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떠난 제주
5시 50분, 새벽여명이 밝아올 무렵에 용머리해안 숙소를 나왔다. 시동을 켰다. 무작정 드라이브였다. 서귀포 해안도로를 달리자 '건강과 성 박물관'이 나온다. 차를 세웠다. 입구에는 우리나라에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박물관도 있다'로 스펀지에 방송을 타면서 유명해졌다고 쓰여 있었다. 또 해외 수많은 방송국에 집중 소개된 곳이라며 부연설명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한 발치 걸어가자 침팬지 조형물이 나왔다. 마치 자위하듯 고추를 만지고 있는 침팬지의 얼굴이 천연덕스럽다 못해 우스꽝스러웠다. 원숭이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교미를 한다고 한다. 동물적이고도 맹목적인 교미다.
잔디 안에는 누울 수 있는 여성의 전라 조형물이 놓여 있었다. 직접 누워 보았다. 해먹에 올라온 탄 것처럼 평온했다. 여자의 가슴 융기는 어느덧 베개가 되어 내 목을 받쳐 주었다. 스르르 잠이 들 것 같았다. 뒤로는 비석 같은 것이 우뚝 서서 남근의 위용으로 박물관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입장료는 12,000원이었다. 입구에는 섹스의 심벌인 마릴린먼로 조각상이 있었다. 마릴린 먼로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오른 역사적인 인물이다. 아래의 조각은 화이트 드레스가 바람에 날리는 마릴린 먼로의 육감적인 몸매를 어필하고 있었다.
성의 양면성을 표기해 놓은 글귀가 있었다. 성의 층위적 다양성을 설명하고 있었다. 섹스는 기분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만족시켜 주는 것일 수도 있고, 좌절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긴장을 풀어 줄수도 있고,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도 있다. 모두 공감 가는 말이다.
앳되 보이는 여대생들이 첫날밤을 훔쳐보고 있다. 눈이 빠져라 들여다 보고 있기에 '너무 오래 보는 것 같은데?' 내가 뒤에서 나지막이 이야기를 하자 여대생들은 힐끗 뒤돌아서 내 얼굴을 보더니 얼굴이 붉어져 쏜살같이 자리를 옮겼다. 안에는 신랑 신부의 초례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박물관 곳곳에는 건강과 성박물관답게 성의 여러 체위들이 조각들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 행위들이 야하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얼굴에 드러난 익살과 해학의 형상이 자아낸 어쩌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라는 연역적 발상 때문일 것이다. 사랑을 나누는 그들의 얼굴은 부처처럼 온화했다.
AV 영상물을 촬영하는 장면이다. 여자의 정면에서 보면 여성성을 사실적으로 직조해 놓았다. 젊어서 P2P에 들어가 야동을 다운로드한 적이 있었다. 남자가 봐도 정말 역겨운 야동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이 정조대를 차고 있는 모습이다. 정조대는 11세기에서 13세기 십자군 전쟁에 출정한 기사들이 아내가 바람피우는 것을 염려해서 채웠다는 설이 있다. 정확한 것은 남자의 성적 정복력이 만들어낸 여자의 지나친 학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카롭고 단단한 쇠붙이의 정조대는 여자의 정상적인 활동을 방해했고 제대로 씻을 수도 없어서 그곳에 곰팡이 냄새가 많이 났다고 한다.
코뿔소와 수간하는 조각 작품이다. 아마 이 작품은 액운을 막아주거나 번영을 추구하기 위한 주술적인 조각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도 용왕의 노여움을 풀어 바다의 풍랑을 잠재우기 위해 처녀를 공양하는 심청전이 있는 것처럼 세계에도 여자를 공양하는 종족들이 많이 있다.
아래는 중국의 춘화다. 중국 춘화의 기원은 한나라 때이고 명나라 후기에 가장 발전하였다고 한다. 귀족과 관료, 민간사회에서도 상당해 유행했었다고 하는데 여러 가지 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첫 번째가 성욕을 자극하는 기능, 두 번째가 오락적 기능, 세 번째가 교육적 기능, 마지막은 사악한 것을 내쫓는 주술적 기능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춘화다. 학자들은 고려 말 원나라 황실과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왕실을 중심으로 퍼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춘화는 음란하고 외설스럽다는 인식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성행하지는 않았다. 내가 봐도 너무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그려놓았다. 모자이크 처리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음은 일본의 춘화다. 일본의 춘화는 에도시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주술적인 힘을 이용해 악령을 쫓고 복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인식된다. 일본 춘화는 심벌을 크게 표현을 했고 적나라하게 그려놓은 것이 특징인 것 같다.
다음은 여성의 성징을 그려 놓았다. 멀리서 보면 비슷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여성성에도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이 그림 위에는 여성의 얼굴과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얼굴과 비교해 보는데 흑인 여성은 성징도 검은색이었던 것이 특이했다.
박물관에는 성행위의 조각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남자는 발기한 상태이고 여자는 당당하게 남자를 받아들일 자세다. 관람객 중에는 젊은 연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다정히 손을 잡고 관람하면서 스스럼없이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시대를 대변하는 성에 대한 당당한 모습이다.
나오는 통로에는 우리나라와 외국의 성인잡지도 전시해 놓았다. 성인 만화물도 전시되어 있었고 야한 신문도 전시되어 있었다. 외국의 성인잡지에는 잔디밭에 누워 있는 전라의 모습이나 말을 타다 내린 여성의 음부가 그대로 실려 있었다.
저녁은 모슬포항의 선유식당에서서 무늬오징어회를 주문했다. 소자가 4만원하는데 나혼자 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제주에서 처음 먹어 본 무늬오징어는 완전히 내 입맛을 사로잡고 말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하던가. 벌써 3일째 무늬오징어회만 고집하고 있다.
신이 내린 맛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도라치회보다 더 입맛을 당겼다. 동해의 오징어회와 비교가 안 되는 달달한 풍미가 좋았고 남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갑오징회보다도 식감이 좋았다. 게다가 밑반찬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