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 아지트
18세기 프러시아에서는 국가 재정 이유로 귀족층에게만 로스팅할 수 있는 권한을 허가했습니다. 일반 서민층은 밀거래를 통해 커피를 볶아 마셨고, 커피 향을 찾아내 단속하는 직업이 바로 '커피 스니퍼'였습니다. 그 뜻을 재해석해, 좋은 커피를 찾아 소개해 주는 커피 스니퍼의 역할이란 의미로 쓰이게 되었고, 우리는 좋은 커피를 찾아낸 사람들과 향을 소개합니다.
ㅣ선 창업 후, 후 바리스타라는 이색적인 경험이 있으세요.
첫 창업이 여의도 오피스 상권 지하였는데, 생과일주스와 테이크아웃 커피를 판매했어요. 처음이다 보니 로스팅도 책으로 공부했고요.(웃음) 배우면서 일을 했죠. 3년 정도 운영하고 잘 나왔어요. 폐업 후에는 관련 없는 일을 하다가 그래도 커피가 제일 재미있더라고요? 다시 해보자 했을 땐 바리스타로 재직하기에 나이가 있는 편이라 걱정도 했지만, 운이 좋게 바리스타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을 만나게 되었죠. 8개월 정도 일했던 것 같아요.
ㅣ첫 매장에서 이어온 특별한 인연도 있으시고요.
후엘고 로스터가 첫 창업 때 같이 일했던 직원이었어요. 이 친구는 계속 스페셜티 커피 쪽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외국으로 가려고 했는데,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둘 건데 본인 로스팅 실을 꾸릴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할 생각이 있냐 물었고, 먼저 시작하고 있으면 정리 후에 합류하겠다 말했죠.
ㅣ결단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두 분 다 색이 뚜렷하신 분들 같아요. 가족과 친한 친구하고도 동업은 어렵다고 하잖아요.(웃음)
전제 조건이 같이 일을 하지 말자는 거였어요.(웃음) 그래서 로스터리와 매장도 분리한 거고요. 매장이 바쁘면 오고 갈 수는 있지만, 항상 붙어 있지 말자는 거였죠. 많이 다르지만, 다른 만큼 비슷한 면도 커요.
ㅣ동업이라 함은 함께 상주한다고 생각했는데, 편견이었네요.(웃음) 분리된 만큼 장단점이 있을까요?
따로 있어야 시너지도 클 것 같았고요. 맞는 것 같아요. 일로 잘 맞는 편이라 5년 동안 함께 하고 있고요. 재작년쯤 합칠 수 있는 상황이 있었어요. 일이 생겨 무산됐지만, 지금이 맞는 것 같더라고요. 피드백적으로도 일주일에 3번 정도는 매장에서 커핑도 하고, QC도 보니까요. 불편한 점은 없어요.
ㅣ5년이라는 시간이 서로의 신뢰를 대변하는 것 같아요. 이 시간 동안 이전 한번 하신 적이 없으시죠. 로스터리는 목동에 매장은 염리동. 이유가 있으신가요?
아주 옛날에 어머니가 이쪽에서 장사를 하셨어요. 그래서 알고는 있었지만, 사실 공덕이나 마포 쪽은 가격이 맞지 않았고요. 금전적인 부분에 맞춘 상황도 있었지만, 이 풍경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로스터리는 매장하고도 가깝고요. 자연스럽게 동선이 맞춰진 것 같아요.
ㅣ매력적인 요소는 배경이었지만, 높은 언덕과 유동 인구를 생각하면 고민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주택가에 아파트 단지들이 많다 보니 10곳을 넘게 보아도 이만한 곳이 없더라고요. 오피스 상권에서 지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고요. 반복되는 일상에 계속 지하에서 일을 하다 보니 답답함도 많았어요. 그에 비하면 탁 트인 이곳은 매력적인 곳이라 생각해요.(웃음) 자리 보시는 분들에게 죽은 상권도 놓치지 말라고 말씀도 드리고요.
ㅣ개인 카페만큼이나 개인 로스터리 카페도 계속 생겨나는 추세인데요. 힘든 구조이지만, 그럼에도 꿈을 꾸시는 분들에게 이것만큼은 투자해라, 아끼시라는 부분이 있을까요.
죽은 상권도 놓치지 말라 이야기드렸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있으신 분들 한해서는 모험이지만 메리트가 있는 부분이고, 첫 시작이라면 오피스 상권을 말씀드리죠. 투자 가치는 있으니까요. 손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주해 보고, 겪어보고 어느 정도 교감을 하고 오고 가야 어느 상권에서든 머물 수 있으니까요. 요즘 워낙 잘하는 곳들이 많잖아요.
ㅣ잘하는 곳이 많으니까 문제 아닐까요?(웃음)
그러니까 한 끗을 노려야죠. 커피는 한 끗 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ㅣ그 한 끗 차이가 뭘까요?
각자 다르겠죠. 찾아야 하고요.(웃음) 저는 맛으로 한 끗 차이라고 생각해요.
ㅣ맞아요. 이 부분에 있어서 질문드리려고 했는데, 후엘고는 아메리카노, 라떼에 싱글빈을 사용한다고 들었어요.
예전에는 에티오피아 싱글로만 했다가 지금은 에티오피아 두 가지를 조합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지금도 싱글빈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조합이 재미있고 괜찮더라고요. '크레바스'라고 후엘고만의 블렌딩 원두에요.
ㅣ아메리카노나 라떼는 블렌딩 원두를 사용하잖아요. 가격 면으로 부담도 되시고, 납품하고, 받는 입장에서도 그렇고요.
ㅣ단순하게 말하자면 맛있잖아요. 맛의 변질이 없고, 우리가 좋아하고요. 가격대가 있으니까, 감가상각을 생각하는 거죠. 로스팅을 우리가 할 수 있으니 생두 값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요. 납품으로는 단가가 나오지도 않고, 크레바스는 따로 납품하지도 않아요.
ㅣ그래서 후엘고만의 원두라고 말씀하셨군요! 대표님과 로스터 분께서 어떤 맛을 추구하시나요?
산미도 있지만, 깔끔하고 홍차 같은 느낌이나 데일리로 마시기에 좋은 커피요. 에티오피아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주'가 되었어요. 예전엔 싱글빈을 모두 에티오피아로 해놨을 정도로요.
ㅣ에티오피아하면 '산미 있는 커피'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주택가이기도 하고요. 동네 성향상 잘 맞으셨나요?
로스팅 할 때 산미보다 단맛에 중점을 많이 두는 편이에요. 동네 성향을 맞추기보다 로스터도 저도 추구하는 맛이기도 하고, 지속성을 중요시 생각해요. 산미가 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커피요. 큰 거부감은 없었어요.
ㅣ이 공간에서 다양한 팝업도 진행하셨잖아요. 타코, 핫도그, 진토닉 같은 예상치 못한 조합들로요.(웃음)
재미있게 하고 싶었어요. 재미있어야 하잖아요?(웃음) 타코는 '녹기전에'대표님과 친분이 있어서 진행했고요. 진토닉은 '리이케'대표님과 이야기하다 진행했는데, 재미 삼아 하는 팝업이기 때문에 큰 제한이 있거나 하진 않고요. 다들 그렇게 한번 즐기는 거죠.
ㅣ타코와 진토닉은 진심으로 참여하고 싶더라고요. 앞으로도 계획이 있으신가요? 기획을 다양하게 하시는 것 같아서요. '후엘고' 마케팅 수단일 수도 있고요, 리플래쉬 있을 수 있고요. 진행하는 목적이 있을까요?
아뇨. 예전만큼 기획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지금 프리마켓을 하나 기획 중이긴 한데 정확한 날짜는 잡지 못했고요. 매장을 알리기보단 제가 숨 쉬려고요. 제안을 많이 주시기도 해요. 재미있을 것 같으면 진행하게 되는 거죠. 돈을 주거나 받거나 이런 건 절대 하지 않고요. 같이 협업할 수 있는 부분까지 하고 있습니다.
ㅣ특별한 광고나 마케팅은 없으시잖아요. 앞으로 생각하는 방향성이 있으실까요.
납품은 하고 있지만, '주'는 아니에요. 지금 흘러가는 대로, 이대로 계속하고 싶을 뿐이고요.(웃음)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커피는 커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지는 않아요. 그 기본안에서 충실히 하려고 노력하죠. 무언가가 유행해도 돌아오는 건 클래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업체들과 방향성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납품하고 사업체를 확장 시키는 것보다 지금 이대로 지속시키고 싶어요.
ㅣ'지금 이대로 지속 시키고 싶다'라는 말이 명료하면서도 어려운 것 같아요. 다양한 제안도 있지 않으셨나요?
수많은 카페 중에 이름을 알리기가 정말 어렵잖아요. 제가 이쪽 업계에서 일을 오래 한 것도 아니라 아는 분들도 별로 없었는데 운이 좋게도 바리스타 분들이 많이 찾아와 주셨고, 입소문도 내주셔서 초반에 운 좋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성장할 기회도 여럿 있었는데 오히려 침착했었고요. 급하기보다는 잔잔한 속도를 선택한 거죠?(웃음) 그게 맞는 것 같더라고요.
ㅣ그렇다면 후엘고만의 공간, 어떤 컨셉을 두셨을까요? 즐길 수 있는 요소는 당연히 채광이겠죠?
창업 준비 중이신 분들이라면 일본, 덴마크 등 이미지 참고 많이 하시잖아요.(웃음) 저도 엄청 본 것 같아요. 특히 덴마크, 노르웨이 가정집을 많이 봤어요. 인테리어보다는 색감을 많이 봤는데 그대로 적용했다고 보시면 돼요. 아시는 분이 인테리어를 해주신 부분이라 색감만 정했고요. 어두운 편을 좋아하지만, 워낙 채광이 좋아서 일부러 그렇게 까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바라도 어둡게 만들자 했고요. 말씀하신 대로 채광이 좋아요. 대부분 창가 자리에 앉으시는데 저는 이 자리를 좋아해요. 손님이 계시지 않을 땐 책을 읽어도 좋고, 아파트 뷰지만 노을이 지면 정말 예쁘거든요.(웃음)
ㅣ탐이 나는 자리에요. 오늘 앉아 봐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 질문드릴게요. 무엇이든 추천해 주세요!
아무거나 괜찮을까요? 요즘 평양냉면을 좋아해서 뒤늦게 접하고 있는데 장충동에 '평양면옥'을 자주 가고 있습니다. 커피는 정말 고민이 되는데(웃음) 아,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자주 가는 곳이 하나 있는데 양평에 '찬스커피 로스터리'가 있어요. 에스프레소가 정말 맛있거든요. 꼭 한번 가보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