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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백 Feb 02. 2024

16. 스페인은 포도주의 나라 (4월 20일 목)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 그림일기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Santo Doming de la Calzada ~ 벨로라도 Belorado     

  새소리를 들으며 고요한 마을을 빠져나왔다. 우리가 머물렀던 알베르게는 시설, 편리성 모두 최고였다. 이용해 보니 대체로 사립 알베르게보다 공립 알베르게가 더 좋다.

  남편과 공립 알베르게와 사립 알베르게 장단점을 비교하며 걷는데, 하늘 전체가 불그스름하게 변하며 해가 떴다. 역시 오늘도 감동적인 장관이 연출되었고, 해가 뜨는 모습은 어제, 그제와 또 달랐다. 

  그때 문득 지나온 알베르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별 의미 없게 느껴졌고 나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걸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직선 도로에서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걷고 또 걷는데 힘들고 지루했다. 며칠 전 뼈가 시리다고 투덜댔던 세찬 바람이 그리웠다. 

  무엇보다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 옆을 계속 걸어야 해서 피곤했다. 그동안 고요함에 익숙해져서 물류 운송 대형 트럭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어느 마을에 이르니 푸드 트럭이 있어 늘 마시던 카페 콘 레체를 주문했다. 그런데 맛이 너무 없었다. 카페 콘 레체가 주던 위로도 없는 실망스러운 날이었다. 

  걷고, 또 걸었다. 이번이 세 번째 순례길이라는 순례자를 만났다. 하루 이동 구간도 아주 짧게 정해 천천히 걸으며 길에 핀 꽃도 보며 즐긴다고 했다. 순례길 어떤 매력이 세 번씩이나 걷도록 만드는지 다가오지 않는다. 그분은 우리 사진을 멋지게 찍어주었다.     


  뜨거운 길을 걸어 오늘의 목적지 벨로라도에 도착했다. 벨로라도는 그렇게 크지 않다. 쇠퇴해 가는 동네지만 성당 내부를 보니 번성했던 과거를 말하는 듯했다. 16세기에 만들어졌다는 벨로라도 성당 종탑은 의외로 소박했다.      


  다인실과 가격 차이가 별로 안 나서 욕실까지 있는 사립 알베르게(Albergue Caminante) 이인실에서 머물렀다. 다른 사람 신경 안 써도 되고, 짐도 마음대로 펼쳐놓고 편하게 쉴 수 있다. 빨래를 널 수 있는 공간도 충분했다. 밥을 사 먹으려고 부지런히 샤워하고 브레이크타임으로 문 닫기 전 가까운 식당으로 가서 ‘오늘의 메뉴’를 주문했다. 

  그동안 우리는 스페인 음식 이름도 모르고 번역기를 이용해도 무슨 음식인지 알기 어려워 두꺼운 메뉴판을 보며 주문할 때마다 애를 먹었다. 그럴 때는 ‘오늘의 메뉴’를 선택하면 무난하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깨달았다. ‘오늘의 메뉴’는 음식 두 가지, 음료, 디저트로 구성되어 있다. 식당마다 차이가 있지만, 한정된 종류 음식 중에 선택하면 돼서 주문하기 수월하다. 또 단품으로 주문하는 것보다 경제적이다. 

  나는 샐러드와 생선을 선택하고 남편은 야채수프와 고기를 선택했다. 음료로 포도주를 선택했더니 포도주 한 잔이 아니라 한 병이 통째로 나왔다.      

  광장에 있는 식당 야외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포도주를 마시며 점심을 먹었다. 유난히 지루하고 덥고 자동차 소음에 시달렸던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포도주 한 병을 마셨다. 스페인 포도주는 싸면서도 맛이 좋다. 스페인은 포도주의 나라다.           

   

두 번째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포도주를 여러 잔 마셨다. 스페인 포도주는 값이 싸면서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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