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나누면 반이 되는 걸까?

by 다니


나는 기쁨을 나눠 배가 되는 경험보다, 아픔을 나눠 반이 되는 경험을 더 많이 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기쁜 일에 더 배 아파하고, 아픈 일엔 더욱 관대하며 진심으로 걱정하더라. 그래서 자연스레 좋은 일엔 아닌 척 드러내지 않았으며, 아픈 일은 더욱 공유하며 살아왔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 자신은, 상대방이 드러내는 솔직한 이야기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할 것 없이, 진심으로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축하해 주며 위로해 주는 사람이 되고자 애써왔다.


여태 내 아픔을 나누는 것에는 거리낌 없었다. 그런 것을 내가 솔직하게 얘기할수록 금세 가까워지고 더 깊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고민이라도 혼자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많이 공유하고 물어볼수록 대화가 풍성해짐을 느꼈다. 실제로도 많은 입장과 경우를 알 수 있어서 도움이 되기도 했다.




보청기를 하고 나서는, 처음으로 아픔을 드러내는 걸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를 주저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보청기에 대한 ‘편견’이었다. 앞뒤 설명이 부족한 상태로 ‘보청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 전할 경우에 생길만한 오해는 생각보다 커서, 정말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 전후 사정을 다 설명할 여유와 들을 태도가 되어있을 때 아니고선 말하지 않게 됐다. 심지어 가까운 사람들도 혹여나 너무 심각하게 보는 것 아닐까 걱정이 앞섰지만, 가족과 친구들은 얘기를 듣고 앞서 글에 썼듯이 “잘했다, 정말 잘했어!”라고 위로 해주었기에 말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앞으로 새로운 사람들에게 나를 알릴 때가 고민이었다. 이런 장황한 설명을 하자니 그렇고, 그렇다고 숨기면서 지내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막상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뵈는 상황에서도 언제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유전성 난청이 원인인 것 같다고 말씀드리게 되면, 이 또한 걱정과 오해를 푸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아 막막하기만 했다. 결국엔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만, 그 시간을 잘 지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막연한 마음이 먼저 드는 건 사실이었다.


앞으로 이사 가서 또 새로운 직장을 다니게 된다면, 새로운 사람들과 사귈 때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레 얘기할 수 있을까? 아무리 머리카락으로 가려져 잘 안 보인다 해도, 머리도 묶고 싶고 자연스레 움직이다 보면 눈에 띌 수 있으므로 끝까지 숨기는 건 어렵다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직장에서도 귀에 뭐냐고 물어봤을 때 그냥 넘어간 적이 있다. 그렇게 한 것은 그 순간 다 설명하기 힘든 이유였다. 퇴사를 앞두고 있기에, 눈치챘던 친한 동료에게는 따로 만나서 시시콜콜 털어놓을 생각이다.




뭘 그리 깊이 고민하나, 굳이 먼저 얘기 꺼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있다가 얘기가 나오면 나오는 대로 또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복잡하게 어차피 겪지 않으면 모를 거 당장 해결되지 않을 고민 길게 물고 늘어지는 걸 딱 질색하기에. 나도 어쩌면 걱정할 만큼 다하고 툴툴 털어버리고 싶어서 지금 이렇게 시작된 걱정을 끝도 없이 쏟아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신경 쓰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거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만큼 신경 쓰이는 고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나면,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아픔을 나누는 것이 과연 반이 될까? 이번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 약점이 정말 약점으로만 남을 가능성도 있었다. 내 청력저하 사실로 인해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 그래서 생각이 길어지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익명의 공간인 브런치에 보청기 적응 일기를 연재하는 건, 하루빨리 이 상황에 익숙해지고 적응하고자 하는 나의 바람이 간절하다는 걸 명확히 보여주기도 한다. 내 마음의 불안과 그에 대한 대응이 앞다퉈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픔을 나누는 것이 반이 되는 세상을 원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약함을 부끄럼 없이 드러냈으면 좋겠다. 그 솔직함이 무기가 되어 서로를 더 공격하기도 하는 잔인한 세상이라, 무작정 약함을 드러내라고 그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보다 용기를 낸 사람들이 본인이 걱정했던 것보다 더 행복해졌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퍼지기를 희망한다. 그 중 한 사람으로서 내가 털어놨던 고민 또한, 별것 아니었다는 후기를 쓰기 기대한다.


걱정은, 앞으로 다가오는 일이 꽤 괜찮게 흘러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최적의 준비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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