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필요한 순간, 도심 속 숨겨진 아지트
18세기 프러시아에서는 국가 재정 이유로 귀족층에게만 로스팅할 수 있는 권한을 허가했습니다. 일반 서민층은 밀거래를 통해 커피를 볶아 마셨고, 커피 향을 찾아내 단속하는 직업이 바로 '커피 스니퍼'였습니다. 그 뜻을 재해석해, 좋은 커피를 찾아 소개해 주는 커피 스니퍼의 역할이란 의미로 쓰이게 되었고, 우리는 좋은 커피를 찾아낸 사람들과 향을 소개합니다.
ㅣ매장의 시작이 특별해요. 카페가 아닌 랩실 공간이셨죠?
맞아요. 바로 전 매장이었죠. 그곳을 준비할 땐 헤드 로스터 자리가 예정되어 있었어요. 일을 마치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여기서 시도해보자 였는데, 지나가는 분들이 공사 중에 커피를 자꾸 물으시더라고요.
ㅣ용도가 갑자기 바뀌신 거네요.(웃음) 그래도 카페를 운영하는 것과 안정적인 급여를 받을 수 있는부분에 있어서는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랩실 사용 목적으로 만든 상태였기 때문에 이미 장비는 갖춰진 상태였고, 수정만 조금 하게 되면 바로 카페로 운영할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손님을 받고 안 받고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요.(웃음) 카페 운영으로 선택함에 있어서는 기회 비용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 매장이 망해도 내가 손해 보는 건 300만 원뿐이다. 생각하니 이민한 가치의 수업료가 없 것 같더라고요.(웃음) 또 몇몇 분들이 커피를 파냐 물어봐 주셨을 때 그 말이 듣고 싶었나 봐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ㅣ내재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으셨군요.(웃음) 음악에서 커피로 업을 변경하셨는데, 음악 뿐 아니라 커피도 만만치가 않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환경이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가정을 꾸린다는 일이 쉽지는 않으니까요.
제가 음악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장르를 하고 있지는 않았어요. 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커피를 하고, 거친 일을 많이 하기도 했고요. 인정을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스스로 만족감도 떨어진 상태였는데 좋아하는 일이라 크게 상관은 없었어요. 그런데 아내를 만나면서 혼자서는 괜찮다고 생각한 삶이, 아내까지 나처럼 살게 하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렇게 과감하게 음악을 정리하고 커피에 올인해 보자였죠.
ㅣ'내가' 아닌 '내 사람'을 위해서 삶의 변화를 맞이하신 거네요. 대표님에게 아내분의 영향력이 크신 것 같아요. 대단한 분이시네요! 그렇다면 그때부터 스페셜티 커피를 접하게 되셨을까요? 로스터까지의 수순이 궁금해요.
맞아요. 그쯤 일반적인 커피는 만족감이 없었어요. 스페셜티 쪽으로 가지 않으면 커피를 계속할 수 없겠다 싶어서 2010년 본격적으로 접하고, 바리스타로 시작하면서 로스터로 전업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로스터로 구직했던 당시에는 취업하면 인부가 되거나, 배울 수 없거나, 도제식으로 사장님 어깨 넘어 조금씩 공부하고 공장에 취업하는 것뿐이라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로스팅 수업을 듣거나 선택해야만 했는데 수업료가 300-450만 원 정도였으니 생각이 많았죠.(웃음)
ㅣ초기 창업 비용이셨네요? 대표님은 어떤 선택을 하셨나요.
비교를 계속해봐도 수업도 별로 없는 학원에 투자하기가 힘들겠더라고요. 고민하다가 가장 작은 이지스터를 구매하고 250만원치 생두를 사들여서 몇 년을 집에서 통돌이로 로스팅 했어요.
ㅣ이런 과정을 통해 고로가 탄생했잖아요! 특히 초기 창업 비용이 300만원으로 대부분을 셀프로 진행하셨고요. 블로그를 통해 과정을 읽다 보니 신세계를 접한 것 같았어요. 셀프 공간을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시고요. 그분들께 조언을 드리자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음악 작업을 하면서 홈바리스타로 이용했던 장비들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덕분에 초기 비용이 적게 들어간 거고요. 셀프는 분명 양날의 검이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표현은 할 수 있지만 완성도는 기대하면 안 돼요. 괜히 전문가분들이 계시는 게 아니니까요. 셀프를 고려하고 계시다면 위험도는 꼭 따져보세요. 작업을 하다가 단순하게 긁힌 상처는 훈장이 될 수 있지만, 위험한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위험성을 무시하시면 안 돼요. 특히 전기 작업 같은 경우 저도 배제한 부분이고요. 조금만 공부하면 할 수 있는 것들과 아닌 것들에 대한 구분을 명확하게 짓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곳은 15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어요. 거친 일도 많이 해봤고, 첫번째 공간도 해봤으니까 바닥으로 가는 선이나 전기를 끌어오고, 수도나 배수 같은 건 제가 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 전기 배전함은 전문가분에게 맡겼어요. 위험성은 끝까지 가야 위험한 게 아니에요. 그리고 그때는 가진게 워낙 적었으니까 멈출 수가 있었어요. 이게 한계다 하고요.
ㅣ내가 원하는 모습을 그릴 순 있지만 완벽성을 추구한다면 업체에 의뢰 해야겠군요. 전 매장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셨어요. 이곳에서 15분 정도 소요되는 곳이고요. 이전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작은 매장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와주셨어요. 동네 강아지들부터(웃음) 애기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면서 카페가 이런거였구나, 잘하고 있는거였구나 생각도 했고요. 한편으로는 사랑방이 되다 보니까 불안해지더라고요. 너무 좋고 행복한데 몸은 점점 지쳐가고, 이분들께 좋은 커피를 드리는 것 자체가 만족감이었는데, 멈춰있다는 생각이 크게 들더라고요.
ㅣ대표님은 안주하기가 싫으셨군요. 매장 규모 또한 수익의 연관성으로 넓히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으셨을까요?
네, 저는 안주가 불안했던 것 같아요. 매장 규모는 생각하신 것과 다르게 전 매장에서의 수익 구조가 지금보다 괜찮았어요.(웃음) 그곳에서는 월세가 저렴했고 인건비도 저희 둘뿐이라 따로 지출도 없었고요. 위치가 그렇다 보니 경쟁 상대가 있을 수도 없는 곳이었어요.(웃음) 이쪽은 길가에 있는 곳들과 경쟁도 해야하고 샤로수길도, 핫플도 아닌 애매한 위치예요. 걱정이 많았지만, 여기에서도 못해내면 우린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 거고, 안되면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아 그곳은 지금 로스팅실로 사용하고 있어요.
ㅣ차선책을 갖고 계셨네요. 행동해야만 결과를 알 수 있으니까요. 아내분께서 디저트를 담당해 주시고 계시죠. 두 분만의 철칙이 있나요?
철칙이라 하기엔 거창한데, 서로 선을 넘지 않는 것 같아요. 터치는 거의 없고요. 무스류나 크리미하는 디저트가 중심이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만 했어요. 그 부분을 제외하고는 계절과 어울리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을 베이킹하고 마지막에 크로스 체크를 해요. 저 또한 추출 테스트까지 맞췄을 때 서로 맛을 보죠.
ㅣ서로 모르는 분야더라도 이 사람의 맛을 아니까 그 부분을 전문 지식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표현을 내비치시는군요. 아닌 것 같다 한다면요?
그 사람의 최대치를 아니까요. 퀄리티 컨트롤 체크를 하는데는 가차 없어요.(웃음) 아닌 경우 버립니다. 마케팅 적으로 무료로 손님들께 제공해 드린다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우리 기준이 높을 수도 있지만 그 기준을 유지하려고 해요. 콩 같은 경우에는 직원분들한테 연습할 콩이 필요한지 디저트 같은 경우엔 가족 중에 디저트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드리는 편이에요.
ㅣ대표님께서 추구하시는 맛은 어떤 걸까요? 로스팅하실 때 드시는 분들이 이런 부분은 느끼셨으면 하는 부분도 있으실까요?
로스팅이 공격적인 편이에요. 개성이 강하고, 그래프도 변동이 심하거든요. 콩이 가지고 있는 향이 폭발적으로 들어갔으면 좋겠고 추출도 그런 방식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해야만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요즘은 조금 바뀌고 있다면 편안한 커피를 더 많이 찾게 된다는 점? 로스팅도 조금씩 변화하고요. 드시는 분들께서는 이름이 걸맞은 맛을 느꼈으면 해요. 지금은 유명한 농장과 품종들도 많고, 인퓨저는 아예 프로세싱에서 가미한 재료를 이름으로 붙이는 경우도 많고요. 그렇다면 그 맛이 확실하게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상식적인 로스팅이라도 할지라도 결과물과 고로만의 추출 방식으로 잘 표현된다면 통상적인 프로파일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요.
ㅣ인퓨즈드 커피도 사용하고 계시죠. 강렬함을 좋아하시기 때문일까요?
그보다 손님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신맛 나는 커피를 어려워하시는 분들은 많이 계세요. 간극이 심했지만 이곳에서는 산미를 즐겨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디저트 때문에 오시는 분들이 가향커피를 드시고 제가 처음 에스프레소를 먹었던 표정을 지으세요. 이게 브루잉이구나 하면서요. 오히려 이 부분을 잘 활용하면 굉장히 좋은 역할이라고 생각되더라고요. 커피를 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는 가향을 노골적으로 거부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투명성은 잘못된 점이죠. 하지만 그 문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이 어떤 문화에 대한 선구와 선도 의식으로 흘러가는 게 아닐까. 쓰임에 대한 활용 방안을 보고 선택에서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지 해요.
개인적으로의 걱정은 인퓨즈드가 활보하면 이 맛에 길들어져 이것만 찾는다는 게 아니라 떼루아에 대한 가치가 떨어질가봐 였어요. 고로는 가향과 아닌 커피를 구분 지어 소개해 드려요. 언젠가는 인퓨즈를 해야하는 시대가 올 거예요. 인퓨즈도 볶는다고 무조건 맛있게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그때 가서는 인퓨즈를 더 잘한다 못한다로 나뉠 텐데, 지금 배척하기보다 모두 잘하자는 마음입니다.
ㅣ그런 경험이 다양함을 선보이고 식견을 넓히니까요. 말씀하신 대로 불투명을 제외하고 두 가지가 섹션을 나눠 가진 장점을 돋보이게 한다면 사람들에게 보여드릴 커피가 무궁무진해질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앞으로 고로는 더 다양한 원두에 집중하실까요?
지금까지 그랬다면, 이후부터는 여러 생두 중에서도 확실한 것들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실험적인 것도 있지만, 두고두고 먹었으면 하는, 한켠에 모아 두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모든 방향으로 모든 플랜은 서 있어요. 현실적으로 자본이 있어야 하는데(웃음) 언제든 실행시킬 수 있게 로또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웃음) 굿즈를 원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제작 중인데 고로만의 향을 개발했어요. 그 다음 연필도 생각하고 있고요.
ㅣQR 원두 카드도 굿즈와 같은 느낌이 들어요. 여행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디자인은 의뢰하시나요?
아니요. 심볼은 이번에 리뉴얼을 하게되면서 업체에 의뢰하게 되었고, 그걸 활용한 패키지, 다지인, 굿즈 등은 제가 제작하고 있어요. 원두 카드는 우리가 싱글 오리진 카드를 만드는데 그때마다 특정 국가들이 있잖아요. 아내가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여행과 접목해 보자 된 거죠. 어렵게 여기까지 와주셨는데, 가서도 우리가 생각나면 더 좋을 것 같고요. 무언가를 드리고 싶은 것도 있어요. 제가 직접 제작하기 때문에 다시 안 나오거든요.(웃음) 그래서인지 수집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뿌듯합니다.(웃음)
ㅣ고로는 공간도 소품도 즐길 거리가 너무 많은 곳이네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둘러볼 게 한참이에요. 자세히 보면 더 예쁘고요. 빈티지한 공간을 채우시는 것도 좋아하시는 대표님께 마지막으로 질문드려요. 무엇이든 추천해 주세요.
카페에서 노래는 필수잖아요. 사실상 재즈는 필연적으로 따라오고요. 고로 플레이리스트 중에 바뀌지 않는 노래가 있어요. Joe pass 그리고 Pasquale grasso 재즈 기타가 아주 좋아요. 듣게 되면 리듬이 올라갑니다. 꼭 한번 들어보시길 바래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