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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백 Feb 01. 2024

9. 길들인 등산화와 발목 통증 (4월 13일 목)

40일간 산티아고 순례길 그림일기

푸엔테 라 레이나 puente la reina ~ 에스테야 Estella      

  오늘도 컴컴한 새벽 6시에 출발했다. 기온이 내려가 쌀쌀하고 한참을 걷도록 해가 나지 않아 손과 뺨이 시렸다.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길에 간단한 간식과 물이 놓여있다. 배낭에 물과 간식이 있지만, 이것도 추억이라 생각하며 물과 빵 한 조각을 집고 동전을 기부금 통에 넣었다. 

  해가 나면서 기온이 올라가 겉에 입고 있던 패딩을 벗고, 강한 햇볕을 가리려 챙모자와 선글라스를 썼다. 구름이 많기는 했지만, 하늘은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예뻤다.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그러나 마을에 들어서 건물 사이 그늘로 가면 갑자기 겨울처럼 추워지며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옷 입고 벗기를 끝없이 반복했다. 겨울옷부터 여름옷까지 순례자의 차림새는 가지각색이다.     


  어느 순간부터 왼쪽 발목 뒷부분이 등산화에 눌리는 느낌이 들며 아프기 시작했다. 신경이 눌리는지 머리끝까지 날카로운 통증이 이어졌다. 몇 개월 전에 사서 길들인 등산화가 문제를 일으키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등산화를 벗어 끈을 이리저리 다시 묶어보았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발을 끌다시피 걸었다. 숨을 크게 쉬었다. 오르막에서 발목은 더욱 아팠지만, 어찌할 방법도, 아픈 이유도 알 수 없었다.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색이 위안을 주지만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더는 못 걷겠다 싶을 즈음 마을이 나타났고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카페 콘 레체’(우유 넣은 커피)에 설탕을 넣어 달게 마시고 쉬었다. 한국에서는 아메리카노만 마셨는데 순례길에서는 내 몸이 단 카페 콘 레체를 원한다. 

나에게 설탕 넣은 달콤한 ‘카페 콘 레체’는 순례길 상징이다.


  다시 힘을 내서 일어섰다. 발목은 아팠지만, 끈을 묶고 풀기를 반복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오늘의 목적지 에스테야 이르렀다. 

  에스테야 역시 아름다운 강을 끼고 있고,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이 여럿 보였다. 과거에는 번성했음을 말하는 성당의 거대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에스테야 성당은 오래되고 낡았지만 거대하고 웅장했다.


  오늘 걸은 거리는 공식적으로 20km이지만, 굽이굽이 도는 순례길은 공식 거리보다 먼데다, 발목이 아파서인지 무척 피곤했다. 

  여기서도 공립 알베르게(Albergue de Muncipal Aterpe Munipala)에 묵었다. 숙박료 7~15유로 정도로 하루를 머물며 쉴 수 있는 스페인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에게는 고마운 제도다. 알베르게가 있어서 순례자들이 더 많이 올 수 있고 그 덕분에 순례길 주변 상권과 경제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 공립 알베르게와 마찬가지로 주방이 있어 식사를 만들어서 먹기로 하고 장을 보았다. 가맹점 형태 큰 슈퍼마켓에서 전자레인지용 볶음밥과 홍합밥(냉동 빠에야)을 팔기에 얼른 샀다. 내일 아침밥과 점심 도시락까지 싸기 위해 빵, 치즈, 살라미, 토마토, 샐러드, 바나나, 오렌지 등 잔뜩 샀다.  

    

  등산화가 말썽을 일으켜 걷는 내내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채소와 과일 또 홍합밥과 볶음밥까지 배부르게 먹고 나니, 언제 아프고 고통스러웠냐 싶게 행복감이 밀려왔다. 나는 순례길에서도 감정이 이랬다 저랬다 변덕스럽게 살아가는 평상시 하루하루와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저러나 내일도 등산화가 말썽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스럽다.      

파란 하늘은 언제나 내게 큰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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