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리하트 Jun 14. 2022

기적의 프랑스 파리 병원 시스템

코로나가 만들어준 감사한 시스템

Lariboisière Hospital AP-HP병원



저는 말도 안 되게 빨리 진행되는 프랑스 병원 시스템에 또 한 번 놀라고 감사합니다.

쉽게 명을 하자면 감기에 걸려서 의사를 만나기 위해서는 예약을 하고 2일에서 3일은 기다려야 했습니다. 모두들 감기가 나을 때 즈음 의사와 면담이 성사되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 감기몸살이 심하게 걸리지 않고서야 보통 개인이 약국을 방문해서 치료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저 또한 그랬고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온 지도 벌써 2년이 되었습니다. 금방 스치고 지나갈 것 같은 여느 전염병 바이러스처럼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는데 현재로서는 인류 최악의 바이러스라고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종식은 되지 않은 상태이고, 계속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나오는 중에 세계의 경제는 압박을 받고, 하는 수없이 "위드 코로나" 이제 바이러스와 함께 공존하며 잘 대처하면서 살아야 하는 세상이 온 것 같습니다. 정말 공상과학영화의 시작을 맞는 것 같다. 이 와중에 마스크는 벗어던지고 현재 무방비 상태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현재 급증하고, 여기저기서 후유증으로 호소하고 있다. 가 딸에게 물었습니다. "백신 접종을 2차•3차까지 완료했는데 왜? 코로나에 걸리는 걸까?" 딸은 나를 조금 바라보다가 "백신을 맞으면 죽지는 않는데요" 이 말을 듣는데 웃음이 살짝 나오는 것을 참았다. 맞는 말 이긴 하지만 어떻게 요점을 딱 집어서 답을 하는지 또 표현하는 것이 너무 맑고 엉뚱해 보여서 살짝 웃음이 났었다.


파리북역 병원


이제 나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2020년 11월 20일 금요일 새벽 3시였다. 쿵 하는 큰 소리와 함께 나는 잠에서 깨었다. 모두 잠들어있는 새벽시간 왠지 소중하게 느껴져서 "그래, 오늘 미라클 모닝을 다시 도전하는 날이다. "라고 생각하고 이것저것 주섬주섬 챙겨서 작은 거실로 향했다. 남편은 아주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다. 그래서 조심조심 챙겼지만...  "지금 안 자고 뭐 하는데?" 딱 걸린 것이다. 남편은 부산 사나이라 강한 사투리를 항상 듣던 목소리지만 그날따라 작고 부드럽게 들였다. "그래, 자라 나는 거실 간다. " 저 역시 매력 넘치는 부산 마담입니다. 그때부터 내가 느낀 건 조금 멍하다는 것 이외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몇 시간 뒤 한국은행에 공인인증서 재발급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 보통 전화는 오른쪽으로 받기 때문에 매일 습관처럼 했다. 은행 직원이 전화를 받은 것 같은데 그의 목소리는 5%도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너무 당황했고 무서웠다. 왼쪽으로 전화를 받았지만 역시 잘 들리지 않았다.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리는 것을 느꼈고 나도 모르게 양쪽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하염없이 흘렀다. 은행 직원과 통화가 어려울 것 같아 일단 전화를  잠시 생각을 하고 사태 파악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부터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다시 그날을 생각하면 울컥하면서 내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는 것을 느낀다. 눈물은 하염없이 계속 흐르고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아침 7시쯤 되어갔다.


남편과 딸은 분주하게 출근 준비 등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몸이 좋지 않다고 침실로 들어가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된다. "오후가 되면 괜찮아질 거야. 걱정하지 마"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오후 4시가 되었지만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이때부터 절망에 빠지기 시작했다. 너무 무서웠다. 여느 때 같으면 인터넷 검색을 해서 나의 병명을 60% 정도 정확성을 가지고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전혀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될 거야, 걱정하지 마!" 나에게 체면을 걸듯이 계속 이 말만 되새긴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딸이 돌아오고, 저녁시간이 되어서 남편이 퇴근을 했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그날 하루는 멍하니 흘러 보내게 되었다.


엎친  덮친 격이라는 게 딱 맞는 표현인 것 같다.  남편이 오고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저녁 10시쯤 또 다른 병이 찾아왔다. 바로 "이석증" 이였다. 갑자기 어지럽고,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고개를 바로 세우거나 오른쪽으로 조금이라도 기울게 되면 너무 어지럽고 구토 증세가 나타났다. 어지러움의 정도는 몇 초 내에 세상이 몇 바퀴는 도는 것 같은 360°회전을 10번 정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고개를 계속 왼쪽으로 기울이고 있으니 목도 아프고 한두 시간 있으니 목이 뻐근해 왔다. 그래서 머리를 살짝 세우기만 해도 다시 360°회전을 다시 하고 계속 반복이었고, 극단의 조치로 침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오른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어지럼증이 있고, 이석증도 돌이 오른쪽으로 뜅겨나와 제자리를 못 찾아가는 것 같다는 짐작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번씩 되풀이되면서 잠은 잘 수가 없었고 물조차 마시기가 힘들었었다.


다음날이 토요일이라 병원은 더더욱 가기가 힘이 들었고 결단의 조치로 앰뷸런스를 부르기로 했다. 나는 전혀 말을 할 수도 없고, 알아들을 수도 없었으므로 고등학생 딸이 응급센터로 전화를 해서 이것저것 여러가지 질문에 답을 하고 있었다. 결론은 현재 코로나로 인해 앰뷸런스를 보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의사를 방문시켜주겠다고 해서 의사가 3시간 후에 도착했다. 의사는 나의 머리를 사정없이 양쪽으로 흔들기를 수차례 하고는 어지럼증 약 하나 처방해 주고 60€를 요구했다. 일단 방문은 했으니 결재하고, 나중에 assurance maladie(의료보험)에 진찰료 지급이 된 종이를 접수시키면 2~3주 내로 돌려주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먼저 내가 의료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싫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반나절을 지나고 저녁 10시가 넘어가니 증세가 악화되어서 도저히 더는 견딜 수가 없어서 다시 앰뷸런스를 요청했다. 이미 두 번째 요청이라 이번에도 거의 40분~1시간 걸려서 도착을 했다. 나는 침대에 실려서 집을 떠날 때 쿠션을 끌어안고 쪼그리고 누워서 앰뷸런스에 몸을 실었다.


근처 병원으로는 갈 수가 없다고 해서 북역(Gare de Nord) 근처로 30분가량 걸려서 가게 되었다. 내심 못 믿어 운 프랑스 병원 시스템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다 돌팔이 같아 보여서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들을 기억하기로 마음을 먹고 이 와중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억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이석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돌을 자기 자리로 넣는 치료를 하는데 너무 힘이 들었고, 똑바로 하고 있는 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테스트를 하더니 한 가지 동작을 3번 정도 반복해서 했다. 그러고는 어지럼증에 먹는 약을 처방해 주고는 집에 가라고 한다. 나는 당황스러웠고, 지금 양쪽 귀가 들리지 않아서 이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을 했지만 오늘은 이만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다음번 예약도 없이 나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것은 이석증 치료 동작을 한 후에 구도가 나질 않아서 조금은 참을만했다. 치료 후에 조금 좋아져서 인터넷 폭풍 검색을 했다. 오늘 내가 받은 이석증 치료에 대해서, 검색 결과는 이석증 치료 동작이 맞는다는 것이다. 마나 다행이고 감사하던지 유튜브에서는 나와 반대 동작으로 치료를 하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상태가 조금 좋아질 때마다 이석증 치료 동작을 하였고 그 덕분인지 5일째 되는 날 드디어 고개를 바로 들 수 있게 되었다.


절망 속에서 한 가닥의 빛을 발견한 느낌이었고, 또 감사가 넘치게 기뻤다. 이때부터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왜 갑자기 귀가 들리지 않는지 찾아보게 되었고, 결론은 "돌발성 난청" 이였다. 이 병은 발병 직후 치료를 하면 가장 효과적이고 일주일, 이 주일이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6일이라는 시간을 "이석증" 때문에 허비를 하게 된 것이다. 갑자기 초조해지고 이러다가 영영 들을 수 없는 건 아닌지 무서웠고 한마디로 표현 하자면 멍 했다.


문제는 프랑스 병원 시스템이 전화 예약이고, 예약 후 며칠이 지나야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귀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ORL(이비인후과)을 가야 했다. 하지만 일반내과 의사가 아니면 모두 전문의(spécialiste)다. 전문의를 만나기 위해서는 일반내과 의사(médecin généraliste)를 거쳐야 전문의(spécialiste)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나로 좋아진 것이 있다면 진료 예약을 인터넷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프랑스가 이렇게 변화하다니 놀라울 따름이고, 그 덕분에 새로운 병원들을 찾게 되었고, 준종합병원도 찾을 수 있게 되어 일단 가장 빠르게 진찰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여기저기에 예약을 해 놓았다. 약 이틀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기다리는 동안 계속 병원을 찾아보다가 바로 다음날 예약이 가능 한곳이 있어서 난 일단 그 병원으로 결정을 했다.


너무나 기뻤지만 그 기쁨도 잠시 어떻게 나 혼자 병원을 가야 할지 암담했고, 들리지 않는데 어떻게 진찰을 해야 할지 걱정이 되는 순간 "아! 내가 처음 아프기 시작한 상황들을 편지로 쓰기"로 했고, 병원 방문과 검사(MRI-IRM-프랑스식)가 있을 때마다 기입을 했고 의사를 만날 때마다 편지를 보여주게 되었다.


집에서 메트로까지 3분 거리인데 거의 20분 걸려서 메트로를 겨우 탔던 것 같다. 들리지 않는다는 이 공포감과 어지럼증과 방향 감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혼자 첫 외출은 두렵고 힘들게만 느껴젔다. 정말 감사하게도 매일매일 예약을 해 주어서 아침 첫 번째로 가서 한두 시간 기다렸다가 빈틈에 진료를 받고, 검사를 하고 또 몇 시간이 흐르고, 기다리는 중에 배가 고프면 아래 커피점에 가서 호두파이와 라떼를 먹었다.(매일 같은 거 먹기) 나의 상황이 급하긴 하지만 이미 짜인 예약 스케줄에 나를 끼워주기 위해 첫 시간부터 와서 빈틈을 노리면서 기다렸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매일 2시간 이상씩 기다리는데 짜증은커녕 계속 감사가 나오는 거다. 기다려서 진료받게 해 줘서 감사하고, 매일 진료받게 되어 감사하고...

검사도 매일 다르게 수없이 했고, 피도 정말 많이 뽑고 나중에는 혈관이 나오지 않아 고생을 했다. 조영제를 맞기 위해서 주사바늘도 일주일 꽂고 다니고 결국은 피검사 결과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게 되었다. 왼쪽 3회, 오른쪽 4회를 매일 몰아서 맞았다. 신기하게도 주사를 맞고 나니 몇 시간 후 차도가 바로 나는 것이 신기했다. 그래도 골든타임은 지나갔고, 3~4주 차에 손을 쓸 수밖에 없었던 시간차들이 안타까웠다. 일주일만 더 빨랐어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오른쪽 귀는 여전히 전혀 들리지 않아서 많이 우울해지고 슬펐다. 그러던 중 4회차 주사를 맞고 1시간 후 메트로를 타기 위해 승강장에 섰는데 앞에 도착하는 메트로 소리가 들렸다. 지지지지... 마치 라디오 잡음 처럼 말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너무나도 놀라서 멍하니 몇 분을 서 있었던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12월 내내 주 4회 병원 예약이 되어 아침 출근 저녁 퇴근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급한 치료는 모두 마치고 한 달 후 다시 내원 예약을 하고 병원을 나오는데, 병원 입구에서 찬란한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날 따라 햇살이 너무 좋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