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은 여전히 영원하더라
인간관계에 대하여 피로를 느끼고 관심이 무뎌질 때 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음악을 듣고 글을 쓰며 내 일을 하는 거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을 기억하자. 음악은 삶의 위안이 되고 리셋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대부분 기계는 금속재료로 만들어진다. 금속의 강도와 수명을 평가하는 지배적인 인자인 피로(Fatigue)라는 중요한 용어가 있다. 하중을 반복적으로 받게 되면 그 재료의 본래 강도보다 더 낮은 지점에서 파단 한다는 개념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감내할 수 있는 피로의 한도가 있다. 인간도 기계와 다르지 않다. 누구는 유전자 기계라고 했으니. 때로는 응력집중을 완화해 주어야 탈이 나지 않는다. 물리적인 치료도 있겠지만 귀와 가슴으로 듣는 음악은 집중된 응력 완화 효과에 꽤 탁월하다.
Rock 음악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기계 구조물을 다루는 내 일과 닮아있다. 보이지 않는 힘(응력)을 계산하고, 수많은 부품(음)을 조립하여 하나의 견고한 구조물(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유사하다. 크레인이 몇 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한 공학의 산물이듯, Rock의 격렬한 리듬과 날카로운 사운드도 우연이 아니다. 기타의 튜닝부터 드럼의 박자, 베이스의 묵직함까지 모든 것이 치밀한 계산과 의도된 감정 표현의 결과다.
거대한 크레인 역시 쇠의 울림으로 가득 차 있다. 수십 톤의 컨테이너를 들어 올릴 때, 붐(Boom)과 거더(Girder)는 묵직한 신음을 내고 와이어는 팽팽하게 인장된 비명을 지른다. 기계와 기어들은 서로 맞물려 금속 특유의 둔탁한 소리를 낸다. 이 소리들은 음악적으로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지만 크레인의 상태를 말해주는 신호임과 동시에 중력에 맞서 얼마나 정교하게 힘을 통제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증거다. 이 소리들은 불필요한 소음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무기물 생명체가 한계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90년대로 돌아가 보자. 입학 당시 운동권의 기운은 학내에 완연했다. 학교 내외를 휩쓸었던 NL이니 PD니 지금 생각하면 얼치기 같은 이론 논쟁, 전대협 출범식, 농활 등 치기 가득한 2년을 보내고 휴학 후 군대에 다녀왔다. 복학도 했겠다. 이제 정신 차리고 앞으로 살아갈 일들을 대비해야지. 그렇지만 웬걸. 국가 부도 사태인 IMF 체제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로 인한 사회체제의 급격한 변경을 수반했고 취업을 앞둔 이들에게 큰 시련과 좌절을 안겨다 주었다.
우울했던 그때, 현 상황을 개인의 귀책 사유로 돌리려는 시도는 이 노래 한방으로 정리된다. “바보야. 문제는 시스템이라고!” 그 당시 귀에 들어왔던 노래는 이 곡이다.
다섯 번째 곡 : Rage Against The Machine - “Know Your Enemy”
이 곡은 펑크, 힙합, 메탈이 뒤섞인 독특한 사운드와 Zack de la Rocha의 분노에 찬 랩-보컬을 통해 "혁명적 각성"이라는 감정을 선동한다. 대중에게 시스템의 기만과 억압을 깨닫고 '적'이 누구인지 명확히 인지하라고 촉구한다.
현대판 Jimi Handrix라 불리우는 Tom Morello의 실험적인 기타 사운드와 묵직한 리듬 섹션은 정치적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혁명을 위한 행동에 나서도록 자극한다. "Know Your Enemy"는 사회 비판과 정치적 참여를 독려하는 강력한 선동이며 억압받는 이들에게 저항의 불씨를 지피는 상징적인 곡이다.
1963년 베트남 사이공에서 “틱광득”이라는 승려의 소신공양(종교탄압에 대한 비폭력적 호소)을 촬영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 사진을 앨범 표지로 채택했는데 RATM의 정치적 스탠스와 정확히 들어맞았다.
난, 그들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George O‘well이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면 이들은 정치적인 Rock을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여섯 번째 곡 : Neurotic Outsiders - “Angelina”
Guns N’ Roses의 팬들이라면 이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5년, 프로젝트밴드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밴드는 펑크에 대한 취향을 공유하는 Sex Pistols, Guns N’ Roses, Duran Duran의 멤버들이 참여했다. 밴드 이름도 “신경질적인 반항아들”이라! 역시 펑크의 반항적 성향이 묻어났다.
그들의 유일한 앨범인 “Neurotic Outsiders”의 세 번째 트랙에 수록된 "Angelina"를 가장 즐겨 들었다. 이 곡은 Steve Jones의 거친 기타 사운드와 John Taylor의 베이스 라인이 어울리며 "냉소적 애정"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Angelina'라는 속물근성이 가득한 인물에 대한 애증이 뒤섞인 시선을 담고 있으며 사랑하지만 동시에 비판적인 거리를 두는 듯한 냉소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펑크의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와 멤버들의 노련한 연주력은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더욱 솔직하게 전달하며 썸 타는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보여준다. 가사와는 별개로 펑키하고 그루브가 뛰어난 이 곡은 지루한 고속도로를 혼자 운전할 때, 몸을 들썩이며 기분전환으로 많이 들었던 곡이다.
일곱 번째 곡 : Pearl Jam - “Animal”
Ridley Scott의 영화 Alien 시리즈를 워낙 좋아했던 터라 최근에 디즈니 플러스의 “Alien Earth”를 꽤 열심히 끝까지 봤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하지만 마지막 회차, 웬디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는 마지막 신에서 흘러나왔던 그 곡! 바로 “Animal”이었다.
보컬 Eddie Vedder의 가사 중 “I would rather be with animal” 이라는 의미엔 “너희는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이거든. 난 차라리 이 외계 생명체들과 함께 할거야” 라는 웬디의 심정을 그대로 반영한다. Producer의 탁월한 선곡이었다.
이 곡은 1993년에 발매된 “Vs.”앨범에 담겨 있다. 30년도 더 된 곡이 이렇게 소환되는 데는 역사는 반복되고 음악은 소환되어 재해석되기 때문이겠지.
30여년 전, 미국에서 “Pearl Jam Vs. 티켓마스터”의 싸움은 음악 산업의 상징적 사건이다. 1994년, Pearl Jam은 공연장 입장료에 붙는 티켓마스터의 높은 수수료에 반발하며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고 이들의 투쟁은 결국 법적으론 실패했으나 아티스트가 팬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최근 Taylor Swift의 투어 티켓 사태 때 티켓마스터의 독점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30년 전 Peral Jam의 싸움이 재조명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