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7월 서유럽서 느낀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의 수집기(여덟번째)
제노바를 벗어나 니스로 가는 고속도로를 몇 시간 달렸더니 어느새 우리 차는 프랑스에 진입한 것 같다. 국경 표시도 제대로 없다. 여기가 프랑스인지 이탈리아인지 구분되는 표시도 없는.. 이래서 EU 아니겠는가? 이 국경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겐 국가 구분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는 구분을 하고 비교를 하는 데 너무 익숙하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불행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시작되지 않나? (나중에 찾아보니 쇼팬하우어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니스 시내에 진입했다. 여름이기도 했고 따뜻하고 포근한 휴양도시의 느낌이 거리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 숙소 앞 주차장이 마땅치 않아 까르푸 지하 주차장에 차를 두고 에어비앤비에서 예약한 우리 가족의 니스 집 앞에 도착한다. 아! 길었지만 인상 깊은 제노바를 관통하며 10시간 이상의 국경을 넘어온 나의 자동차 여행이여..
에에비앤비로 우리 숙소를 예약할 때 호스트 사진을 봤는데 중년여성의 인상이 남부 프랑스 날씨만큼 온화하고 포근해보였다. 집 앞에서 그녀를 만났는데 서툴지만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는 60대 정도의 전형적인 프랑스사람이었다. 친절하고 꼼꼼하게 집안 곳곳을 다정하게 안내해준다. 자기 집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집안 내 아기자기한 프랑스 장식, 그림, 장식물 등에서 그녀의 정성이 느껴졌다. 덧붙이자면,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길래 아침에 로마에서 출발해 늦은 오후 여기에 왔다고 하니 부드럽게 잔뜩 찌푸린 인상으로 웃으며 "Crazy!"라고 한다. 그렇지.. 하루 동안 조금 무리인 거리이긴 했어..
니스가 우리에게 준 시간은 내일 오전 8시까지, 지금 시간은 19시. 아직은 너무나 밝고 아름다운 하늘이 우리를 부른다. 피곤하지만 우린 숙소를 나와 바닷가로 간다.
아담한 항구를 지나 관광객, 여행자들이 주목하는 "I Love NICE" 표지판을 지나 바로 옆 해변가에 잠깐 퍼질러 앉아 프랑스의 바다를 느낀다. 여기는 모래사장이 아닌 몽돌로 해변이 이루어져있다. 매끈한 몽돌은 부드럽게 발바닥을 어루만지며 오늘 하루의 노고를 위로해준다. 마침 아스라해지는 일몰은 아름다웠다.
해가 완전히 내려 앉아 어두워진 저녁. 해변 뒤편엔 괜찮은 식당, 술집들이 즐비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밤이 되면 더 근사해지는 니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린 이곳에서 꽤 유명한 가게인 "Fat Mermaid"에서 Fish & Chips, 햄버거 그리고 맥주와 함께 니스에서의 마지막 밤을 축하하고 있었다. 느끼한 음식도 부담 없이 먹는 나였지만 Fish & Chips의 그 맛에는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우리 뒤에는 영국에서 온 듯한 4명의 가족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2명의 어린 소녀들은 각각 1인당 1인분의 Fish & Chips를 거뜬하게 해치우더라는...
저녁 10시가 훌쩍 넘어버린 지금. 그 레스토랑 벽면 한 편에 붙여진 수 많은 메모들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언제 다시 올지 몰라 애절한 니스에서의 짧은 시간은 이렇게 내 기억에 새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