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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Sep 18. 2023

자취생과 연탄

연탄아,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다오

'자취방 비운 지가 너무 오랜데. 연탄불 피워야 하는데 어떡하지.'

'연탄은 있으려나. 가면 불부터 피워야 할 텐데. 어쩌지.'


지금도 가끔씩, 나는 꿈에서조차 연탄불 피울 생각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는 중학교 3학년때부터 자취생활을 했다.

학교와 우리 집은 왤케 멀리 떨어져 있는지, 버스로는 도저히 통학이 어려워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선택의 여지가 없던 생활이었다. 

강산이 변하고도 남는 길고 길었던 자취생활 중에 겪은 고충을 순위를 매겨보라면, 

나는 단연 연탄불 피우기를 1위로 꼽는다.

일반 가정집에서 겨울철 난방 원료로 대부분 연탄을 때던 시절에, 

연탄은 5년 넘게 나와 동거동락하며 따끈한 아랫목을 만들어 시린 손을 녹여 준 고마운 벗이기도 했다. 

하지만 연탄불 피우는 일이 내게는 왜 그렇게 버겁던지,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것들 중 하나였다.


1980년 후반,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는 한 반에 10여 명 정도가 학교 밑에서 단칸방을 구해 자취를 했다. 집이 시내에 있어 걸어 다니든, 봉고차로 통학을 하든 다 나름대로 불평불만이 있었지만, 

나는 따스운 집에서 다니는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아침 7시쯤 등교해서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마치고 

밤 10시를 훌쩍 넘긴 후에야 자취방에 돌아오니 연탄불 관리가 만만치 않았서였다. 

특히 기습 한파가 맹위를 떨치는 날에는, 

행여 연탄불이 꺼졌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어두운 밤길 자취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착잡해졌다.


겨울날, 야자를 마치는 타종소리가 울리면 

1500여 명의 학생들이 하나같이 이를 따닥따닥 마주치며 캄캄한 밤으로 썰려 나온다. 정문으로 후문으로 

끼리끼리 왁자지껄하게 귀가를 재촉하는 발걸음이 밤의 정적을 깨우며 한동안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따박따박 발자국 소리 하나 둘 점점 멀어져 가고, 

얼른 아랫목에 몸 녹일 생각에 잰걸음으로 자취방에 들어서면 이따금씩 연탄불이 꺼져 있을 때가 있었다.

아침에 나갈 때  분명 불구멍을 꽁꽁 틀어막아놓고 갔건만,

이미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서 앉아 있는 연탄이 나는 너무 얄미웠다.

제 본분을 잊고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건만 매정하게 돌아 앉아있는 연탄.

손도 시리고 마음도 차가운데, 나는 한 숨을 푹 내쉬며 연탄불 붙이기에 나선다.


헌 종이쪼가리 쭈글쭈글 쭈그려 접고서, 성냥불 켜서 불을 붙여 불쏘시개를 만들어

집게에 꽂은 번개탄을 바싹 가까이 댄다.

치직치직 치지직 소리를 내면서, 짙은 회색의 매캐한 연기를 내뿜어며 번개탄에 불이 서서히 옮겨 붙는다.

활활 불붙은 번개탄을 얼른 아궁이로 가져와 다 타버린 연탄 한 장 맨 밑에 깔고서, 

그 위에 불붙은 번개탄을 올려놓고 마지막으로 까만 새 연탄을 차례대로 올린다. 이제 기다려야 한다.

불구멍을 활짝 열어놓고 연탄불이 활활 피어오르기를 애타게 기도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 과정이 자취생활중 제일 진절머리가 났다.


회색 연기는 허공을 향해 날아가고

매캐한 연기는 눈물 콧물 사정없이 빼앗더니, 콜록콜록 기침까지 털어간다.

나는 여름이불까지 꺼내 몸을 칭칭 감고서 연탄불이 단박에 붙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불을 폭 덮어쓰고 눈만 빼꼼히 내놓은 채 오들오들 떨면서, 연탄불이 활활 타오르기를 기도한다.

연탄보일러선을 타고 서서히 들어 선 온기가 냉기를 완전히 밀어내고 승기를 잡을 때면,

그제야 나는 잔뜩 웅크렸던 팔다리를 쭉 뻗으며 기지개를 활짝 켠다.


연탄불 붙이기가 한 번으로 단박에 되면 정말 운이 좋은 날이다.

때로는 서너 번을 시도한 끝에 겨우 불이 붙어 혼이 쏙 빠질 때가 있었다.

특히 습도가 높은 겨울날이 그랬다.

번개탄을 피울 때 나는 연기는 어떻고, 냄새가 얼마나 독한지 고개가 절레절레 돌린다. 

연탄을 새로 갈 때도 연기가 올라와서 냄새가 심하지만 그에 비할 바는 안 된다. 

번개탄 연기에 노출되면 목이 따갑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것이 

오죽하면 방독면 하나 장만하고픈 생각 간절했을까.

이런저런 이유로 연탄불이 제대로 붙지 않을 때면 신경세포가 예민한 나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꺼진 연탄불 새로 피우려다 매번 자취생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다 보니, 

이 일에 엄두를 내지 않던 날이 있었다. 금요일 밤에 연탄불이 꺼져 버리는 경우다.

다음날 토요일 오후에는 엄마도 보고 일용할 양식을 가지러 고향집에 들어가기에 나는 그냥 깡으로 버틴다. 

연탄불 피우기가 '땅 짚고 헤엄치기' 정도의 만만한 일이었음 모를까 고작 네다섯 시간 남은 밤을 위해 들이는 수고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해서 그날 밤은 얼음골 같은 방에서 동태가 된 채 잔다.

'어차피 내일이면 집에 가는데 하룻밤쯤이야' 하며 꺼져버린 연탄불에 호기롭게 대적하였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후회막급이 되곤 했다. 

석유곤로에 물을 데워 뻐덩뻐덩한 몸을 녹여 간신히 등교는 하였다. 

얼어붙은 몸이 제대로 풀릴러면 적어도 한나절은 지나야 할 터인지라 

나는 연신 콧물을 훌쩍훌쩍 거리며 엉망진창인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요즈음은 참 편리하다.

손가락만 까딱까딱, 터치 한 번으로 금방 방바닥이 따뜻해지고, 실내 공기가 훈훈해지니 말이다.

화생방 훈련을 방불케 했던 연탄불 피우기와는 멀어진 지금,

나는 오늘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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