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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Mar 18. 2024

식은 밥의 눈물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아귀 귀신 될까 무서워 나는 언제나 내 밥그릇 음식은 깨끗하게 비운다.

상하지 않은 다음에야 업어 치고 매쳐서 남김없이 끝까지 입에 밀어 넣는다.

밥상머리에서의 나의 온전한 비움은 

밥상에 앉아마자 시작된 아버지의 무언의 불호령,

중학교에서 들은 부처님의 '이대로 살다가는 지옥행'이라는 강연이 한몫하였을 듯싶다.


이따금씩 내 손으로 한 음식임에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맛이 영 아닐 때가 있다.

그러면 식구들은 따끈따끈한 새 밥을 해서 올리고, 나는 그것을 소분해서 두고두고 먹는다.


맞춰한다 했는데 밥통에 밥이 애매하게 남는다.

그럼 내 차지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이 좋은데........ 



초등학교 고학년 여름이었다.

아침부터 달아오르는 열기를 식히러 세숫물을 마당에다 냅다 뿌렸다.

더위에 입맛이 축 늘어져 있는데 아침 밥상에 쉰내가 살짝 비치는 밥이 내 앞에 놓였다.


어제저녁에도 식은 밥을 먹었는데 또 식은 밥이라니, 이삼일 연거푸 식은 밥을 먹었다.

마지못해 한마디 꺼냈다.

"왜 나만 항상 식은 밥 줘?"

"나도 새 밥 줘"


"야가 아침부터 되바라지게 뭔 소리를 하노"

"그거라도 먹으면 되었지"

낮은 상에서 엄마도 나와 마찬가지인 식은 밥을 양푼에다 물 말아 드시면서 서걱서걱 말을 뱉으셨다.


높은 상에 있던 대학생 오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럼 내 밥이랑 바꿔 주까?" 하였다.

말보다 행동이 빠른 나는 손이 먼저 나서지 않는 오빠에게 날이 바짝 선 높은 콧대를 앞세워

"됐어" 새초롬하게 말을 뱉고는 토라져 몇 숟갈 뜨다 말았다.


아버지야 당연히 아무 말씀 없으시고, 

남동생은 앞에서 누가 뭐라 카거나 말거나 제 밥그릇 밥만 탐하고 있었다.


아마 내 입이 점심에 나오는 학교급식에 매혹되어 있어서여서 그랬을 것이다.

아마 내 코가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그랬을 것이다.


가난한 살림에 식은 밥 남았는데 누굴 주랴? 아버지, 동생, 오빠? 

아니 아니, 식은 밥은 내가 먹겠다 먼저 말하였을 것이다.

내가 누구의 새 밥이랑 바꾸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누구는 높은 상에서 당연한 듯 온밥 먹고, 

누구는 낮은 상에서 스스로 찬밥 취급하는 불친절한 현실에 쉰내가 코를 자극하자 그만 폭발해 버린 거였다.

이왕지사 새 밥 했는데 보기도 좋게, 사이도 좋게 나눠 먹고, 

식은 밥은 밥구정물에 풀떼기만 먹고도 농사일에 헌신하는 소를 주면 될 것을........ 어린 내 생각이 그랬다. 


한 밥상에 둘러앉아도, 한 학교를 다녀도, 남자 대 여자 편이 갈라졌었다.

엄마는 여자임에도 간혹 가시 돋친 사랑을 내게 주시어 그럴 때면 많이 속상했었다.

언니들과 다르게 나는 아들딸 차별하는 것에 따박따박 말을 하여 엄마 가슴을 후벼 팠었다.

그러다 내 하는 말, 씨알도 안 먹히어 

입은 바로 포기를 선언했지만 가슴은 포기를 모르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끈질기게 하였다.



6학년 때 전교생 중에 키가 제일 크서 키다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무엇이든 잘하는 언니들을 따라잡겠다고, 

애가 달아 열심히 뜀박질을 하였더니 어느새 언니들과 키가 나란해져 있었다.

목마른 자 먼저 우물을 판다고, 

성질 급한 내가 또래들보다 빨리 키를 키워 우물을 팠다.


운동회 날, 다른 동네 학부모님들 내 이름은 몰라도 

청백계주를 할 때나,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 대표 계주를 할 때면 

"저기 저 키 큰 아 나오면 안 된다 칸이" 하셨다.

나를 대적할 자 아무도 없었다.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에 경주로 여행 가서 불국사 앞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 보니, 

친구들 머리 위로 내 머리가 삐죽 솟아 있었다. 

느긋한 친구들보다 먼저 키를 키운 덕에 홀로 독야청청하며, 윗동네 따스운 공기 마음껏 들이켰다.

산너머 번쩍번쩍한 동네로 나오니 그저 평범한 키였건만, 그때는 골짜기가 내 것이라 범 무서운 줄을 몰랐다.

싱겁게 자란 키로 누린 은혜를 으스대며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 오른 오만으로 비뚤어진 사고관을 싹 튀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했음에도, 내가 사람을 눈아래 두는 못된 버릇이 있다.

벼룩의 간 빼먹는 사람, 등쳐 먹는 사람, 닭 먹고 오리발 내미는 사람, 

콩 한쪽을 못 나눠 먹는 사람,........ 등 등 , 

이런 사람들은 남녀노소 차별 않고 평등하게 단칼에 내리쳐 눈아래 둔다.

  

그리고 탐관오리, 간신배,........ 이런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어 눈으로 보기만 하여도 경기를 일으킨다.

사회생활 할 때 하고 많은 오리 중에 탐관오리를, 하고 많은 배 중에 간신배 농사짓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지병이 도질까 봐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더니 

그 사람들이 작당모의하여 나를 모함하며 떼로 덤비어 심신이 불같이 활활 타올랐었다. 

그때 신고배 묘목을 심었어야 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심어 봤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땅밖에 없고, 몸에 병이 깊어 그럴 여력이 없었다.


모르는 음식을 입에 넣었다가 조금이라도 정도에 벗어난 맛이 나면 속이 부글부글 끓고 체하기가 일쑤였다.

엄격한 기준의 검역 심사대를 통과한 음식만 먹는 나를 보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면서 까탈스럽게 구네, 유난 떠네'라며 탐관오리, 간신배 농장주들이 한 마디씩 뱉었다. 

그럼 나는 사시나무를 부여잡고서 '내 뜰의 참나무와 대나무 보고만 있어도 배 부르오'하며 보골을 채웠다.



지금은

기고만장했던 기개 다 꺾이어  

'내가 너거들 밥 먹여 살리는데 고마워하지 않는다'라고 생트집을 잡아도 가만히 있는다.

앞부분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주인을 잃고 천둥벌거숭이가 된 말의 고삐를 잡을 아귀힘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할 말은 많지만 아무 말 않고 사니, 겉은 고요하여도 속은 아수라장이다.  

(그래서 제가 매일같이 성인들의 말씀을 새깁니다.)


나이를 어디로 먹는지 밉상 궂은 말뽐새 여전히 뽐내는 자 마주하면  

여차하면 튀어 오르는 용수철 같은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아댄다.

금니 은니에 빠지고 흔들려 제대로 갈지도 못하면서 분기탱천하며 씩씩거리는 꼴이 우습기도 하다.

(그래서 제가 매일같이 작가님들의 지혜에 귀 기울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더니

비린내, 구린내, 썩은 내가 진동하는 말에 

주야장천 흑심을 품고 못된 버릇 키우고 앉았으니,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그날 저녁 모처럼 온 가족이 가마솥에 갓 지은, 단맛 나는 새 밥 먹었습니다.

 몇 날 며칠 남아돌아 켜켜이 쌓인 식은 밥은 저의 바람대로 우리 집 복덩이 누렁소가 차지했고요.

 쌀뜨물 챙겨 들고 소구시로 향하시던 엄마가 눈에 아른거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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