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와인 한잔 어때요?
"1002호야, 올라 와 봐라"
11층 어머니의 호출이다.
나는 하던 일을 접고 계단을 밟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저 왔어요."
활짝 열린 현관문을 직행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앉아라"
어머니는 부추전을 부쳐 식탁으로 옮기시며 나를 맞아주셨다.
여자들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와인까지 풀어놓으니 꽁꽁 묵히고 삭혀 둔 이야기들이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불혹을 한참 넘긴 나와 고희에 가까이 이른 어머니는 서로 맞장구를 치며 희희낙락하였다.
11층 어머니는 친정어머니도 시어머니도 아닙니다. 이웃어머니입니다.
나는 살던 빌라의 터줏대감이었고 어머니는 8년 차쯤 이사 오셨는데 이내 스스럼없이 지내게 되었답니다.
중학교 3학년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이어진 기나 긴 자취생활로 항상 엄마의 정이 고팠던 나였다.
내 병명은 애정결핍증이라고 자가진단을 내리며 늘 사랑을 갈구했었다.
마흔을 넘기니 심신이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11층 어머니의 부름은 나의 안식처였다.
"젊은 아가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네. 좀 많이 먹어라."
어머니의 한마디 한마디가 쩍쩍 갈라진 내 마음을 촉촉하게 스며들었다.
11층 어머니는 내가 꿈꾸는 어머니 상이다.
A4 용지 가득 빼곡하게 써 내려간 자식들에 대한 안위와 소원들을 읊조리며,
한자리에서 오래도록 기도하셨다.
식탁 옆 벽에 걸린 달력에는 사돈 팔촌까지의 생일이며 대소사가 적혀 있었다.
며느리들의 생일날에는 축하전화도 잊지 않으셨다.
방학이 되면 친손녀 외손자들이 번갈아가며 일주일이상 지내다갔다.
방문 소식이 들리면 어머니는 손주 맞이에 만반의 준비를 하셨고, 이마에 굵은 땀이 비 오듯 한데도,
먹거리, 볼거리를 풍성하게 대접하며 손주들에게 할머니표 멋진 방학을 선사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할머니였다.
효를 당연시하거나 강요하는 법 없이 내리사랑의 실천자였다.
식재료를 다루는 솜씨도 보기 드물게 훌륭했다.
더덕장아찌, 생멸치 튀김, 삭힌 고추장아찌, 무말랭이 무침....... 등
어릴 적에나 먹던 음식을 설렁설렁하시는 것 같은데 얼마나 입에 착 달라붙는지 침샘이 폭발하였다.
잊혀가는 전통 음식 계승자였다.
살림살이도 여간 아니셨다.
근검절약은 기본이고 생활의 지혜가 반짝이셨다.
이글거리는 태양에다 검정 비닐봉지에 빨랫감을 싸서 삶는 모습은 친정엄마랑 닮으셨더라.
우유병은 양념장통으로 재활용하고 무엇 하나 허투루 버려지는 게 없었다.
어머니 손을 거치면 제 쓰임을 다하고도 전혀 엉뚱한 곳에서 진가가 발휘되었다.
겨울날 어머니집에 갈라치면 외투를 단단히 입고 가야 했다.
바깥일 하는 사람 고생하는데 집에 혼자 있으면서 보일러를 틀 수 없다며,
남 부럽지 않은 넉넉한 살림인데도 1평 남짓한 전기장판을 켜 두고 계셨다.
11층 어머니는 아나바다 운동가였다.
세상살이도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이라 5년 후쯤에 살갑게 나를 챙겨주시던 어머니는 이사 가셨다.
지금은 나도 새로운 곳에 정착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체 문을 꽁꽁 닫고 지내는 아파트.
윗집 아랫집 층간소음으로 몸살을 앓는 아파트가 우리의 현주소이지 않은가.
후리지아 꽃향기 날릴 때면 11층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빌라가 그립다.
옥상에서 하늘을 즐기며 엄마의 정을 채워주신 11층 어머니,
오늘 와인 한 잔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