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인협회 하모니카 공연
2016년 11월, 그토록 갈망했던 하모니카 강사시험에 합격했다.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 하모니카를 대하는 나의 태도도 사뭇 달라졌다. 하모니카를 딴따라나 풍각쟁이가 아닌 대중문화의 근간이라고 나름대로 영역을 확대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끔 무대에 설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너는 안이하게 살고자 하느냐. 그러려면 대중 속에 머물러 있으라.'
니체의 말이다. 옳은 말이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대중의 사이에서 관계하며 성장한다. 하모니카의 무대는 대중과 계합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했다. 첫 무대의 만남은 그해 12월, 세종시인협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연할 무대는 세종시 전동면에 있는 아람달이었다. '아람'이라는 이름이 멋지게 다가왔다. 아람의 사전적 의미는 밤이나 상수리의 열매가 충분히 익어서 저절로 떨어질 정도의 상태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려서 밤나무의 밤이 익어서 벌어진 상태를 아람이라고 불렀다.
오래전, 지리산 남원의 뱀사골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뱀사골 초입에서 '인월면'이라는 이정표를 만났다. 나는 '인월'이라는 이름에 매료되어 한참을 머물렀다. 산세가 깊어 달을 끌어당긴다는 인월... 그 의인화된 지명이 몸살 나게 아름답게 보였다.
하모니카 공연 가는 길은 즐거웠다. 나뭇가지 끝에서 마지막 잎새들이 붉은 홍조를 물들이고 있었다. 샛강의 후미진 길을 따라 산토끼가 다녔을 법한 시골길을 한참 달렸을 때 마침내 아람달공연장에 도착했다. 그곳은 고즈넉한 산속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나름대로 위용을 갖고 있었다.
세종시인협회 사무국장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동인지를 나누어주었는데 '모시울 가는 길'이었다. '모시울'은 조치원과 전동면을 휘감아 도는 실개천 이름이라고 했다. '모시울'이라는 말도 참으로 정감 있게 다가왔다.
행사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며 서성이고 있었다. 사무국장은 행사하기 전까지 다소의 시간이 있다면서 오프닝 시낭송을 해 줄 수 있냐고 짐짓 내게 물어왔다. 시낭송과 하모니카의 장점은 처음 배우는 것이 힘들어도 한번 배워 놓으면 뼈다구처럼 계속 우려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학창 시절부터 좋아했던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낭송했다. 우리나라 시낭송가라면 누구가 한 번쯤 이 시를 낭송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숱한 시낭송가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들어봤지만 고등학교 때 카세트테이프로 처음 들은 김성일 성우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같다.
행사가 시작되었다. 세종시인협회의 약력이 보고되고 내빈소개가 이어졌다. 세종시인협회는 과거 연기군에서 활동했던 연기문학과 백수문학, 또 귀촌한 시인이 모여서 새롭게 출범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곧이어 하모니카 연주가 있겠다는 사회자의 멘트가 이어졌다. 나는 하모니카를 연주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갔다.
이번에 연주할 곡은 '추억'이었다. 강사 실기시험에서 연주했던 곡이기 때문에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래도 나름대로 애착이 가는 곡이다. '추억'은 속주곡은 아니더라도 하모니카 세 개를 들고 연주해야 하고 베이스와 고난도의 분산화음이 섞여 있어서 제법 풀어내기 어려운 곡이다.
- 사랑하는 나의 고향, 한번 떠나 온 후에,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내 맘속에 사무쳐, 자나 깨나 너의 생각, 잊을 수가 없구나, 나 언제나 사랑하는, 내 고향에 다시 갈까, 아 내 고향 그리워라.
무대에 올라섰을 때 긴장은 되지 않았다.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를 내려오는데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집에 와서는 동인지 '모시울 가는 길'을 추슬렀다. 이 동인지에서는 임동천 시인의 '숲 이야기'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남북의 이데올로기로 인한 시대적 아픔을 수산리 마을을 통해 멋지게 시로 승화하고 있었다.
- 붉은 산 / 풀들은 겨울마다 죽었다 / 어느 해 배부른 산에 / 풀들이 화가 나서 나무가 되기로 했다
- 지게 지고 숲으로 들어간 아버지는 / 10년 늙어 돌아오셨다
- 전쟁은 끝났지만 / 사람들은 더 사나워졌다
- 人共이라는 이유로 서방이 맞아 죽은 언년은 동네조리당하다 / 아이가 쥐고 잠든 옷고름 자르고 / 뒷골 머슴과 야밤을 탔다
- 이돌아 이서방은 나무하러 가 / 흙에 묻힌 소머리와 뼈 가죽을 파헤쳐 / 바소쿠리 가득 지고 내려와 /남몰래 포식했다
짧은 단문의 시, 그 안에는 인생의 사연이 담겨 있었다. '풀들이 화가 나서 나무가 되기로 했다'에서는 의인과 함축의 백미를 장식하고 있었고, '야밤을 떴다'나 '바소쿠리'에서는 시어의 유희가 반짝이고 있었다.
오늘도 그날의 하모니카 공연이 눈에 어린다. 불현듯 가수 이순길이 부른 '나니미'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만약에 내가 시인이라면 한 줄만 읽어도 눈물이 흐르는 시를 썼을 거야.' 하모니카 소리에 정작 혼을 담아낸다면 내가 연주한 하모니카 소리도 눈물 흘리는 시가 될 것인가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