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스니퍼 Nov 22. 2023

라이픈 : reifen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이 주는 따뜻함



Koffee Sniffer

18세기 프러시아에서는 귀족층에만 로스팅할 수 있는 권한을 허가했지만, 일반 서민층은 밀거래를 통해 커피를 볶아 마셨습니다. 그들의 향을 쫓아 단속하기 위해 '커피 스니퍼'라는 직업이 탄생하게 되었고, 우리는 좋은 커피를 찾아 소개해 주는 역할의 의미로 재해석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커피를 찾아낸 사람뿐 아니라 향을 만들기 위해 어떤 사람들의 수고와 열정이 담겨 있는지 찬찬히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의 글이 향을 쫒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커피 문화가 상생할 수 있는 구조로 활성화되기를 바랍니다.


ㅣ라이픈을 시작한 계기, 서울이 아닌 속초에 공간을 만든 이유가 있을까요?

웅) 거주지로서의 매력을 느껴 속초에 오게 되었어요. 카페를 하기 위해 비지니스 전략 차원에서 선택한 건 아니고요. 연고도 없습니다.(웃음) 와서 보니 좋았고, 자연과 융화되는 모습들이 우리가 원하는 자연스러운 삶과 맞았어요. 둘 다 커피 업계에서 계속 일을 해왔기도 했고, 선택할 수 있는 업 중 하나였죠.

ㅣ'속초'어떤 매력이 크게 와닿았을까요.

연) 음.. 거주지를 옮길 때 대부분 제주도, 부산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우리에겐 속초였어요.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듯 속초의 산과 바다, 분위기가 좋았죠. 보통은 일과 삶이 연결되어 있지만, 저희는 삶과 일이 연결된 공간과 일을 찾았고, 이곳에선 우리다운 일을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ㅣ그렇게 만들어진 라이픈이 어떤 면을 추구하는지 알 듯해요. 자연스러움을 강조하신 만큼 인테리어 디테일까지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아요.

웅)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해요, 라이픈은 셀프로 만든 공간이라 자세히 보시면 허점이 많아요.(웃음) 전기 공사 빼고는 직접 다 했거든요. 아버님이 예전에 건축 일을 하셔서 목공 일만 도와주시고, 설계부터 수도 연결, 나무 자르기 모든 걸 이연이가 총지휘하며 만들어진 공간이에요. 

연) 셀프이다 보니 4개월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어요. 꽤 오래 걸렸죠.(웃음) 예쁜 공간 보다는 우리가 좋아하고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오시는 분들도 같은 감정을 느껴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할 뿐이에요.

ㅣ인테리어가 취향 저격이었어요. 당연히 업체에 맡기시고, 곳곳에 의미를 부여했다 생각했거든요. 라이픈의 로고 색, 원두 패키지에 있는 색상과 조명의 색까지 의도된 게 아닌가요?

연) 다 우연이에요. 처음부터 올 세팅된 공간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 물건들을 조금씩 들여오다 보니 집 같은 공간이 되었어요. 손때  묻은 집이죠.(웃음) 식물도 있긴 했지만, 선물도 받다 보니 더 많아진 거고요. 시간에 의해 무르익은 것처럼 공간이 무르익더라고요.


ㅣ맞아요. 식물이 굉장히 많아요.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든요.(웃음) 관리하기는 힘들지만, 공간에 있고 없고 와 미치는 영향이 크더라고요. 자연이 주는 힘일까요?

연) 아직도 배우는 중이에요. 사람마다 삶을 꾸려가는 속도가 다르듯, 도시의 삶을 살다가 자연과 어우러져 살게 된다면 어떤 속도로 살아갈지 궁금했거든요. 아무래도 전에는 누군가 만들어 준 공간에서 빠름이 있는 커피를 했다면, 지금은 우리가 선택한 공간에서 우리만의 속도로 커피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크고, 오히려 요즘 진짜 커피를 한다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요. 분명한 건 조금 더 투명해졌고,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거죠. 저 자신도 한결 편해졌고요.(웃음)


ㅣ삶과 일을 공존할 수 있는 공간, 선택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연) 일단 본인이 선택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내가 바쁘게 살 것인가, 느리게 살 것인가. 장소는 중요하지 않지만, 주체적으로 공간을 선택한다는 건 엄청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태어난 곳이라는 이유로 거주하는 게 아니라 나와 어울리는 공간을 스스로 찾아내는 일. 이런 생각의 시작으로 결정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재미있어요.(웃음)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이 있다면 단점도 있듯이 나에게 우선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니까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ㅣ그래서=일까요? 대표님 두 분과 라이픈의 이미지가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재활용되는 원두 봉투와 아웃도어 커피, 환경 측면으로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고요.

연) 우유 팩을 한살림에 보내면 그곳에서 재사용할 수 있는 휴지로 만들어 판매해요. 우유 팩을 하나하나 씻어서 말린 뒤 보관하다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과정이 귀찮을 수 있지만,  말은 하지 않아도 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요. 라이픈도 소규모이기도 하고, 이곳이니까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기도 하고요. 별거 아니지만, 작게나마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는 거죠.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요. 포인트도 적립해 주세요! 정희님도 나중에 해보시길 권해드려요.(웃음)


ㅣ꼭 한번 해보겠습니다.(웃음) 이야기를 들으면 부지런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아요. 원두 패키지 디자인뿐 아니라, 생산부터 판매까지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으시잖아요.

연) 디자인은 오래전부터 그림도 그려왔고, 예술 관련 일을 하면서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둘이 운영하는 곳이라 회사처럼 효율적 이긴 어렵고요, 분담 없이 각자 할 수 있는 일은 해내야 해요.(웃음) 번거로워도 우리 손길이 계속 닿기를 원하기도 하고요. 요즘은 인스타가 없으면 안 되는 시대잖아요. 많은 '좋아요'와 '팔로우'가 있어야 하는데, 저는 오히려 그 부분이 지나치게 확산이 되어서 역으로 진정성과 진심이 돋보이는 시대라고 생각돼요. 손때 묻은 곳을 보기가 어렵기도 하고, 아날로그를 갈망하시는 분들도 많기 때문에 어렵지만, 우리 손으로 하기 때문에  더 의미 있는 것 같아요.

ㅣ라이픈은 명확하다는 말이 참 잘 어울려요. 라이트 로스팅을 추구하시고, 어떤 원두를 취급하는지 기재해 두셨잖아요. 산미 있는 커피만 있다면 방문을 고민해 보시는 분도 계시지 않을까요? 

웅) 라이픈은 커피가 가진 순수한 풍미를 좋아하고, 자연스럽게 전달해 드리기 위해 라이트 로스팅을 추구해요. 당연히 다크한 커피를 찾는 분도 계실 테지만, 산미 있는 커피를 많이 접할 기회가 없어서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많으시더라고요. 오셔서 라이트 로스팅된 커피가 나쁘지만은 않구나, 이렇게도 즐길 수 있구나 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혹여라도 풀 바디감에 고소한 맛의 커피를 찾는 분이 속초 주민분이라면 다른 카페도 소개해 드릴 수 있지만, 애써 멀리서 찾아오신 분께는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래서 소비자의 편의성을 위해 인식하고, 산뜻하고 화사한 필터 커피를 추천드린다. 써놓게 된 거죠. 


ㅣ소비자에겐 큰 도움이라 생각해요.  

연) 취향에 원치 않으시면 고려해 보실 수 있게 설명하는 이유는 저희 몫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하는 일에 정보 전달을 드려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고요. 명확성 있게 운영한다는 점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새로운 시도가 두렵지 않은 분들에겐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입맛을 찾을 수 있는 재미의 요소가 될 수도 있고요.(웃음)

ㅣ라이픈은 어떤 장비를 사용하시나요?

웅) 로스터기는 프로스터 thcr 03, 에스프레소 머신은 시모넬리 아피아 라이프, 그라인더는 미토스 원,ek43을 사용하고 있어요. 사용하는 장비를 구성할 때 몇 가지 원칙이 있었는데, 잔고장이 적고 유지 보수가 간편할 것, 개성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기계보다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된 클래식한 타입일 것, 등 몇 가지 원칙이 있었어요. 머신들은 아주 단순한 시스템으로 구동되기 때문에 원재료의 품질이 가장 중요하고요. 


ㅣ추후 납품까지 염두에 두고 계신 걸까요?

연) 납품을 할 수 있는 규모가 되지 않아요.(웃음) 그리고 보통 카페를 운영하면 납품을 생각하지만, 저는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와 어울리는 곳인지, 피드백도 원활해야 하고, 도움이 필요할 땐 방문도 해야 하는데, 저희 둘은 바와 생산과정이 바쁘기 때문에 납품까지 한다면 퀄리티가 나오지 못할 거라 생각돼요. 납품은 엄청난 책임감이잖아요. 계속 요청해 주시는 분 중 단골분이나 많이 드셔보시고 라이픈만의 뉘앙스를 아는 분들과 작게나마 거래는 하고 있지만 로스터리 카페라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워낙 어려운 영역이니까요.

ㅣ라이픈 앞으로의 방향. 어떤 공간으로 남길 원하시나요.

연) 특정 이미지로 국한된 곳이 아니라 편하게 쉬다 가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분들이 오시는 만큼 질문도 다 달라요.(웃음) 제가 영감받은 책과 영화를 알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공간의 디테일을 봐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분들께 환대로 맞이하고 싶을 뿐이에요. 서비스업에 있는 우리도 환대받는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으니까, 공간과 커피로 기분 좋음을 내드리고 싶어요. 앞으로도 중요하지만, 먼저 현재에 충실하며 라이픈을 다듬었으면 해요.(웃음)


ㅣ마지막으로 무엇이든 추천해 주세요!

연) 다큐멘터리 '인생 후르츠'와 '장래 희망은 귀여운 할머니'라는 책을 추천해 드려요. '인생 후르츠'는 젊다는 건 나이가 아닌 매일 즐겁게 살고자 하는 마음에 달렸구나-  생각하게 된 저에게 소중한 영화예요. 백발의 모습이 이렇게 멋지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노년의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되더라고요.(웃음) 덴마크에 살고 있는 엄마와 딸 두 분이 집에서 함께 지내며 쓰신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장래 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책은 나이 들어가는 일이 참 아름다운 일이구나, 나도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느끼게 해준 책이에요. 소소하지만, 소소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추천해 드립니다.



인터뷰하면서 ‘환대’라는 단어가 언급된 적이 있어요.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들리는 이 단어가 왠지 기분 좋더라고요. 어디선가 받은 환대로 기분 좋은 내음을 느꼈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전달함으로써 따뜻해지겠다는 생각과 함께요. 라이픈은 좋은 기분을 소비할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글 조정희 ㅣ 사진 조세민







작가의 이전글 LOOKBACK : 룩백커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