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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백 Feb 01. 2024

11. 그놈의 타파스가 뭐라고. (4월 15일 토)

40일간 산티아고 순례길 그림일기 

로스 아르코스 Los Arcos ~ 로그로뇨 Logrono      

  신발도 불편하고 감기까지 걸린 상태로 27km 이상 걸으며 고생했다.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에 바람도 거셌다. 뼛속을 파고드는 찬 바람에 뼈마디가 시리고 얼굴은 아렸다. 아침에는 기온이 5℃까지 떨어졌다. 레깅스를 내복처럼 바지 속에 입고 가진 모든 상의를 입어도 추웠다. 무엇보다도 멈추지 않고 부는 센바람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날씨가 이 정도인 줄 몰랐다. 남편이 배낭을 택배로 보내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두꺼운 옷을 가져왔을 텐데. 순례길을 떠나기 전에 말하지 않아 나는 짐 무게를 줄이는 것에만 몰두해서 두꺼운 옷을 챙겨 오지 않았다.

  해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기온은 올랐지만 바람은 여전했다. 산을 오르느라 땀이 나서 잠시 겉옷을 벗었는데 세찬 바람에 몸이 오싹하더니 감기가 더 심해졌다.    

  

  우리나라와는 규모가 다른 넓은 들판을 한참 걷다 보면 마을이 나타났고 마을을 벗어나면 또 끝없는 들판이 이어졌다. 우리나라 서낭당 같은 곳을 보았다. 간절한 마음을 담았을 리본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나라를 불문하고 사람들 마음은 모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하늘에 걸린 커다란 무지개를 보았다. 무지개는 큰 위안이 되었고 나를 응원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본 무지개 중 최고였다.                                       

하늘에 걸린 크고 아름다운 무지개는 힘든 나를 위로했다.

  오늘 도착한 로그로뇨는 큰 도시이고 사람도 많아 북적였다. 저녁이 되면서 기온이 더 떨어지고 바람까지 차서 한겨울 같았다. 감기 때문에 그냥 누워있고 싶지만, 저녁을 사 먹기로 해서 알베르게(Logrono Pilgrims Hostel)를 나섰다. 습관처럼 성당에 들르고, 내일 빌바오로 갈 계획이라 버스터미널 위치를 확인하고 나니 몸이 부서질 것처럼 힘들었다.

   나는 간단히 먹고 들어가서 쉬고 싶은데, 남편은 팜플로나에서 먹었던 타파스 몇 가지로는 미련이 남는지 또 ‘타파스 순례’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대다수 식당은 브레이크타임이라 문이 닫혀 있다. 영업 중인 바(bar)에서 타파스와 포도주를 가볍게 한 후 거리를 구경하며 남편이 가보고 싶다는 식당이 저녁 영업하기를 기다렸다. 거리 구경도 지쳐서 식당 앞에 서서 시간을 보내며 기다렸다.

  머리가 점점 깨질 듯 아팠다. 몸이 아픈 것과 별개로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온이 더 떨어지고 바람도 점점 거세졌다. 찬바람을 몸으로 버텨내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남편을 거리에 두고 혼자 알베르게(기숙사)로 돌아와 감기약을 먹고 그대로 쓰러져 잤다.      


  한숨 자고 보니 새벽이다. 기침이 나오고 목도 아프다. 정말 각자 다니자고 선언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된다.   

   

몸 상태가 좋았다면 맛있게 먹었을 고기와 새우가 얹어있던 타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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