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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Jan 22. 2024

불심은 내가 최고라

피는 못 속여

중학교 때, 오래전에 고인이 되신 P 교법사 선생님께서 

전교생을 통틀어 '불심은 이미경 학생이 최고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의복이며 말씀이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언제나 반듯하게 정제되어 계셨던 교법사 선생님,

P선생님의 성함과 똑같은 꽃나무가 교정에 있었다.

교내 여러 선생님을 모시고 옆반에서 진행된  영어수업 발표 시간, 

좋아하는 꽃 이름을 묻고 답할 때 

한 친구가 I like PTG 라 답하여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든 일화가 있다.


나의 중학교는 사명대사 님을 숭상하는 불교 조계종파 학교였다.

1학년때 불교교본이라는 교과서로 주 1시간 석가모니의 생애에 대해서 배웠다.

교과서 내용을 바탕으로 전교생(850여 명)이 치른 시험에서 성적 우수자 2명에게 주어진 장학금을 받았었다.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면 학생회 간부들은 음악실에 모여 1시간 동안 법회를 가졌다. 

교법사 선생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염송하고 불교 경전에 대한 설법을 들었다.

 사월 초팔일이 가까이 오면 반마다 할당된 등을 제작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연등회를 열었다.

 학교로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불교 소식지가 있었다.

그 발행인이자 편집자님에게 편지로 우리가 일상에서 가지는 욕심에 대해서 질문을 한 적 있었다.

'고집멸도, 색즉시공 공즉시색, 팔정도' 등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너무 많아서 

한동안 J법사님이랑 서신 왕래를 했었다.

아마 그런 나의 진지했던 태도를 보시고 교법사 선생님께서 '불심은 내가 최고'라고 하신 듯하다.


제 종교가 불교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게는 신학대학원에 도전했던 친구도 있습니다.

대학교 때 동기 언니를 따라 성당에도 가 보았고 집 근처 교회의 시계탑도 아주 좋아합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예수탄생을 축복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누립니다.


종교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예전에는 무교라 답했는데 요즈음은 모든 종교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으니 다신교라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줏대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부처님, 예수님뿐 만 아니라 제가 다다를 수 없는 경지에 계신 모든 분들을 공경하며 사랑합니다. 

스스로 고행의 길을 택하시어 큰 깨달음으로 어리석기 그지없는 저를 구원하시니 그저 감복할 따름이지요.

하지만 저의 기질상 고즈넉한 절에서 좀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우리 작은할아버지 작고하실 때까지 상투를 틀고 계셨다.

아마 군소재지를 통틀어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갖추고 출타하신 분은 

우리 작은할아버지가 유일무이하지 않았을까 사려 된다. 

'갓쟁이, 갓쟁이'라고 하면서 '그 짝 동네 그 갓 쓴 양반'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맨발로 논바닥을 문지르고 지게로 두엄을 져 나르면서도 할아버지는 '에헴, 에헴' 헛기침을 하시며 

허울뿐인 이름으로 허세를 부리신다고 '우리가 그래도 왕손이다'라는 말씀을 자주 입에 오르내리셨다.

명절 때에는 효령대군의 몇 대손임을 각인하며 자랐었다.


우연히 나의 시조 효령대군(1396년 1월 29일 - 1486년 6월 22일)에 대한 기록을 보았다.

간략히 소개드리자면 

효령대군은 태종의 둘째 아들로 

형님인 양녕대군과 동생인 충녕대군(세종대왕)과는 우애 깊은 형제지간이었습니다.

불교를 심오하게 믿어 조정의 숭유억불 정책하에서 불교 보호의 방패 역할을 감당하였다 하네요.

조선왕조를 창건하신 태조로부터 9대 성종에 이르기까지 아홉 분 임금님의 조정을 보필하면서 

명예와 재물을 탐하지 않고 오로지 왕실의 번영과 나라발전에 공헌과 충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주목할만한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장수왕 영조(83세) 보다 더 장수하셨는데요,

조선 역대왕들의 평균 수명이 47세라는 것을 감안하여 볼 때 

91세라는 이례적인 장수로 조선에서 최고로 장수하신 왕자이십니다.

장수의 비결은 

욕심을 버리고 유유자적한 마음을 가지고 여유롭게 즐기면서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태종실록 태종 18년(1418) 6월 3일 기사 내용 중

중국 사신들에게 베푼 연회자리에서도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술과 관련된 기록이 심심찮게 보이는데, 효령대군이 지나치게 점잖은 성격에다 술을 일절 마시기 때문에 

마실 일이 많은 왕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판단되어 차기 왕세자 후보에서 제외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우리 집 6남매는 체질적으로 술이랑 잘 맞지 않습니다.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얼굴이 붉게 타 올라, 때 이른 단풍구경을 나섭니다. 

심장은 벌렁벌렁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날뛰고 여하튼 몸이 괴로우니 평소 술은 입에도 대지 않습니다.

하여 '피는 못 속이는구나'라고 어불성설을 해 보았습니다. 많이 웃으셨지요.

 

 

효령대군은 위아래로 임팩트가 워낙 강한 두 형제분 사이에 있다 보니 존재감이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만

온화한 인품만큼은 높이 칭송되었으며 말년에는 종친의 높은 웃어른으로서 영향력도 상당했습니다. 

파면 팔수록 이모저모에서 제가 시조할아버지를 쏙 빼닮은 듯하였습니다. 또 웃으셨지요. 다 들려요.

남들이 뭐라든 제가 제 멋에 삽니다. 저 또한 그저 웃지요.


서울 방배동에 있는 청권사(淸權祠)는 절이 아니라 효령대군이 모셔져 있는 사당입니다.

사당 이름 청권(淸權)은 깨끗하고 사리에 맞는 처신을 안다는 뜻입니다.

여전히 세속의 번뇌로 효령대군 북 치듯 살아가고 있지만, 

시조할아버지의 청권사상을 받들며 성심성의껏 살아보겠노라 다짐했습니다.


우리 집 사람들 저를 하대할 모양새면 

'6두품들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어찌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밥상을 받으러 드느냐' 하면서 우스개로 호통을 치다가도

속 좁은 대인배들의 한량짓을 속 넓은 소인배인 내가 아량을 베푼다며 물러나 버립니다.

끝까지 재미있었나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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