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노래하다
2024년 11월 8일, 문화회관에 전시를 보러 가는 발걸음이 뭉클하다.
대학생 작품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된 큰아이와 세명의 친구들,
기획한 작품을 만드느라 폭발하는 여름 내내 발바닥에 쉰내를 풀풀 풍기며 뛰어다녔었다.
어떻게 꾸며놓았을까?
설렘 가득 안고 달려가 보았다.
대극장 지하 1층 전시실,
교실 크기만 한 공간에 네 명의 청춘들이 열정으로 똘똘 뭉쳐 열망을 담아 쏘아 올린 '공백전'.
하얗게 지새운 시간의 기록들이 분홍빛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큰아이의 꿈은 가수다.
일찌감치 절대음감이란 소리를 들으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더니,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을 때 싸구려 장비를 가지고 노래를 녹음하는 작업으로 놀라게 하였다.
주위에 도움을 줄 만한 사람 하나 없는데, 아이 스스로 터득하여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여름 방학,
행여 잡음이 섞일까 그 어떤 냉방제품도 켜지 않은 채 문이란 문은 다 꽁꽁 닫고,
두어 평 방에 갇혀 숨 막히는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지땀을 흘리며 녹초가 될 때까지 녹음하였다.
녹음날이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가만히 숨 죽이고 있는 것뿐이라서
우리 집 잘난 사람 내게 아무리 시비를 털어 되어도, 절대 난상토론을 벌이지 않았다.
아이의 녹음은 소중하니까, 그날은 무조건 묵음 수행을 하였다.
초1 방과 후 수업에서 처음 접한 바이올린,
선생님에게 재주가 있단 소릴 듣고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아이의 바람을 내가 주저앉혔다.
음악에는 문외한이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어, 아이에게 현실을 얘기하였다.
가만가만 듣고 있더니, 그럼 두 번째로 흥미 있는 미술을 해보겠다고 하였다.
중학교에 들어 미술로 진로를 정하고는
고1까지 오케스트라 활동과 녹음 작업을 병행하다 고2부터 대입에만 전념하는 시간을 보냈다.
아이에게 미술은 제일 하고픈 음악을 하기 위한 차선의 선택지였다.
그럼에도 매 순간 최선으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노력하고 노력하며, 애쓰고 애쓰며 하루를 꽉꽉 채워 보낸 성실한 시간들이 오늘을 말해준다.
예술 비전 장학생인 아이,
미술이든 음악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주어진 자리에서 항상 당찬 에너지를 뿜어낸다.
휴학 중이던 시기,
우연찮게 음악창작소의 지원을 받아 첫 음반을 내게 되었다.
기회는 항상 준비되어 있는 자에게 오는 것이리라.
틈틈이 녹음해 둔 작업물이 2022 음반제작지원 사업 공모전에 합격하는 영광을 누리게 하였다.
친밀한 지인만이 알고 있는 아직은 무명 가수 '장마', 이번 전시를 위해 세 번째 곡 '이로이로'를 발표하였다.
이 곡을 주제로 네 명의 전사들이 창출한 공간이 공백전이다.
작사, 작곡, 노래까지 독학으로 고독한 성장을 하고 있는 아이,
나에게 큰아이는 이미 빛나는 스타다!!!
나에게 공백은?
흠........
11월 10일, 오늘은 디자인진흥원에 졸업작품 전시를 보러 간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으로 시작된 대학생활,
누가 낭만을 얘기했던가?
과제에 치이고 치어 낮과 밤이 분리되지 않는 삶을 이어가더니 벌써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다.
음악을 접목한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누누이 말하던 아이,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것들을 실행으로 옮기며 차근차근 공든 탑을 쌓아갔다.
뿌린 말 그대로 구현한 졸업작품, 그것이 궁금해 한달음에 달려갔다.
* 광고 콘텐츠 디자인 - IROIRO 브랜딩
* 경험 디자인 - 백지의 기록
*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 - 삶은 계란
* 디자인 세미나 - 개와 고양이 그리고 사람
1층 전시실,
누구 눈에는 누구 작품만 보인다고 내 아이의 작품이 유독 크게 보였다.
"와우! 와우! 와우!"
"나, 정말 열심히 했어"
기진맥진한 얼굴로 지옥에서 살아 나왔다는 아이에게 박수갈채를 무한 반복 보냈다.
아이와 둘이서 깊어가는 가을길을 걸었다.
함께 밥을 먹고 사진을 찍는 소박한 일상에도 웃음이 넘쳐났다.
충만한 하루,
꿈을 쓰고 꿈을 그리고 꿈을 노래하는 우리,
알아주는 이 소소하여도 실패를 거듭하여도 도전을 계속하는 우리,
서로를 격려하며 감사함과 최선으로 오늘을 길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