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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Oct 19. 2023

아들, 엄마는 운동화 시대라고!

검정고무신과 운동화 시대의 증명법

"엄마, 엄마가 운동화 시대라는 걸 증명해 봐"

  "뭘로 증명해 보여야 되니?"

"검정고무신에서 기영이가 10원인가 30원인가 하는 크림빵에 감격의 눈물을 줄줄 흘리던데, 

엄마 때는 크림빵 얼마했어?"

  "크림빵은 모르겠고 그 비슷한 보름달빵을 100원 주고 사 먹었으니 아마 그 가격이지 않았을까?"

"그래! 그럼 엄마 말대로 운동화 시대가 맞긴 맞네, 엄마가 운동화 시대라는 것 이제 인정 인정해"

  "하~ 참! 기가 막혀서, 엄마가 운동화 시대다 하면 그렇구나 여기면 될 것을........."

  "엄마가 너한테 이런 것까지 증명해야 하다니, 이제 됐냐?"


나의 어릴 적 시대를 두고서 검정고무신 시댄지 운동화 시댄지를 판가름 짓는다고 

아들과 내가 옥신각신한 장면이다.



아들은 예전 생활 모습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말 시작 머리에 언제나  "엄마가 살았던 검정고무신 시대 말이야" 라며 접두어를 꼭 갖다 붙였다.  

그러면 나는 잠시 머뭇머뭇 혼란한 틈에 검정고무신 시대로 착각하여 아들의 말에 호응해 주다  

'아닌데 나는 운동화를 신고 학교를 다녔단 말이지'라는 생각이 들어 이내 혼미했던 정신을 가다듬고 

"엄마는 검정고무신 시대가 아니고 운동화 시대야" 라며 아들에게 잘못 입력되어 있는 시대를 바로 잡았다. 

내 말을 받은 아들은 또다시  "엄마는 검정고무신 시대면서" 라며 한치도 양보 없는 설전을 벌이다가 

막판에  "엄마는 운동화 시대라고"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하는 주장에 

아들은 할 수 없이  "그래, 그럼 운동화 시대라 치고" 라며 말꼬랑지를 슬며시 내리곤 했다.


물론 검정고무신을 신기는 했었다. 남자 거와는 달리 앞머리에 꽃무늬가 있는 나름 예쁜 검정고무신이었다. 

허구한 날 산으로 들로 강으로 첨벙첨벙 껑충껑충 쫓아다니는데 고무신만큼 만만한 게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학교 갈 때는 흙먼지 탈탈 털어 내고 애지중지하던 운동화를 신고 갔다. 

고무신과 운동화를 혼용하여 신다가 이마저도 고학년이 되면서 고무신과는 영 멀어졌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우리보다 더 오래도록 검정고무신을 신고 농사일을 하셨고, 

출타하실 때는 마루 밑에 모셔 둔 하얀 고무신을 내어 신으셨다.


아들에게  "엄마가 왜 검정고무신 시대라고 생각했어?"  물으니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본 검정고무신이 너무나 인상 깊었는데, 

내가 평소에 말하던 생활 모습이랑 정말 비슷하더란다.

그랬다. 아이들 앞에서 내가 라떼 얘기를 엄청 많이 하긴 했다.

나와 아들의 의식주생활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니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산골짜기에서 나고 자란 나의 옛날이야기가 무척 멀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어쨌든 크림빵 가격으로 내가 운동화 시대라는 것이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검정고무신과 운동화의 오랜 각축전 끝에 내가 운동화 시대임이 명확하게 판명이 났지만, 

처음부터 나를 검정고무신 시대라고 단정 짓던 아들도 

검정고무신 시대와 선을 그으며 굳이 운동화 시대라고 명명하던 나도 허탈한 웃음이 나긴 매한가지였다.


아들아, 검정고무신 시대면 어떻고 운동화 시대면 어떠냐.

너와 내가 함께 사는 지금이 중요하지!

너 요즘 잘 살아보세랑 새마을 운동 노래 즐겨 듣던데 우리 한 번 잘 살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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