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기가 당연해진 지금, 처음부터 익숙한 것은 아니었음을.
상황마다 어떻게 적응해 왔는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사무실에서
보청기를 하고 난 후, 처음 겪은 공간은 사무실. 그 이유는, 일할 때 못 알아듣는 상황을 빨리 개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이 도서관처럼 매우 조용한 편이라 적응하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내가 처음 느꼈던 놀란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
키보드 소리 –
타자 소리가 이렇게 큰지 몰랐다. 왜 직원들이 타자 소리가 덜 나는 부드러운 타자기를 사 오는지 단번에 이해됐다. 잘 들리는 사람 입장에선 꽤 거슬릴 만한 소리다.
전화 소리 –
다른 직원들이 (심지어 옆자리 직원까지도) 전화로 무슨 내용을 얘기하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소리의 방향감각도 무뎌서 어느 자리에서 벨이 울리는지 한참 찾아야 했다. 보청기를 하고 나서부터는, 굳이 무슨 내용을 얘기하는지 집중하지 않아도 단어가 들린다. 전화벨 소리도 어찌나 선명한지. 사무직에 일하면서 이런 둔감함을 가지고 어떻게 적응해 왔나, 새삼 내 자신이 대견하기도 짠하기도 했다.
직원들 말소리, 발걸음 –
전화 내용을 모르듯이, 직원들이 옆에서 떠들어도 내가 온전히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대화 하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아마 이건, 잘 안 들려서라기보단, 평소에 하도 집중하려고 애쓰다 보니 금방 지쳐서 내가 듣지 않아도 되는 내용엔 온전히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런 습관이 들여져 있었다. 직원들의 지나가는 소리 또한 크게 인지하지 못했다. 소리를 애써 인지 해야 하는 피로감 때문에, 자체 노이즈캔슬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 가까이서 속삭이는 소리 –
제일 곤란했던 상황은 이거였다. 워낙 평소에 자체 소음차단을 하고 있어 나를 직접적으로 부르지 않는 이상 멀리서 나를 부르면 그걸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여러 직원이 날 찾는 걸 전달해 줘야 할 정도로…. 그래도 직원들은 그만큼 내가 집중력이 좋아서 못 듣는 거로 생각하신 것 같다. 잘 못 들어서도 있을 것이고, 집중력이 좋은 것도 있을 거다. 사무실이 워낙 조용한 편이라, 내 자리에 와서 업무 이야기를 할 때도 속삭일 때가 많았는데, 정말 곤란했다. 입에다가 귀를 막 갖다 댈 정도였다. 그래서 조금씩 크게 얘기해주셨었다. 글로 정리하면서도 다시 보니 나도 정말 힘들었지만, 주변의 배려가 정말 컸구나! 새삼 느낀다…. 보청기를 하고 나서는 멀리서 날 부르는 소리도 한 번에 듣고, 속삭이는 말도 곧바로 알아듣는다. 직원들이 나의 잘 알아듣는 변화를 느꼈을진 모르겠다만, 지금의 나는 너무 감사하다.
커피머신, 복사기 소리, 디지털 도어락 소리 –
기계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 보청기를 하고 며칠 동안은 뒤로 물러서 있어야 했다. 나에게 너무 자극적으로 크게 들렸기 때문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현재는 그런 소음 크기도 아무렇지 않게 느낀다. 그만큼 큰 소음이라는 걸 뇌가 학습했기 때문이다. 창고 디지털 도어락을 누를 때마다 이렇게 예쁜 효과음이 나는지 처음 알았다. 맑고 선명한 소리. 뿌옇게 성에가 낀 안경을 깨끗이 닦아 세상이 선명히 보이는 느낌이다.
전화할 때 –
한번은 수화기 위치를 자연스럽게 귀에 갖다 댔다가 하나도 안 들려서 너무 당황한 적이 있다. 보청기 착용 시, 귀 위에 보청기를 걸치고 귓구멍에 연결선을 삽입하는데, 통화하려면 소리를 모으는 귀 위쪽으로 수화기를 놔야 들린다. 순간 그 위치를 찾지 못해 한참 쩔쩔맸다. 그래서 지금은, 전화하지 않더라도 한 번씩 수화기 위치를 어디에 대야 하는지 연습하곤 한다.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 익숙해지기 위해서이다.
거리를 걸을 때
세상 그렇게 다양한 새들이 울어대는지 몰랐다. 큰 나무 옆에만 지나가도, 울창한 숲에 온 것 마냥 다양한 새들이 아침, 저녁으로 울어댔다. 새들의 지저귐만 들어도 힐링이 되는 건, 들리는 자연 소리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차 소리와 바람 소리도 유독 크게 들렸지만, 큰 소음은 대체로 금방 적응했다. 오히려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가 또렷이 들리는 건, 왠지 사생활을 알게 된 느낌이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다. 그것 또한 신경은 덜 쓰지만, 뇌에 자극이 둔감해지지는 않게끔 말소리는 인지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운전 중에
방향지시등의 똑딱똑딱 소리 또한 맑고 선명하게 들렸다. 이렇게 유독 더 잘 들리게 된 기계음들이 있는데, 그 주파수 음역대가 안 들렸나 보다. 운전할 때 안전을 위해 차의 미세한 소리 변화를 알아차리는 게 중요한데, 이젠 좀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항상 듣던 음악 볼륨은 12~15였던 것이, 4~6으로 듣고 있으니, 거의 3배 잘 듣게 된 셈이다.
데이트할 때
요즘 가장 많이 대화하는 사람은 단연코 남자친구인데, 예전엔 남자친구가 지나가면서 하는 말들, 혼잣말들, 흐리는 말들을 아예 못 알아채거나 거의 못 알아들었다면, 이제는 그런 소리도 다 정확하게 들린다. 대화할 때 되묻는 경우가 현저하게 줄었다고 한다. 그의 모든 말들을 귀담아들을 수 있게 돼서, 그에 대해 모든 걸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하다.
집에서
우리 강아지 캔디의 헥헥 숨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들린다. 신나서 기분 좋은 헥헥소리가 더 와닿아서 너무 귀엽다. 강아지가 도도도도 뛰어다니는 소리, 밥 얼른 달라고 조용히 낑낑대는 소리도 하나하나 소중하다. 캔디가 더 크게 소리 내지 않아도 내가 바로바로 반응하니까 캔디도 찡찡거림이 줄어든 것 같다. 집안일을 할 때 나는 생활 소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시끄럽다. 이래서 귀가 예민한 분들은, 층간소음 때문에 매우 힘들겠구나 공감되었다.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을 때
장시간 이용하다 빼면 귀에 공기 찬 느낌처럼 먹먹하다. 가면 갈수록 학습된 소리가 늘어나서, 조금이라도 비슷한 소리가 들리면 예전보다 인지하는 정확도나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뇌신경을 쓰고 있구나, 이렇게 직관적으로 느끼는 건, 보청기 덕분에 처음 하는 경험이다.
보청기 관리
가끔 제습 통에 넣었다가 충전하는 걸 까먹는다. 그러나 완충하면 24시간 사용할 수 있기에 하루 정도는 잊어버려도 충분하다. 초반에 한번은 완충이 안 된 상태에서 이틀 연속 사용했다가 배터리 잔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등과 함께 보청기 소리가 좀 덜 매끄러워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웬만해선 잊지 않고 완충하려고 노력한다. 씻기 전에 안경 벗듯이, 보청기 빼고 끼는 일은 나에게 전혀 번거로움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