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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Mar 19. 2024

도플갱어

누구지?

"주말에 본가에 다녀왔어요?

오늘 00역에서 분명 이선생님 봤는데.......

옷차림도 그렇고, 키도 그렇고, 풍기는 분위기가 딱 이선생님이었는데........ 

새벽에 집을 나서 오다 보니  졸려서 자꾸 감기는 눈에 본 것이라 어렴풋하긴 했어도,

선생님도 고향 갔다 오는 길이구나 생각했죠"


월요일 아침에 동료 선생님이 인사를 나누며 물었다.

나만의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하고 다녔던 터라 나랑 닮은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한데 나를 봤다고 하니, 누구지?



공방에 들어 선 손님이 

"어!, 누구 아니세요?"

"아는 분이랑 너무 많이 닮아 착각할 정도네요"하였다.

서로 처음 마주한 시공간이거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이 무색할 따름이었다. 누구지?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주례사를 해 주신 6학년 담임선생님이 교장으로 계신 학교에 감사인사차 갔었다.

차에서 내리니 

바로 보이는 현관문으로 아이들이 하나 둘 붙어 쑥덕쑥덕하더니,

갑자기 구름처럼 몰려와 나를 보며 웅성웅성 아이돌 스타 구경하듯 하였다.

'이상하네?' 

'왜 내게 관심을 보이지?' 어리둥절하였다.

아이들의 얼떨떨한 환영 인사 광경을 선생님께 전하였다.

내가 그 학교에 근무하셨던 선생님이랑 많이 닮았다고 하셨다.

학생들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너무나 훌륭했던 선생님이었셨다고........



첫째 아이 서너 살 무렵, 셋째 언니네 놀러 가서 근처에 문구점을 하고 있는 외갓집 언니에게 들렀더니,

언니 친구분인 듯한 한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외갓집 언니를 쿡쿡 찌르며 아는 사람 같다면서 나의 신상을 마구마구 털어 되었다.

하도 안면이 있다 해서 짧지만 굴곡진 인생사 은인을 몰라 뵈어나 싶어 

찬찬히 훑어보아도 내 기억엔 없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지역에 살지도 않을뿐더러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는 터라 그분이랑 스쳤을 리 만무한데, 

언니까지 나서서 '가가 가가 아니다'라고 하는데도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아닌 게 아닌데' 하며 끝까지 의구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눈이 속을 정도로 세상에는 나랑 닮은 사람, 판박이인 듯한 사람이 도처에 있나 보다.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이 나를 보고 '모나리자'의 미소랑 닮았다 하여 

반 친구들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미술책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오~! 음~! 닮았네!"라고 하였다.

그 시간부로 나는 하루 종일 억지 미소를 머금고 선생님의 말씀에 신의를 지켜나갔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나를 보고 

당시 드라마 사극에서 인현왕후 역을 하였던 탤런트 모모 씨랑 닮았다고 하여 

반 친구들 일제히 나를 쳐다보더니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책상이 부서질 듯 두드리며 아니라고 아니라며 원성을 마구잡이로 쏟아내었다. 

선생님, 여고생들의 팔팔한 기세에 당황하여 한 발짝 뒤로 물러 서시며

"아니, 아니, 그러지들 말고 자세히 한번 봐봐"

내가 머리를 약간 숙이고 책을 보는 모습이, '분위기'가 영판 닮았다며 문장을 수정보완하셨다. 

선생님의 두리뭉실 추상적 표현에 조금 진정이 된 반 친구들 일제히 한번 더 나를 쳐다보며 웅얼웅얼하더니 

"그런 것 같기도"라고 말끝을 흐리며 모호하게 인정하였다.


사실, 나도 처음엔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였다.

앞자리에 앉아 좀 얼쩡되었기로소니 그래도 그렇지, 선생님 눈을 의심하며 

'전혀 아니옵니다' 완강히 거부하는 몸짓을 보이며 '말씀을 거두어주시옵소서' 간절한 눈빛으로 응사하였다.

외모가 닮은 것이 아니라 태도가 그렇다 하여, 

마지못해 받잡고는 

더 기품 있어 뵈려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내 이름은 또 얼마나 많은지,

미경이 서너 명은 기본이고 많게는 대여섯 명이 한 학교를 다녔다.

반편성을 하던 날에는 성도 이름도 같은 친구와 한 반에 들어 복도에 나가 섰다, 반을 바꾸는 소동을 벌였다.


성만 다른 이름부터 시작하여 성도 이름도 똑같은 사람이 수두룩하다.

검색하면 다 나오는 기라성 같은 미경 님들의 활약에 박수를 보내며,

한없이 작아지는 날 용기를 충전한다. 



내가 닮은 사람이, 나를 닮은 사람이

그대들이 보고픈 사람이라서

그대들에게 반가운 사람이라서

그대들이 만나고픈 사람이라서 

그대들을 웃음 짓게 하는 사람이라서

나는 참! 좋다!


이름도, 미소도, 태도도, 옷차림도, 외모도 도플갱어

세상의 모든 도플갱어님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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