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미경 Sep 18. 2023

파젯날 아침에

달려 달려

"아재요, 우리 집에 아침 드시러 오시랍니더."

"아지매, 아재 우리 집에 아침 식사하러 오시라 할소."

"할매요, 양춘 떼기 집에 밥 잡수러 올소."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집집마다 들러 외치던 정겨운 소리다.


파젯날 아침 

부엌에는 달그락달그락 그릇 소리 요란하고

굴뚝에는 하얀 연기가 몽글몽글 연신 피어오르고

고모, 숙모, 집안 아지매들 손을 분주히 움직이며

손님맞이 준비를 한다.


나는 언니랑 동네를 반 갈라서 골목길을 누비며 

오늘 아침 우리 집에 식사가 준비되어 있음을 알렸다.

벌처럼 날아서 후딱 전해야 한다.

농촌의 아침은 새벽녘 장탉의 우렁찬 울음소리와 시작되므로 

꾸물꾸물 거리다간 야단 난다. 


한술 뜨다가도 수저를 놓고서 오시기도 하고 

언제 오나 기다리고 계시기도 하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고도 하고

할머니 손 잡고서 꼬맹이들까지 쫄래쫄래 따라온다.


사랑방으로 작은방으로 안방으로 사람들이 밀려든다.

덕석을 펴고 마당에 까지 사람들이 가득 들이 찬다.

뽀얀 쌀밥에 생선 한 모타리, 떡과 술이 올라오니  

진수성찬 따로 없네, 수라상도 부럽지 않다.

우리 집 파젯날 아침은 잔치집처럼 시끌벅적 요란했다.



사오십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내 고향.

파젯날이면 뉘 집 내 집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 모두 청해 아침 한 끼를 나눠 먹었다. 


한 상에 둘러앉은 동네 어르신들

세상사 시름 풀어내며 

밭일 논일 축담에 내려놓고

해가 산꼭대기에 올라 타든 말든 

그날 하루 늦장을 부리셨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외치던 아이의 바통을 

이장님의 마이크가 이어받아 한참을 달려가

가까운 분들만 청하는 전화기에 넘기더니

이제는 그마저도 멈춘 지 오래다.


마을에는 아재요, 아지매요를 외칠 아이 하나 없고

회관 앞에는 의자를 쭉 늘어놓고 봄볕 쬐는 할매, 할배만 앉아있다.


작가의 이전글 그날의 진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