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서유럽서 느낀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의 수집기(마지막)
지금도 파리의 풍경은 머릿속에 선하다. 한 번 눈에 안겼던 그 모습들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하다. 파리에서 마지막 둘째 날 동안 첫째 날 첫 목적지는 몽파르나스묘지였다. 난 묘지가 있는 공원을 좋아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느낄 수 있는 곳.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그런 푸념조차 무색해지는 곳. 그곳에 묻힌 망자들은 생자들의 삶에 대한 불평거리조차도 부러워 할지도 모른다.
“너희들, 살아있다는 게 어디야?”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묘비 앞에 선 순간 나는 잠깐이나마 “조르바”가 되어보기로 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그 “조르바”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를 본 순간, 일단 껄껄 웃었다. 묘비 위에 새겨진 고요한 이름들, 그리고 그 위를 덮고 있는 립스틱 자국들과 헌물들, 이런 것들을 보고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이 튀어나온다.
“이 사람들, 철학자들이라잖아? 삶이 어쩌고, 죽음이 어쩌고 고민했겠지. 근데 봐, 결국 여기도 온통 키스 자국이고 돌멩이고 꽃이라니! 사람들 참 멋지지 않나? 철학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그냥 살면 되는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았을까? 그래도... 이게 인간이지. 이게 우리지!”
“죽음이 뭐 대단한 거라고. 결국 우리 다 이렇게 되는 거잖아. 하지만, 중요한 건 죽기 전에 얼마나 제대로 살았느냐야. 이 두 사람, 철학으로 온 세상을 흔들어 놓았다고? 좋지. 근데 더 중요한 건, 사람들이 이렇게 기억해 준다는 거야. 돌멩이를 올리고, 꽃을 두고, 키스를 남기고... 사람들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게 진짜 삶이지.” “내가 여기 키스 자국 하나 더 남긴다! 이게 나, 조르바가 두 사람에게 보내는 인사야. 사랑 잘 했어, 잘 살았어!”
난 파리의 지하철 소매치기에 대해 그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간 독일, 스위스, 밀라노, 로마, 제네바, 니스 등을 거치면서 별 일이 없었기에 맘을 놨는지 모른다. 하지만, 방심은 가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깨달은 그 곳은 파리였다!
바로 샹젤리제 거리의 지하철역이었다. 청바지 차림이었고 생각 없이 바지 뒤편에 지갑을 찔러 넣은 채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주변엔 한 무리의 어린 여자아이들이 있었는데 한 명의 성인 여성이 그들과 함께 있었다. 집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여기서 이번 여행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집시 무리를 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열차가 왔다. 문이 열렸고 난 우리 가족을 먼저 들여보내고 마지막에 열차로 탑승하기 위해 앞발이 열차 바닥에 닿는 순간이었다. 지갑이 꽂혀있는 엉덩이 한쪽이 횡해지는 뜨악한 느낌이 들어 한 쪽 손으로 지갑을 체크 했는데 없는 것이다. 그 찰나 단발마적 외침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악!”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그 누군가를 추적하려는 순간 - 열차 문이 닫히기 바로 전 - 문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내 지갑이 털썩 던져지는 것이다. 누구의 소행인지 얼굴을 볼 겨를도 없었다.
안도와 함께 바닥에 있는 내 지갑을 수습하는 나는 지하철 내 승객들의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고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있었는데 인상 좋아 보이는 백인 아저씨가 쯧쯧과 함께 조심하라는 말을 일러준다. 몇 분 후 운행 중인 열차 내 한국어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방송은 덤이었다.
어쨌든 파리하면 루브르 박물관 아니겠어? 아직 소매치기 경험의 잔상이 남아있었지만 난 루브르 박물관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모나리자는 봐야지!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발길을 옮겼을 때, 나는 마음 한구석에서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 그림 앞에는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보다는, 사진 속 "나와 모나리자"라는 독특한 조합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을 거라는 사실을. 하지만 내 예상은 너무나도 순진했다. 그녀 앞에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빼곡히 몰려들어 있었고, 그들의 머리 위로 셀카봉이 숲처럼 우거져 있었다.
"야, 야! 차라리 포기해라." 내 마음속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하지만 나는 호기심과 약간의 고집으로 무리를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모두들 그녀를 보며 감탄하는 듯했지만, 정작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녀에 대한 기억은 폰의 카메라 속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여보, 찍었어? 내 얼굴 잘 나오게 찍었어?" 그들의 대화는 명작에 대한 열광이라기보다 마치 레스토랑에서 음식 사진을 찍을 때의 열정과 비슷해 보였다. 만약 모나리자가 이 장면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 미소는 어쩌면 우리가 지금 그녀에게 보이는 이 모든 열정적인 혼란을 예견하며 지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어차피 너희는 날 제대로 보지 않을 테니까,"라고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마침내 가까스로 그림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나는 잠시 그녀를 마주했다. 그리고 느꼈다. 그녀의 미소에는 뭔가 장난기가 담겨 있었다. "너도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이제 너도 인증 사진 한 장 찍고 갈 거지?"라는 듯한 미소였다. 나는 손에 든 폰을 내려놓았다. 그녀를 사진으로 남기는 대신, 내 기억에 담기로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옆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좀 비켜줄래요? 사진 찍게요!" 나는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고, 그녀는 다시 군중 속에 묻혀버렸다.
결국 나는 그녀를 보러 갔지만, 정작 그녀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대신 그 앞에서 애쓰는 사람들, 그 열정을 부채질하는 그녀의 미소가 내게는 더 흥미로웠다. 어쩌면 모나리자는 단지 한 시대의 걸작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모두의 모습을 담아내는 가장 정교한 거울일지도 모른다.
에펠탑은 건축공학과 재료역학이 만들어낸 우아한 강구조물이다. 구조물을 구성하는 부재(Member)는 젓가락과 같은 형강류로서 각각의 부재가 저항할 수 있는 힘은 크진 않지만 수 만개의 부재가 유기적으로 단단히 결합되어있다. 스웨터가 수 많은 털실의 조합으로 되어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이런 강구조물은 해석 Software를 사용하여 구조 Modeling을 한 후 구조물이 받는 응력이나 변위 등을 무리 없이 계산해 낼 수 있지만 1800년대 후반엔 아마도 지루한 수계산을 통해 구조해석을 수행하며 바람과 같은 유체의 저항과 에펠탑 꼭대기부터 지면으로 전달되는 장대한 중력을 견디어내는 최적의 구조로 만들었을 것이다. 같은 엔지니어로서 구스타브 에펠을 포함한 그들 엔지니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한편, 에펠탑 곳곳에 설치된 수 만개의 스트레인게이지는 곳곳에 발생하는 변형율을 빈틈없이 계측하여 상시적으로 구조물의 이상여무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에펠탑을 구성하는 각 부재의 응력과 변형율의 흐름과 추이를 들여다보며 구조물의 건전성을 체크하는 것이다. 마치 인간의 혈압을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것과 같다. 120년 이상 나이를 잡순 노화된 구조물이니 신경을 써줘야 하는 것이다.
마음은 항상 보헤미안을 꿈꾸지만 현실은 같은 회사에 20년 이상 눌러앉아 있는 지독한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여하튼 난 항상 여행을 하며 꿈을 꾸고 있고 꿈을 꾸면 여행에 대한 것들이다. 비루하고 지겨운 일상들을 견디어 내는 데 버팀목은 다름 아닌 꿈과 여행이라 믿는다.
여기 사진들을 다시 정리하고 있으니 낭만, 자유, 평등, 우애의 도시... 파리가 아련한 옛 영화처럼 떠오른다. 늦은 저녁 유람선이 만들어 내는 센강의 윤슬은 아름답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