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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느낀 생각들의 기록

by 아나포트킨

하퍼 리는 독특한 작가다. 단 한편 앵무새 죽이기라는 책으로 - 원제는 "To kill a mocking bird"인데 Mocking bird는 우리나라 사람이 보기에는 앵무새가 아닌 지빠귀가 맞지 않을까 - 미국문학사의 최고봉에 올랐다. 이후 세상을 뜨기 전까지 다른 어떤 책도 출간하지 않았다. 드라마틱하고 경이로울 정도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새로운 책을 써서 다시 한 번 세상의 평가를 기대하게 되는데 하퍼 리는 단 한권으로 끝냈다. 이상적인 소설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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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용은 이렇다. 1930년대 미국 남부의 어느 한 마을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편견과 혐오에 대한 비판의식을 8살 소녀의 시선을 통하여 간결하고 부드럽게 풀어낸다.

앵무새는 소녀 아버지인 변호사 애티커스가 말하듯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비유하는데 여기서는 은둔자 “부 래들리”와 성폭행피의자 “톰 로빈슨”으로 나타난다.

부 래들리는 그 실체와는 관계없이 십 수년 동안 은둔하고 있다는 사실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기피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흉측한 괴물 내지는 무자비한 살인마로 가공되어 낙인이 찍혀버린 편견의 피해자다.

이는 지금 우리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겠는데 일반적이고 다수와는 다른 생활방식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고 오해를 사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일컫는 말은 일본어로는 히키코모리인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격리가 과연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세상과의 단절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누구일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 속에서 부 래들리는 주인공인 스카웃과 젬의 수줍은 비밀친구가 되는데 결말 부분에서는 주인공 남매를 습격하려는 괴한을 물리치고는 그들을 구출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반전이 아닐 수 없는데 1980년대 이후의 헐리우드 영화를 본다면 이런 캐릭터들이 종종 나오곤 한다. 하퍼 리는 아마도 이런 영화들의 제작에 충분한 소재를 제공한 소설가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동시에 유튜브를 통해 흑백영화 “앵무새 죽이기”를 봤다. 1962년에 제작된 영화인데 그레고리팩이 스카웃의 아빠인 애티커스 핀치로 출연하여 정적이면서도 강인한 윤리적 변호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도 그레고리팩은 소설 속의 그 모습보다 더 입체적으로 캐릭터를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어디서 읽었지만 스카웃으로 출연한 그 여자 아역배우는 이 영화 출연 이후에 단 한편의 영화도 출연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한 권의 소설을 출간하고 만 하퍼 리의 모습이 연상된다. 게다가, 이 소설은 하퍼 리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하니 기묘한 운명이라고 할까.

이제, 편견과 혐오의 대상이 된 또 다른 앵무새 톰 로빈슨을 보자면 그는 건장하고 젊은 20대의 흑인 청년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있는 백인 처녀를 동정심의 - 당시의 시대상으로 흑인이 백인에게 동정심을 베푼다는 것이 가당치는 않았겠지만 - 차원에서 여러 번 가사일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백인처녀는 집안으로 톰 로빈슨을 끌어들여 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등 성적 추행을 하다가 그의 아버지에게 그 장면을 들키고 만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백인 여성이 흑인 남성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은 1930년대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마을에서는 상상조차 힘든 일이 아니었을까? 이내 그 백인 부녀는 피해자인 톰 로빈슨을 감히 백인 여성을 성폭행한 파렴치범으로 만들기 위한 공모를 하고 지역 보안관에 신고를 한다. 여기서 스카웃의 아빠인 애티커스 핀치가 피의자로 기소된 톰 로빈슨의 국선변호를 맡게 된다. 그 법정 싸움은 이길 수 없는 것이었고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의 수임과정 역시 그 지역사회의 묵인된 무거운 비난을 감내해야 하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톰 로빈슨의 재판과정을 통해 피해자로 위장한 증인들의 가증스러움, 뻔뻔함과 톰 로빈슨의 진실성, 성실함 그리고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의 논리 정연함과 청중의 공감을 끌어내는 정중함은 이 재판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누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다.

배심원들은 피고를 유죄로 선고하고 이후 톰 로빈슨은 감옥에서 탈옥을 시도하다 총에 맞아 죽임을 당하지만 편견과 혐오의 대상인 흑인 피의자의 편에 서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사회는 조금씩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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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미국 남부의 시골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너무나 지역적인 정서라 해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통하는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인류가 공감하며 지향하는 공통적인 정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 부당한 차별을 참지 못함,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믿음 등이 그러한 것들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주위의 사람들 중 누구와 비슷한지를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사람의 속성은 비슷할 것이다. 성실하고 자애로운 아빠 애티커스 핀치, 가정부로서 집안일과 양육을 담당하는 현명하고 사려 깊은 흑인 아줌마 칼퍼니아, 동네 아줌마들과 교류를 하며 원만하게 지내지만 자신의 윤리와 철학을 지닌 머디 아줌마, 극성스러운 강남아줌마를 연상시키는 신분제 옹호자 알렉산드리아 고모, 가난하지만 강직하고 선량한 성품을 지닌 커닝햄 사람들, 사회에서 소외되었지만 백인의 사회적 지위를 비열하게 이용하는 이웰가의 부녀, 그 밖에 사회의 관습을 인정하며 그 틀에서 벗어나진 못하지만 소외받고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는 선량한 사람들 이 모두가 역시 지금 우리의 사회를 구성하는 원자들이다.

인간은 사회적 펭귄으로서 다수의 생각과 행동에 자신의 스탠스를 수정하고 맞춘다. 이건 자신의 신념체계와 윤리와는 상관 없이 영향을 받는다. 메이컴이라는 마을에서 펭귄이 되지 않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했던 애티커스 핀치의 모습에서 힘들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하나의 인간상을 본다. 이 또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퍼 리가 살았던 앨러바마 먼로빌은 앵무새 죽이기라는 소설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다음에 미국 갈 기회가 된다면 한적한 미국남부 먼로빌로 “앵무새 죽이기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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