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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Jun 23. 2024

존 오브 인터레스트 리뷰 :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삭막한 현실을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당장에 내일은 월요일이기에 출근해야 하고, 출근길 꽉 막힌 지하철을 생각하면 정신이 혼미해지기 일쑤다. 회사에 도착해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가 태산 같은 것도, 상사의 이해가지 않는 감정적인 지시에도 따라야 하는 처지가 서글프다.

일요일 저녁에 으레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법한 이 감정. 어쩌면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주인공 가족들이 느꼈을 감정과 어쩌면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담장 밖에 자리한 루돌프 회스 가족의 저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화면상으로는 그저 평화로운 저택과 사이좋은 가족들, 그 속에서도 억척스러운 어머니와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그들을 책임진다.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면 아마 그저 화목하고도 평범한 가족의 일부로 바라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평화로운 화면 속 내내 들리는 담장 너머 살육의 소리가 들리고, 그러한 소리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가족들은 위화감을 더한다. 아무렇지 않게 효율적인 살육을 이야기하는 아버지와, 아무렇지 않게 전쟁 전리품 속 누군가의 소지품들을 사용하는 어머니, 그 아래 적응되어 버린 듯한 아이들의 발랄한 뜀박질까지, 모든 것이 액자 속 그림 마냥 정형화되어 있다.


마치 불쾌한 골짜기를 연상케 하는 영상들로, 사이사이 이질감을 형상화한 듯한 노이즈가 그것이 단순한 느낌이 아님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화면 밖에서 바라보는 우리와 다르게 화면 속 가족들은 그 이질감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 속에서 매캐한 연기와 끔찍한 소리가 이미 백색 소음 마냥 적응되어 버렸기 때문일까? 영화 속 장모가 정말 좋은 곳이라며 놀라워하던 낮과 달리 밤 중 매캐한 연기를 마주하고 하룻밤만에 아무 말 없이 떠난 것이 마치 화면 밖 청자를 대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꺼림칙하고, 불쾌한 감정이 고조되었고 그것 역시 의도된 영상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그들이 살육한 참혹함을 남긴 박물관의 장면은 지극히 현실이었음을 직시해 준다.


다만 나는 한편으로는 지금에서의 살육과 과거에서의 살육이 껍데기만을 바꾸어 쓴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전쟁도 없고, 살인은 매우 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범죄이고, 그러한 것들을 강하게 처벌하는 우리는 과거 아우슈비츠 담장 너머 살육을 거름으로 살아가던 그들과 다를 수 있다고 강하게 확신할 수 있는가?


가치는 시대에 따라서 변한다. 우리가 가진 인권도, 혹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도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순히 살육을 하지 않고, 그러한 것들을 묵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도덕적 결함이 없는 사람들일까? 사실 주인공 가족들이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해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스럽게 생각하며, 당장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만을 바라보며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객체로서 살아간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재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주의를 풍자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왜 저 사람은 우는 애를 식당에 데려와서 민폐를 끼치는 거야?"

"애가 울 수도 있지 우는 애를 왜 기 죽이는 거야?"


"아침 출근 시간에 꼭 시위를 해야 하는 거야?"

"생존권이 걸린 시위인데 이해해줘야 하는 거 아냐?"


"가정 안의 일을 네가 뭔데 끼어들어?"

"어떠한 사유로든 학대는 학대 아닌가?"


"네가 뭔데 사람을 가려 받아?"

"너 같은 사람한테 장사할 마음 없다"


물론 이 외에도 많은 논란과, 굳이 논란의 여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기적인 사례들은 우리 현대 사회에서 수두룩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온전히 아우슈비츠 담장 너머의 사람들을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는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이 있다.


무엇이 도적의 기준인지도 애매한 현대사회 속에서 한 인간이 온전히 그것을 깨우치기란 아마도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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