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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Sep 22. 2023

라떼는 말이야~

점심 먹었니?

"엄마, 혹시 선생님한테서 전화 왔어?"

"아니, 그런데 선생님이 전화할 일이 있니?"


학교에서 돌아와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더니 아들은 그제야 이실직고한다.

사실은 며칠 전 점심시간에, 

교감 선생님께서 교실을 둘러보시면서 밥 안 먹고 있는 아이들 모두 급식실로 내려보냈단다. 

점심은 먹지 않고 교실을 지키고 있던 아들도 마지못해 밥을 먹으러 갔단다.

그 이튿날은 교무실로 불러가 담임선생님 앞에서 앞으로는 점심을 잘 먹겠다는 다짐도 했단다.



지난해 3월, 학교가 코로나로 집단감염되다시피 한 이후로 아들은 매달 급식을 먹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점심을 먹는 날이 가뭄에 콩 나듯 했으니, 밥 먹고 왔다는 말이 그렇게 반가운 일이 줄이야 미처 몰랐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워서 그렇다 치더라도 거의 매일같이 급식을 거르다니, 

걱정을 사서도 하는 나로서는 애간장이 탔다.   

교우관계도 학교생활도 아무 일없다 하지, 심지어 선생님까지 모범생이라 거들지, 

그렇다면 혹시 엄마인 나에게조차 말 못 할 신체적, 심리적 비밀이 생긴 건가 싶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아무리 캐물어도 신경 끄라는 말만 휑하니 메아리 칠 뿐,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한 나는 꽤나 골머리를 앓았다.


점심을 먹지 않는 아들의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아들아, 점심 먹었니?

아니, 배가 안 고파서.

라떼는 말이야~

1교시 쉬는 시간부터 도시락 꺼내 먹었어.


아들아, 점심 먹었니?

아니, 급식실 가기 싫어서.

라떼는 말이야~

급식 먹는 재미로 학교 갔어.


아들아, 점심 먹었니?

아니, 속이 안 좋아서.

라테는 말이야~

돌도 그냥 씹어 넘길 정도였어.


아들아, 점심 먹었니? 

아니, 힘들어서.

라떼는 말이야~

도시락 2개 싸 들고 가서 밤 10까지 공부했어.


아들아, 점심 먹었니?

아니, 식단이 마음에 안 들어서.

라떼는 말이야~

없어서 못 먹었지, 무엇이든 주기만 하면 두 팔 벌려 환영했어.


아들과 라떼의 팽팽한 줄달리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침 7시에 차려 주는 밥은 찬이 있건 없건, 언제나 감사히 깨끗하게 비우는 아들이다.

하도 맛있게 먹어서, 먹는 모습이 복을 불러들인다고 할 만큼 식성이 소탈하다.


처음엔 점심을 안 먹었다 하니 얼마나 배고플까 싶어 주전부리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하루 이틀 지나고 이것도 길어지니

내 나름의 할 일을 제쳐두고 서둘러 저녁상을 차려야 하는 부담감에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미리 계획된 나의 시간이 틀어지는 것과 아들이 배고플 거라는 양가감정이 치고받고 난리도 아니었다.


키가 더 크고 싶으면 점심을 잘 먹어줘야 된다며 영양학적 관점으로 구슬려도 보고

엄마는 학교 식단표만큼 절대 못해준다고 급식 예찬론을 펴 보기도 하고 

급기야 "합당한 이유가 아니라면 저녁을 주지 않겠다"는 들으면 기함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아들 급식 먹이기 공략이 수차례 헛발질만 켜던 차에,

교감 선생님의 점심시간 교실 순시는 나에게 뜻밖의 희소식이었다.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자상하게 학생들을 챙기시는 교감선생님, 감사합니다' 라며 쾌재를 불렸다. 

엄마 말은 씨알도 안 먹히는 사춘기지만  선생님 말씀은 공손하게 따르는 아들 아니든가. 

'안 먹고 개길 배짱이 있겠어. 이제는 먹겠지' 하며 한 시름을 덜었다.


아들이 급식실로 갈 낌새가 보이지 않으면 담임선생님의 하명을 받은 친구들이 강제로 끌고 간단다. 

여기저기 쏟아지는 따가운 눈총에 안 먹으래야 안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되도록이면 점심을 먹는다는 아들 얘기다. 

이렇게 아들과 라떼의 고래힘줄보다 질겼던 급식 씨름은 일단락되었다.



라떼는 말이지~


고기라도 구경할라치면 명절날이나 생일날에야만 만날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바나나는 또 얼마나 비쌌나!


그랬건만 우리 집 밥상도 하루가 멀다 하며 고기가 오르고 

염소도 아닌데 풀만 먹고 자란 나와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식탁에서 편이 갈라진다.


하물며 과일은 어떻고. 

이름도 생소한 형형색색의 과일들이 토종 과일들을 밀어내고 우리 입을 사로잡으니.


음식을 대하는 자세도 다르다.

밥상에서 어물적거리다간 순식간에 사라지는 반찬들.

젓가락 한 번 들이대지도 못하고 물러나야 했거늘.


반면 요즈음은 차고 넘친다.

단출한 식구에 늘 입맛대로 구색을 맞추어 주니, 언제나 밥상에서 느긋하게 허세를 부린다.


그렇다.

나는 찰락 말락 한 1% 부족한 시대를 살아서 그런지 

여유만만한 아이들 앞에서 자꾸 '엄마 때는 말이야~' 무심한 칼자루를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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