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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Oct 16. 2023

샬롯과의 어리둥절한 동거

거미의 포로가 된 우리 가족

거미가 줄을 타고 내려옵니다

해님이 방긋 솟아오르면 거미가 줄을 타고 내려옵니다~


2017년에 나는 샬롯과 동거하는 아주 멋진 경험을 했다.


따스한 봄기운이 스멀스멀 기어오를 때쯤 나 홀로 집에서 거실 소파에 앉아 창밖을 보며 멍을 때리고 있는데

'어랴! 저것이 뭐냐' 창문 너머 순간 포착 된 거미에 놀라 베란다로 달려 나갔다.

난생처음 보는 정말로 큰 거미였다. 박물관이나 영화에서 볼 법한 킹스파이더 그 자체였다.

'어머나 세상에, 이게 웬일이야' 나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그저 신기하게만 거미를 바라봤다.

그날부터 거미 샬롯과의 어리둥절했지만 꽤 괜찮은 동거가 시작되었다.



앞베란다에는 처음엔 커다란 거미 한 마리만 살았는데 어느새 아주 작은 거미가 나타났다. 

한 거미줄에서 공생하며 날이 갈수록 아기 거미가 뽀득뽀득 성장해 가는 걸 보니 

모녀지간이 아닐까 짐작해 보았다.

위 사진은 2017년 9월 8일, 아기 거미가 청년 거미로 성장하였음을 기록하기 위해 찍은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봐야지만 보였던 아기 거미가 폭풍 성장하여 엄마 거미를 따라가고 있다.


한날은 뒷베란다에서 손빨래를 하다 앞베란다 거미만큼이나 큰 녀석을 발견하고는 놀라 자빠질 뻔했다. 

앞베란다 거미와 대략 일주일 가량의 시차를 두고 등장한 것 같다. 

나중에 아기 거미가 태어나면서 이것은 아마도 아빠 거미가 아닐까 하고 내 마음대로 추측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지붕 두 가족이 되어 

창문을 경계로 안에는 인간이 밖에는 거미가 동거하는 기묘한 일을 벌였다. 

우리가 거미줄에 갇힌 것 같다는 둘째 아이의 말에 한바탕 크게 웃었다. 킹스파이더가 창문 밖에서 얼기설기 탄탄한 거미줄을 치고 딱 버티고 있었으니 우리가 거미의 포로가 된 셈일 수도.......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앞 베란다 뒷 베란다를 차례대로 가서 거미한테 문안 인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밤새 잘 주무셨는지, 별 일은 없었는지 거미의 무탈함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의 하루를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저러다 가겠지 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끄떡도 않고 그 자리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비바람이 사납게 몰아치던 밤에는 

거미가 날아갈까 봐 바람소리만큼이나 마음이 거세게 일어 전전긍긍했었다.

폭폭 찌는 더운 날에도, 양철 지붕을 날려 버릴 것 같은 비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미는 남쪽과 북쪽에서, 앞에서 뒤에서 더 세고 더 긴 거미줄로 우리 집을 에워싸고 적으로부터 우리를 맹렬히 수호했다.



거미와의 동거가 점점 익숙해져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었던 9월 28일 날 아침에 비극이 찾아왔다.

전날 밤, 또 한차례 비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치더니 우리의 수호신 거미가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작별인사도 없이.........

그것도 정들었다고 갑작스러운 이별에 섭섭함이 이뤄 말할 수 없었다. 

헹한 마음에 창문을 열고서 처마밑을 샅샅이 훑어보며 거미를 애타게 불러도 보았으나 샬롯의 흔적은 없었다.


2017년을 기억하며

거미야, 안녕~ 

멋진 추억을 안겨준 나의 샬롯,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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