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인간의 심연을 후벼파는 두 작품 비교
최근에 경험했던 “오징어 게임3”와 소설 “눈먼 부엉이”의 잔상이 자꾸만 머리에 떠오른다..
황동혁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하며 생존 게임의 잔혹성과 사회 비판적 메시지로 주목받았다면, 사데크 헤다야트의 고전 "눈먼 부엉이"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과 허무주의를 깊이 파고든다. 표면적으로 극명하게 다른 장르와 배경을 가진 두 작품은 그러나 삶의 부조리, 인간 본성의 취약성, 그리고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섬뜩한 유사성을 드러낸다.
"오징어 게임"은 자본주의 사회의 극단적인 양극화와 생존 경쟁을 놀이의 형태로 가시화한다. 벼랑 끝에 몰린 참가자들이 목숨을 건 게임에 뛰어드는 모습은 현대 사회의 착취적 시스템을 은유하며, "더 많은 돈"이라는 탐욕이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게임 참가자들은 자발적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지만, 사실상 그들에게 선택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자본에 종속된 현대인의 처지를 은유하며, 그들이 겪는 고통은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로 제시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성기훈이 결국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은, 부조리한 시스템이 개인에게 가하는 궁극적인 절망을 상징한다.
반면, "눈먼 부엉이"는 외부 세계의 폭력보다는 내면의 깊은 절망과 환상에 침잠한다. 화자는 오직 자신이 그린 여인의 초상화에 매달리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다. 그의 삶은 고독과 허무로 점철되어 있으며 세상은 의미 없는 반복과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오징어 게임"이 외부 세계의 강압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리는 인간 군상을 그렸다면 "눈먼 부엉이"는 삶 자체가 죽음과 다르지 않음을 존재 자체가 고통임을 역설한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죽음의 냄새 부패와 쇠락의 이미지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무의미함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두 작품 모두에서 인간은 취약하고 나약한 존재로 그려진다.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를 배신하고 짓밟으며, 인간 본성의 추악한 단면을 드러낸다. 이는 삶의 조건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도덕적 가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눈먼 부엉이"의 화자는 타인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결국 자신의 내면 세계에 갇혀 파멸에 이른다. 그의 고통은 외부적 요인에서 비롯되기보다는 존재론적 불안에서 파생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징어 게임"이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와 그 안에서 발버둥 치는 인간의 비극을 통해 현실 비판적인 메시지를 던진다면 "눈먼 부엉이"는 삶 자체의 부조리함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허무함을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전자가 외부의 폭력과 강압에 의한 죽음을 다룬다면 후자는 삶 자체가 죽음의 연장선이며 존재 자체가 고통임을 역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나약함, 절망, 그리고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운명 앞에서 무력한 존재를 그려내며 각 작품들의 소비자에게 삶의 의미와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시대를 초월한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죽음의 게임 속에서 생존을 갈망하거나 삶의 부조리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의 모습은 결국 우리가 마주해야 할 불편한 진실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