 사뭇 가슴을 흔드는 것은 어인 일이었을까. 그녀는 얼마나 변했을까. 아마 그녀도 세월이라는 수레바퀴 속에서 솜털 보송보송했던 얼굴에는 어느덧 중년의 주름이 잡혀 있겠지.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사당역에 도착했다. 겨울 날씨는 유난히도 따스했다. 문득 '그해 겨울은 따스했네'라는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그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제목만큼은 명료하게 기억하는 것은 제목에서 묻어나는 동화 같은 전이현상이 정감적 현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러나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지리한 기다림이었다. 차가 막히는 것일까. 혹시 사고가 난 것은 아니겠지. 그녀가 약속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자 은근한 걱정들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그녀는 누구나 다 있는 핸드폰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연락할 방법조차 없었다.
그녀의 남편이 핸드폰을 사주다고 했지만 극구 사양했다고 한다. 핸드폰의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데다 굳이 핸드폰으로 인하여 누군가한테 구속받고 싶지 않았다고 그녀는 술회했다.
기다림은 초조함보다 견디기 힘든 것일까. 이십 년 전, 그녀도 가슴을 저미며 나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녀를 알게 되고 수원역에서 12시에 만나기로 했었다. 하지만 나는 중요한 학과 과제를 마무리하기 위해 시간을 지체하다 보니까 결국 한 시간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수원역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인산인해를 이루는 광장에서 쇼윈도의 인형처럼 혼자 덩그마니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서도 왜 늦었냐고 원성의 소리도 않았고 눈 흘김도 보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나를 바라보며 서 있을 뿐 이었다. 그녀가 말을 연 것은 수원역 지하상가 계단을 내려갈 때였다.
- 내가 너를 기다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니? 얘가 나를 참 비참하게 만드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이십 년이 지난 오늘은 내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30분이 지나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나는 문득 이십 년 전 수원역 광장에서 그녀가 나를 기다렸듯이 다시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사당역의 붐비는 버스 정거장 앞에서 내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아닐까 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다리가 뭉근하게 당겨왔고 허기도 밀려들었다. 유독 김밥집 앞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어묵집 국물이 자꾸 눈에 어렸다.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아침을 걸렀다. 아니 먹지를 못했다. 전날에 테니스 운동하는 회원들과 깊은 밤까지 소주잔을 어깨 걸이 하다 보니까 아침에 늦게 일어나 차마 밥 달라는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앞으로 10분만 더 기다리자. 그래도 그녀가 오지 않는다면 자리를 뜨자.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3분 남았다. 마지막으로 버스정거장에서 그녀가 있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과감하게 집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서서히 버스 정류장으로 허청허청 걸어가는 찰나였다.
- 오랜 만이네. 많이 기다렸니?
그녀였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화장도 하지 않은 민얼굴이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피부가 유난히도 고와 보였다. 목에는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고 짧지 않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대학 때처럼 늘씬한 키에 가냘픈 몸매였다. 얼굴에는 짙은 우수가 배어 있었다. 세월의 더께 속에서도 그녀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 아니, 많이 기다리지는 않았지만 행여나 길이 엇갈렸을까 봐 걱정했어.
인근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그녀는 우표처럼 얌전히 앉아 있었다. 두 뺨에는 겨울의 홍조가 서려있었고 볼 우물은 깊게 패어있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묻고 싶은 말이 많이 있었지만 어떤 말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그녀였다.
- 블로그 들어가서 보니까 시집도 내고, 수필집도 내고... 다시 국문학을 전공한 것 같더라
- 응.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국문학을 해보고 싶었어
- 그랬었구나. 넌 열심히 할 줄 알았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고요만이 적막을 깨뜨리고 있었다. 내가 말을 꺼냈다.
- 예전에 우리 안양에 갔었잖아. 기억나니?
- 응. 기억 나, 명학역이었지. 거기에서 호프 마셨었는데...
- 그날 내게 아주 무서운 저승사자 이야기 해주었었어, 생각나니?
- 아니, 생각이 잘 안 나는데... 하지만 네가 낭송해 주었던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는 기억나. 그 시를 낭송하는 네가 너무 멋져 보여서 나도 그 시를 다 외웠었거든. 결혼하고 성산포에 간 적이 있었는데 이상하리만치 성산포 시를 낭송하던 네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르더라.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낭송이다. 한참 외울 때는 시집 한 권 분량을 거의 암송할 정도였다. 돌연 그녀가 내 일기장에 자못 어떻게 그려지는지 궁금했다. 벌써 숱한 세월이 흘렀건만 그녀의 체취는 분명 묻어 있을 것이다. 1989년도의 비망록을 찾아보았다. 생각대로 그녀의 흔적은 중간중간에 자리하고 있었다.
1989년 9월 18일
저녁나절에 안숙자라는 아이를 만났다. 참 괜찮은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모르고 있었다. 그 아이 앞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라며 시낭송을 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와 진솔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헤어질 때 그 아이는 성산포시를 적어서 내일 줄 수는 없냐고 물었다. 그 아이도 외우고 싶다고 했다.
1989년 9월 28일
학교에서 숙자를 만났다. 그 아이는 성산포시를 다 외웠다고 했다. 얼굴에는 의지가 넘쳐 있었다. 이제 나도 그 아이의 시낭송을 들을 수 있을까.
1989년 11월 10일
숙자가 활동하는 시문학회에서 시화전을 열었다. 사실 시선을 끄는 작품은 없었다. 하지만 숙자 시화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만나면 어떤 식으로든지 시합평을 해주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사실 숙자의 자작시는 서정적이고 가을의 정감을 노래하고 있었지만 묘사 없이 단순한 상황설명만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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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모든 것을 퇴락시키며 잊게 하는 망각이라는 은총의 잔만을 베풀어준다고 하던가. 그녀는 대학 때 내가 갖고 있던 단점은 희석시키고 장점만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래서 추억은 눈시울 적시는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그녀는 이어서 나직하게 물었다.
- 지금도 악기를 다루니? 예전에 하모니카 하고 팸플루트 잘 불렀잖아.
그녀의 기억 속에는 아직도 팸플루트의 기억이 있구나. 대학 축제 때였다. 나는 팸플루트로 ‘고독한 양치기’를 연주했었고, 하모니카로 ‘솔밭사이로 강물은 흐르고’와 ‘애니로우리’를 연주했었다. 무대를 내려올 때 터져 나오는 갈채소리는 지금도 명료하다. 그녀는 나한테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 지금도 글씨 잘 쓰니? 그때 참 글씨 이쁘게 썼었었는데.
- 지금은 글씨 쓸 일이 많지 않아. 모든 것을 컴퓨터가 대신해 주거든. 그리고 수전증이 있어서 글씨가 떨려.
- 나이가 몇인데 벌써 수전증이야?
- 유전이야. 아버지가 수전증이 있었거든. 심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떨려. 웃길 때가 언제인지 아니? 얼마 전에 점당 100원 고스톱을 치는데. 내가 손을 떠는 것을 보고 주변에서 놀리는 거야. 남자가 100원짜리 고스톱에 손을 벌벌 떤다고.
그녀와의 대화는 낙엽이 되어 떨어진 곳곳에 그리운 얼굴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하염없이 이어졌다. 찻집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서는 부모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자조 섞인 한숨을 쉬기도 했고, 남편이 사업하는데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혹시 부도날까 봐 노심초사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찻집에서 나왔을 때는 서서히 박명이 몰려오고 있었다. ‘과천미술관 가기에는 시간이 늦었을까?’ 그녀는 약간의 주저함도 없이 불쑥 말을 과천미술관 말을 던졌다. 그녀에게 미술관은 어떤 상직적 의미를 가질까. ‘갈 수는 있지만 거기도 관공서와 비슷해서 문을 닫았을 것 같은데...’ 나는 말끝을 흐렸다.
사당역 일대를 그녀와 함께 거닐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트리들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음반점 스피커에서는 캐럴송이 흘러나왔다. 도로 위의 차들 바퀴 밑으로 캐럴송이 깔리고 있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그녀가 덤덤히 말했다.
- 요즘 해금을 배우고 있어.
- 그래? 해금은 배우기 어렵다고 하던데.
- 응, 음악학원에서 배우고 있는데 쉽지 않아.
거리를 걷는데 고혹적인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로 구 벨기에 영사관이었던 서울시립미술관 분관이었다. 그녀가 미술관 가고 싶어 했던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고풍스러운 고딕식 미술관이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내가 먼저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갔고 치마를 입은 그녀가 조심히 내 뒤를 따랐다. 미술관에는 추상화를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근접해서 예의 주시하며 작품을 감상하기도 했고, 멀찍이 떨어져서 원근감으로 작품을 감상하기도 했다. 그녀와 나는 추상화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화판 삼아 펼쳐 보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그림마다 나지막이 하지만 또렷하게 주관을 펼쳤다. 그리고 마치 확인하라도 하듯이 '그렇지 않니?' 하고 베이스를 넣듯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되물었다. 문득 에릭시걸의 러브스토리가 떠올랐다. 그 소설에는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라는 명대사가 나온다.
미술관을 나왔을 때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그림을 관람하는 사이에 집에서 몇 통의 전화가 왔었다. 아이가 전화를 걸었지만 집사람이 시켰다는 것을 지레 짐작 할 수 있었다. 집사람도 여자인데 내가 대학 여자친구를 만난다는 것을 아는 이상 어쩌면 질투하는 것도 인지상정일지 모른다.
나는 전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꺼냈다. 테니스 회원과 집사람이 있는 모임에서 내일 대학 동창생 만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털어 놓은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집에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당당했지만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녀는 나한테 집에서 연신 전화가 걸려오는 오는 것이 신경 쓰였는지 지하철 타는데 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내가 그녀한테 먼저 버스 타고 가라고 하자 어차피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려야 하니까 나보고 먼저 타고 가라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여러 단상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오늘 그녀와 나눈 짧은 시간 속의 많은 대화, 이십 년 만에 처음 만난 그녀가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그녀와 함께 했던 기억이 서로의 가슴속에 한 폭의 수채화처럼 맑게 그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를 만나고 삼 일이 지났을 때 메일을 받았다. 제목이 '다시 만난 아름다운 친구에게'였다. 그녀의 글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면서 어쩌면 그녀와의 만남이 인연일 수도 있었지만 젊은 날의 경험 부재는 서로 간의 느끼는 감정에 진실하지 못했으며 결국 가슴속에 그리움의 닻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제목: 다시 만난 아름다운 친구에게
멀리서 널 보았을 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지.
예전 모습 그대로 그렇게 서 있었지, 거기에.
하얗게 순수했던 청년은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그 느낌만은 그대로였어. 선량한 눈빛을 간직한 채.
거리의 입간판처럼 어수선한 공간 탓에
이야기는 여러 갈래로 흩어졌지만,
붉은 마루의 발자국 소리가 지난 삶을
따뜻하게 품어주던 미술관에서의 시간들...
나이 이십에 마음이 통하는 벗을 만났으나
내 너무 어려 소중함을 몰랐으니,
나의 어리석음을 한(恨)한다.
이제는 튼튼하고 아름다운 울타리 안에서 그
어떤 부족함도 없어 보이는 널 보며,
잘 된 일이라고 흐뭇해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허전한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