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범한 오후, 늘 그렇듯 핸드폰을 들고 수다를 떨던 중, 학군지에 사는 그 친구와 통화가 시작되었다. 평소처럼 육아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아이들 보통 몇 시에 자?”
“10시면 재우려고 하지.”
그러자 친구가 한 마디 툭 던졌다.
“별하 할아버지 돈 많아?
안 그러면 공부 시켜야지! 우리 애는 이것저것 숙제 다 시키고 12시에 자는데…!”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웃음과 한숨이 동시에 밀려왔다. 내 육아 방식과 친구의 육아 방식은 마치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우리 둘은 같은 부모지만, 살아가는 동네가 다르니까, 육아 철학도 너무나 동상이몽이었으니까.
내 동네는 비학군지. 아이들의 저녁은 언제나 부드럽고 편안하게 시작된다. 10시 정각, 작은 램프 불빛 아래서 아이를 재우며 오늘 하루의 이야기들을 나누곤 한다.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친구랑 하교길에 달리기 시합했는데, 내가 먼저 달려갔었거든? 그런데 ...“
바로 그 순간, 아이의 순수한 웃음소리가 온 집안을 감돌고, 나는 이 평범한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느낀다. 학원이나 과외,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숙제 대신,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시간이 아이의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반면, 학군지에 사는 친구의 집은 또 다른 풍경이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곳에서는 숙제와 학습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리 애는 이것저것 숙제 다 시키고 12시에 자는데…!”
정말 학군지에서는 밤 12시가 되어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 수 있는가? 돈 많은 집안의 자녀들이라면, 밤늦도록 학습하고도 아침 일찍 학교를 가야 하는 그 삶의 무게를 상상하기 어렵다.
아이의 미래를 위한 열정과 학부모의 집념이 넘실거리는 그곳에서는, 공부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 한순간도 휴식의 여유를 주지 않는다. “별하 할아버지 돈 많아?”라는 친구의 농담 속에는, 돈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을 실현하기 위한 혹독한 현실이 함께 녹아 있다.
비학군지와 학군지, 육아에 있어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결국 부모의 마음은 같다. 우리 모두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행복을 쌓아가는 방식은 우리 동네마다, 가족마다 달라 보인다.
나는 아이가 충분한 휴식과 가족의 따뜻한 정을 느끼며 자라길 바란다. 반면, 학군지의 부모님들은 혹시라도 아이가 놓칠 수 있는 미래의 기회를 위해, 더 늦은 밤까지라도 공부와 숙제에 열중하게 만드는 것 같다.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이 두 세계는, 각기 다른 꿈과 기대를 담고 있는 동상이몽의 이야기다.
육아는 정답이 없는 여정이다. 어느 한쪽이 반드시 옳다거나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수 없는, 각 가정의 소중한 방식이다. 오늘 통화 한마디가 나에게도, 친구에게도 서로의 길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어쩌면 아이들이 자라나면, 우리 각자의 방식이 담긴 그 추억들이 한데 모여 한 가족의 큰 이야기를 만들어 갈 테니까. 그리고 그 이야기는 언젠가, 각자의 방식대로 아이들이 선택한 길 위에, 따스한 빛처럼 비추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