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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Oct 28. 2024

강변의 비극

아기 염소의 최후

마루야,

이곳이 말이다.

오래전 비극이 있었던 곳이다.

내가 그 일을 겪고도 나는 여전히 너희들이 사랑스러우니 모르겠구나.

너도 익히 잘 알고 있지만 한번 더 말하마.

산책 나갈 때는 반드시 목줄을 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그 앞에서 함부로 짖거나 해하면 안 된다.

명심하렴. 

우리는 뼈대 있는 가문이다. 

품위 있게 행동해야 한다.



국민학교 시절, 학교 갔다 돌아오면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염소를 먹이는 일,

아침에 부모님이 농사일 나가시면서 강변 어딘가에 묶어 둔 염소를 찾아서 풀을 먹여야 했다.

둘째 언니 때부터 시작하여 중학생이 되면 다음번으로 물려주고 차례대로 물려받아했다.

내 바로 위 셋째 언니가 중학교를 가면서 염소는 온전히 내 차지가 되었다. 


아마도 국민학교 4학년쯤이지 않았을까 싶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 던져놓고 다섯 살 아래 남동생과 강변으로 미기적미기적 나갔다.

방천길 지나 강변 가까이 다다랐을 때, 염소 우는 소리가 강둑 너머에서 서늘하게 넘어왔다.

'염소가 왜 자꾸 울지?'

'우리 집 염소인가?'

'어, 이상하네!' 

'무슨 일이 생겼나?'

자지러지는 염소 울음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아악!

여름이면 동네 여인네들이 멱 감던 곳, 그곳에 어미 염소, 아기 염소, 미친개 한 마리.

눈앞에서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미친개가 우리 아기 염소를 얕은 강물에 밀어 넣고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묶어 있던 어미 염소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리며 하염없이 울부짖고,

아기 염소, 미친개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며 버티고 있었다. 


"저 노무 새끼가, 저리 안가"

"저리 가, 저리 가"

눈이 뒤집힌 나는 입에 거품을 물고 악을 쓰며 돌을 집어던졌다.

앙칼진 욕지거리에, 거침없는 돌팔매질에 강변이 떠나갈 듯하였다.

내 꼴이 얼마나 험악했는지 미친개가 눈치를 살피더니 쓸쓸 피해 도망갔다.


아기 염소를 물에서 건져내 안았다.

다리에도 배에도 물어 뜯겨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흐윽 흑흑흑, 염소야 미안해!

흐윽 흑흑흑, 내가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가냘프게 숨만 쉬고 있는 염소를 안고 흐윽 흐윽,

동생은 어미 염소를 끌고 처연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흐윽 흑흑흑 안골목에 미친개가 이랬어.

   미친개에 물리면 약도 없다는데, 이럴 우짜노?

   그 개가 요 며칠 좀 수상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이들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며 사납게 짖어대고 하더니만........


당시 사람한테 쓸 약도 구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래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아버지, 어디서 들은 민간요법을 해 보신다고

미친개 집에 찾아가 개털을 잘라왔다. 

그 털을 아기 염소의 상처에 발라두고 빨리 낫기를 기도하였다.

이튿날이었던가? 

학교 갔다 돌아오니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린 아기 염소.


아기 염소의 주검을 보고 나는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른다.

내가 좀 더 빨리 달려갔더라면........

내가 좀 더 빨리 달려갔더라면........

내가 좀 더 빨리 달려갔더라면........

한동안 어미 염소의 애타던 울음소리와 아기 염소의 가녀린 신음이 계속 들려왔다. 



여름 가고 가을 지나 다시 새봄이 찾아왔을 때, 아기 염소 두 마리가 태어났다.

초롱초롱  눈동자, 보송보송 새까만 털, 귀염 뽀작 얼굴, 얼마나 예쁘던지!

슬픔을 뒤안길로 물려놓고, 나는 다시 또 강변으로 염소를 먹이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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