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과 함께 살아가는 즐거운 인생
난 Rock 매니아다. 2025년 9월 어느 아침.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인 아침 전철 내.
오늘도 플레이리스트 중 하나를 선택한 후 귀와 가슴을 두드리는 Rock을 듣는다.
이 음악들은 머리를 맑게도 해주지만 나를 과거 어느 시절로 이끌며 이동시간 동안 편안한 단잠을 마련해주는 자장가가 되기도 한다.
Rock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문득, 몇 년 전 읽었던 강신주 교수의 “감정수업”이라는 책을 떠올렸다. 그는 감정 마흔 여덟 가지를 열거하며 각 감정에 어울리는 책과 생각들을 이야기로 풀었다. 그 깊이와 폭에 재미와 감동을 느낀 적이 있었다. 나도 살아오며 적어도 50번 이상은 들었을 Rock 명곡들에 대한 감정과 스토리를 정리해 보고 싶었다. 이 글 시작에 대한 영감은 강신주 교수에게 그 지분이 있음을 말씀드린다.
곡마다 스며있는 스토리가 있으니 내가 살아온 인생의 발자취이기도 하다. 골라보니 대부분 90년대에 만들어지고 인기를 누렸던 음악들이다. 그렇지만 사라지지 않으며 나와 같은 Rock 매니아에게 지금도 꾸준히 소비되는 곡들이다. 나의 20대, 감정을 몰입하며 들었던 음악들은 흐릿한 기억과 함께 빛바랜 사진처럼 가슴 한 켠에 남아있다. 사람은 미화된 기억인 추억을 되씹으며 살아간다. 다만 여기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고 모든 번뇌는 시간으로부터 생겨날 터이니.
첫 번째 곡 : Extreme – “Tragic Comic”
1992년 발표된 Extreme의 명반 “Ⅲ Sides to Every Story”는 전작 앨범들과는 다른 결로 성찰의 대상을 확장하여 전쟁, 평화, 정치, 인권 등 사회문제를 파고든다. 이 곡의 주인공은 자신을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낭만파 시인으로 묘사한다. (I’m a hapless stuttering poet)
어쿠스틱 기타의 섬세한 아르페지오와 주포 Nuno Bettencourt의 유려한 기타 솔로는 전매특허이며, 사랑하는 이 앞에서 의도치 않게 어설픈 모습들을 보인 후 홀로 느끼는 씁쓸한 자책감을 담아낸다. 마치 '이불킥'하는 듯한 인간적인 후회와 민망함이 이 곡의 핵심 정서다. Gary Cherone의 감성적인 보컬과 멤버들의 완벽한 하모니는 이러한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더욱 섬세하게 표현하며 완벽하지 않은 인간 존재의 보편적인 어색함과 자기 비하를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이 곡을 듣고 있자니 Charlie Chaplin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명언이 생각나며 쓴웃음이 나온다. 제대 후 복학생 시절, 중앙도서관에서 소니 워크맨과 함께 시험공부를 하며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던 곡인데 가사의 의미가 들을 때마다 새로워진다. 찾아보니 집에 그 카세트 테이프가 아직도 남아있어 기념 촬영을 해줬다.
두 번째 곡 ; Ugly Kid Joe – “Everything About You”
30년도 더 된 90년대 초반 “Cats In the Cradle”이라는 곡으로 Ugly Kid Joe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곡을 듣는 순간, 최애는 “Everything About You”로 바뀌었다. Rock이란 이런 맛이지! 곡의 시작부터 펑키한 그루브와 하드 록의 에너지가 뒤섞인 가운데 원초적 반감이라는 감정을 거침없이 토해내며 단순한 짜증을 넘어선 대상에 대한 근원적인 반감과 경멸을 직설적인 가사로 표현한다. 이는 듣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특히 보컬 Whitfield Crane의 능글맞으면서도 비아냥거리는 딜리버리는 겉으로는 쿨한 척 포장된 사회의 위선에 대한 통렬한 비판적 시선을 담아낸다. 이 곡은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반항적 기조 속에서 솔직함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음악적 선언이다.
이 곡을 듣고 있자니 모든 것에 화가 나는 10대 청소년들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난다. “아니! 이해는 하겠는데, 어쨌든 다 싫다구!”
골프로 가보자! 라운딩 전 많이 그리고 충분히, 열심히 연습했다. 실제 경기에서는 OB, 탑핑, 생크, 뒷땅 등 골프귀신들이 샷들에 출몰하였고 망연자실한 결과인 야속한 스코어 카드와 함께 집으로 운전하며 돌아오는 차 안, 거울에 비친 우울한 모습 그리고 골프에 대한 애증의 감정과 함께 모든 것이 싫어질 때. 이 곡이 제격이다.
세 번째 곡 : Def Leppard – “Hysteria”
동명의 곡인 Muse의 “Hysteria”가 Rock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더 유명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기타 아르페지오로 시작하며 점진적으로 웅장함을 더해가는 사운드 스케이프 속에서 격정적인 열망이라는 감정을 폭발시키는 이 곡이 더 좋다. 곡 전반을 지배하는 겹겹이 쌓인 보컬 하모니와 풍성한 기타 리프는 사랑과 광기 사이를 오가는 듯한 혼돈 속에서도 그 감정의 근원을 향한 걷잡을 수 없는 갈증 - 가사를 음미해보면 편집증을 지닌 스토커의 감미로운 절규 같기도 하다 - 을 표현한다.
브리티쉬 인베이젼이라는 흐름 속 80년대 영국 밴드 하드 록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이 곡은 마치 거대한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는 듯한 압도적인 사운드와 함께 듣는 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재된 열정을 일깨운다.
모든 밴드마다 각자 스토리텔링은 있다. 하지만, Def Leppard의 그것은 더 특별하다. 드러머인 Rick Allen은 1984년 교통사고로 왼쪽 팔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드러머 교체 없이 그들은 한 차원 성장한 음악적 완성을 이뤘는데 이 곡이 그 결과물이다. 그런 사연과 함께 듣는 이 곡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감정의 폭발적인 분출을 경험하게 해준다.
몇 년 전 생뚱맞게도 Taylor Swift가 이 곡을 Def Leppard와 멋지게 소화하는 영상을 봤는데 명불허전이고 고전은 시대를 관통하며 끊임없이 재해석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Hysteria는 Vault라는 Compilation 앨범에도 수록되었고 집에 보관된 CD를 찾아내 가억을 소환해줬다.
네 번째 곡 : Suede – “Beautiful Ones”
90년대 후반, 대학 졸업 무렵, IMF 구제금융의 직격탄을 맞은 X세대.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 젊고 할 일은 많았기에 희망은 있었다.
1998년 겨울 저녁, 신촌 어느 까페에서 맥주잔과 함께 흘러나왔던 이 곡은 내게, IMF 체제라는 음울한 세기말적 분위기와 함께 퇴폐적으로 스며들었다. 몽환적인 브릿팝 사운드는 강렬한 동경이라는 감정을 자아낸다. Brett Anderson의 독특하고 매혹적인 보컬은 현실 너머의 '아름다운 존재들'에 대한 환상과 그들을 향한 걷잡을 수 없는 갈망을 표현한다. 이 곡은 도시의 뒷골목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과 소외된 이들의 꿈을 노래하며 듣는 이를 매혹적인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글램 록의 영향을 받은 화려하면서도 어딘가 불안정한 사운드는 동경의 대상이 주는 짜릿함과 동시에 미지의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며 Suede만의 유니크한 음악적 색채를 완성한다.
이 곡이 수록된 카세트 테이프는 아직 집에 잘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