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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Dec 11. 2023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내가 하고픈 말

"춥다, 어서 들어 온나, 점심 안 먹었재, 얼른 떡국 끓여 주꾸마"

중학교 신입생 반편성고사를 치르고, 동기들과 30여분을 걸어 친구의 친적집에 우르르 몰려갔다.

아주머니는 지체 없이 10여 명이나 되는 일면식 하나 없는 여학생들에게 따끈한 떡국을 내어 주셨다.

"배 고프재, 어서 먹어라"

팽팽한 긴장감으로 얼어붙었던 몸을 녹이며 출출했던 배를 채우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국을 먹었다.

그때 그 아주머니의 말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말이었다.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미경아, 이리 와 봐라" 

"한 보자, 아이고 예쁘다! 어쩜 이리 예쁘노!"

나를 불러 분홍 귀걸이를 달아주는 것을 시작으로 

나를 보면 언제나 애정 어린 시선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던 앞집 아지매.

앞집 가게 아지매의 말은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말이었다.

'아지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출발하지? 잘해, 이건 용돈 하고"

도체육대회 출정식 날에 한 남학생이 나를 찾는 선생님이 있으니 중앙현관으로 가 보라 해서 달려갔더니, 

이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선생님이 응원의 말씀을 건네시며 지폐 2장을 곁들여 주셨다.

'나를 어떻게 아시고 이렇게 챙기시는지' 

초등학생5학년의 생각으론 당황스럽기도 하고 과분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대회 참가선수들의 주훈련장소였던 읍내 초등학교에 근무하셔서 인사를 드린 적 있었다.

담임선생님도 육상부 선생님도 아니신데,

인사 한두 번 한 것 말고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던 전근무지의 학생에게 

굳이 특별한 시간을 내면서까지 호의를 베푸시니,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씀을 받고도 어리둥절했다. 

대회가 끝나면 나는 나의 시골 초등학교로 돌아갈 터이고 선생님과는 마주칠 일도 없을 텐데

그날 J선생님의 말은 세상에서 가장 세심하고 아름다운 말이었다.

'J선생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수많은 말을 먹고 살아간다.

말도 음식과 같아서

맵고 쓰고 달고 짜고, 별의별 말 중에 위로와 지지, 관심과 격려의 말이 가장 영양가 있더라.

대가 없는 순수함 그 자체의 선한 말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말로 기억하고 있더라.

맛있는 음식을 대하면 레시피가 궁금하고, 따라 해 보고, 나누고, 함께 즐기듯 말도 마찬가지더라.


내가 하고픈 말은 

스치고 지나가는 나의 인연이 그랬듯, 나의 이웃이 그랬듯, 나의 선생님이 그랬듯,

봄이 되어 여름이 되어 가을이 되어 겨울을 잘 날 수 있게 해 주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아름다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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