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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Sep 26. 2023

새벽의 향기

나를 만나다

"덩~, 덩~, 덩~, 덩~."


00사의 새벽 종소리 희미하게 들리면 나는 살며시 현관문을 나선다.

처서를 지난 새벽하늘은 농익은 열기를 한 꺼풀 걷어내서인지 확실히 밤보다 맑고 낮보다 푸르다.

짙은 프러시안 블루색이 저 광활한 우주의 속살을 드러낼 듯이 찰랑거리며 맑다.

별은 총총 빛나고 달은 지구의 그림자를 선명하게 반영한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별을 본다는 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하늘을 우러러보기에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특권일 것이다.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우러러 올려다보며  나는 아파트 공원 길을 따라 찬찬히 걷는다.

띄엄띄엄 불을 켜고서 하늘로 향해 높이 치솟은 아파트 건물 꼭대기 사이로 펼쳐지는 광경은 매일이 새롭다.


하늘이 별과 달을 데리고 나에게로 내려온다.

나를 자전축으로 하여 하늘이 빙그르르 돈다.

신기하게도 분명 내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거늘, 내가 위에서 하늘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 같다.

하늘과 내가 누가 위고 아래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주객이 전도된다.


하늘은 명도와 채도를 달리하며 밑바탕 색을 다채롭게 채운다.

프러시안 블루에 흰색을 한 방울 떨어뜨려 채도를 낮추기도 하고

때로는 코발트 빛 바탕에 흰구름을 너울너울 띄우기도 하고 

때로는 산과는 한 발치 물러나 먹색구름으로 먼 산을 한 폭 그려 넣어 수묵산수화를 완성시킨다.


유달리 동녘에 많이 보이는 별은 큰 별 작은 별이 어우러지면서도 제각각의 삶을 그린다.

유독 저 혼자 밝게 빛나는 별이 있는가 하면 

가로등 불빛이 흔들리듯 파르르 떨면서 안간힘을 쓰며 발하는 별도 있다.


달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모양이 빠르게 변하며 움직인다.

보름달일 때는 남쪽에 있다 이내 서쪽으로 향하더니 잠깐 한눈파는 사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보름달은 소싯적 100M 달리기 선수였던 나보다 더 잘 달리는 것 같다. 

하현달을 지나면 달은 점점 동쪽으로 뒷걸음질 친다. 

동쪽에서 보이던 그믐달이 지나면 달은 한동안 보이지 않는다.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나뭇잎 뒷면도 볼 수 있다.

땅으로 낮게 드리워진 나무 아래를 지나노라면 3차원 공간 위에 떠있는 나뭇잎들은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앞면보다 색은 옅지만 잎맥은 더 도드라져 보인다.

버스에 몸을 싣고 창 밖을 보고 있을 때,  

즐비한 가로수들이 내게로 달려와 쓰윽 쓰윽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


이름 모를 온갖 풀벌레들의 노랫소리 

반가움을 나르는 새벽 배송 택배 트럭 소리

산득 산득한 공기가 내 피부에 살랑거리며 부딪히는 소리

잠귀 밝은 개 짖는 소리

보채는 아기 울음소리

기상 시각을 알리는 자명종 소리 

소리들의 합창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이 짤막한 시간을 나는 홀로 즐긴다.


초저녁 잠은 깊어지고 아침잠이 없어진 나는,

소리들의 천국인 비발디의 사계가 연주되는 이 새벽의 향기를 향유하며 유유자적하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어릴 적 5월의 감나무 아래에서 느꼈던 풍경이 데자뷔 된 것처럼~.



새벽은 온종일 노트북 앞에 묶여 있던 나에게 물을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딱딱해진 거북목을 쭉~욱 펴고서, 허리는 빳빳이 세우고, 하늘을 올려다 보고서,

분위기에 딱 걸맞은 노래를 나지막이 흥얼거리며 한걸음 한걸음 사뿐히 옮긴다.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멀리서 온다

멀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자-꾸--목-말-라---마--신---다-------


그윽한 새벽의 향기를 음미하며 나는 아직까지도 볼그스름한 미소를 짓는 나를 만난다.


지친 그대, 서글픈 그대, 수 없이 흔들렸던 그대

그래도 이만해서 다행이야, 참 다행이야

네 곁에는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과 언니와 오빠 그리고 동생도 있지 

네 곁에는 속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친구와 이웃도 있지 

은혜로운 분들이 너와 함께 동행하고 있으니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그대, 대견해 칭찬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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