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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라 Jan 13. 2023

초등학교 졸업앨범이 주는 불편함

서른이라 좋겠다 #7

지방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이젠 서로 멀리 떨어져 살지만 분기별로 꼭 만나는 초등학교 동창들이 있다. 이번 만남에서는 처음으로 졸업앨범을 꺼내 들었다.


밤새 이야기하다 보면 꼭 옛날 추억 보따리를 풀게 되기 마련이다. 사실 작년에 만났을 때도 J가 다음에 만나면 졸업앨범 한번 꺼내보자고 제안했던 것 같지만 나는 어쩐지 흔쾌히 허락하지 못하고 미소로 웃기만 했다. 뭔가 과거의 나와 마주하기 불편하달까. 내 과거 사진이 어떻고 저떻고의 문제가 아니라,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 같은 기분. 그냥 모르는 척 묻어두고 싶었다.


이번 만남의 장소를 제공해 준 친구가 초등학교 동창끼리 결혼해 졸업앨범이 집에 무려 두 개나 있다. 이 친구들은 졸업앨범을 자주 열어봤겠지. 20대 때는 오히려 수시로 재미 삼아 들여다봤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흐릿할 만큼 안 본 지 꽤 되었다. 의식적으로 열어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 졸업앨범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우리 집엔 없다. 친정집에 있으려나.


그래도 친구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모였으니 반강제적으로라도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 보기로 한다. 표지를 열어본다. 다양한 활동사진들을 지나 맨 먼저 선생님들 사진이 실려있다. 벌써부터 좀처럼 페이지가 넘어갈 생각이 없다. 선생님들 얼굴만 봐도 수다 떨 거리가 참 많다. 반가운 얼굴들도 보인다. 잘 계시는지 퇴임하고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한 선생님들도 있고, 마주하자마자 아픈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얼굴도 있다. 당시에는 정말 어른 같아 보였는데 지금 우리 나이보다 어리다니. 어떻게 이 어린 사회초년생 선생들이 그 작은 아이들을 그렇게나 죽도록 때릴 수 있었을까. 그땐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도 모르고 죽도록 맞기만 했다. 학부모들도 아무 말도 못 하던 시절. 오히려 학교에서 왜 혼나고 오느냐고 혼나던 시절. 요즘은 애들 못 때리는데 어떻게 선생하고 하나 궁금해진다.


그리고 뒤이어 넘겨보니 친구들 사진이 실려있다. 어릴 때 성격이 워낙 외향적이고 적극적이기도 했고, 우리 학교가 작진 않았지만 크지도 않아서 전교생 모두를 다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반이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예전엔 분명 친구들의 어린 시절을 보는 느낌이었는데, 내가 애엄마가 되고 나니 귀여운 아가들 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애보다 열 살쯤은 많은 형아누나들인데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 당시 나이가 13살. 지금 내 나이보다는 우리 아이의 나이와 훨씬 더 가깝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르는 아이의 얼굴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 아이는 이 나이쯤 되면 누구와 가장 닮아있을까.


생각보다 내 기억과 사진 속 느낌이 다른 친구가 많다. 얘 누구지? 한 번 물어보게 된다.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도 흐릿하지만 엄청 예쁜 친구가 있다. 이목구비가 올망졸망 야무지고 또렷하다. 마치 인터넷에 돌아다닐 법한 한 연예인의 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을 보고 있는 듯하다. 이 친구가 이렇게 예뻤구나. 초등학교 때는 외향적이지 않으면 아무리 예뻐도 존재감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너무 똘망똘망 귀여운 친구도 있다. 다시 보니 나를 너무 많이 괴롭혀서 스트레스였던 얄미운 내 짝꿍. 사진으로만 봐도 장난기가 아주 눈에 가득가득하다.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아서 내가 울음을 터뜨리고 선생님이 언성을 높여야 멈추던 그 아이의 장난. 이 아이가 귀여워 보일 수도 있구나. 신기하다. 장난꾸러기 우리 아들 사진 보는 것 같아서 마냥 밉지는 않고 귀엽게만 보인다. 그래도 좀 적당히 괴롭히지 그랬어!


또 한 장 넘기니 드디어 내가 이 앨범을 열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나왔다. 내가 말로 상처를 줬던 친구.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친구가 상처를 받아 몇 날 며칠을 울면서 사과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다시는 내가 말을 생각 없이 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는데... 어릴 때나 지금이나 말은 왜 이리도 어려운지. 나이가 들어도 참 고쳐먹기 쉽지 않다. 이미 뱉은 말을 어떻게 주워 담겠는가. 내가 오직 바라는 것은 이 친구가 부디 그 일을 지금은 잊었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 말이 상처가 되어 친구의 마음 한 구석에 어둡게 자리 잡고 있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이것 또한 가해자가 스스로 편해지려고 하는 합리화일 뿐이겠지. 혹시라도 같이 있는 친구들에게 내 마음이 들킬까 급히 졸업앨범을 빠르게 넘긴다.


다른 친구들을 통해 근황 소식을 듣게 되는 친구도 있다. 어릴 적부터 늘 선생님이 꿈이었는데 정말로 꿈을 이루고 잘 지내고 있는 친구, 배우가 되어 TV에 나오는 친구, 벌써 아이 셋이나 낳고 가족들과 화목하게 살고 있는 친구도 있다. 어릴 땐 밝고 명랑했는데 한 번 방황하더니 낯선 세계로 빠져버린 친구도 있고, 불의의 사고로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친구도 있다. 이땐 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비슷한 친구였는데, 그 이후의 주변 환경 변화에 따라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한밤중 웃자고 꺼내든 졸업앨범 한 권에 이야기보따리 한아름이다. 어릴 적 좋아했던 친구, 친했지만 멀어진 친구, 이 때는 안 친했지만 지금은 둘도 없는 단짝이 된 친구, 뭐 하고 사는지 근황이 궁금한 친구. 이렇게 한 명 한 명 사진을 보며 곱씹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일 수도 있으나, 다 보고 나면 불안감이 엄습한다.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졸업앨범을 보고 내 사진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설명할까. 좋았던 친구라고 할까. 글쎄다. 자신 없다. 누군가에게 나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상처를 줬을까 가장 두렵다.


실제로 우리는 같은 중학교를 다녔지만 중학교 앨범은 펼쳐보지 못했다. 얼마전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해온 어떤 아이의 사진을 마주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요즘 이슈로 떠오른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면서 저렇게까지 당해야 학교폭력인가, 내가 겪은 것은 남들이 보기에 아주 사소해보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던 적이 있다. 그러나, 고통에 상대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지극히 개인적이고 절대적인 것이어야 한다. 내가 견딜 수 있었다면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이고, 죽을 만큼 힘들었다면 죽을 만한 고통이다. 내가 경험한 그것은 내가 도망칠 수 없었더라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나에게는 그렇게 그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 만큼 그저 그렇게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난해 두 살 아들과 함께 고속열차 타고 두 시간을 달려 모교에 방문한 적이 있다. 유년시절 6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낸 공간에 친구들과 친구의 아이, 우리 아이 모두 함께 한 자리에 모여있으니 기분이 묘해 울컥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이 졸업앨범을 마주하는 내 기분이 또 한 번 달라지려나. 행복한 일, 슬픈 일, 부끄러운 일 모든 것이 뒤섞인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유년시절이지만, 모든 엄마들의 마음처럼 우리 아이는 학교에서 행복한 추억만 가득하기를.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며 꿈과 희망을 안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기를.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기를.


이 아이가 그렇게 자라기 위해 나 또한 마음이 느긋하고 여유로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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