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타작 가고 나니 모내기 뒤에 섰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뒷다리가 쑤욱 앞다리가 쑤욱 팔짝팔짝 개구리 됐네
꼬물꼬물, 꼬물꼬물, 꼬물꼬물 올챙이가........
우리 집 아이들, 유치원을 다닐 때에는 봄이면 딸기 따러 가고, 가을이면 고구마 캐러 가는 일이 잦았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생존 수영 하러 다닌다고, 가방이 물에 젖어 있기가 다반사였다.
중학교를 다닐 때에는
'문화체험이다, 스포츠체험이다, 과학체험이다' 하면서, 문턱이 시끄럽도록 드나들었다.
걸핏하면 체험학습 가는 요즘 아이들 못지않게, 나도 체험활동을 하며 학교를 다녔었다.
들어는 봤으려나 '가정실습'이라고,
농번기가 되면 3~4일 정도 집에서 허리가 휘도록 농촌체험활동을 하였다.
지역특색을 고려하여 학부모님들의 의사를 충분히 수렴하여 교육과정에 반영한
학교와 가정의 연계형 체험학습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눈 뜨면 바로 코앞이 체험 삶의 현장이거늘
그럼에도 학교는 '가정실습 중'이라는 팻말을 내걸고 임시 휴업을 단행하였다.
봄에 모내기철, 가을 추수철에 가정실습을 하여 미력하나마 농촌의 바쁜 일손을 거들었다.
보리타작 끝나면 모내기해야 하고, 벼타작 끝나면 보리갈이를 휘몰아쳐해야 하니,
농번기가 다가오면 부모님들은 언제 '가정실습'을 하는지 묻곤 하셨다.
학교를 안 가니 얼마나 좋을까 싶겠지만, 이게 희한하게도 머리가 굵어지면서 반갑지가 않았다.
누군가가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로 매타작을 벌더니,
나는 집보다는 학교, 가정실습보다는 학교 가겠다에 손을 번쩍 들었다. 이상한 아이라고 하든 말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농사일을 돕는 것은 낡은 책걸상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것보다 몇 배로 고된 일이었다.
물웅덩이 개구리알 몽글몽글 피어올라, 꼬물꼬물 헤엄치는 올챙이들 도란도란 얘기 나눌 때쯤,
내 고향 화사한 들녘에는
까끌까끌 금실물결 보리타작이 휩쓸고 지나 가면,
푸릇푸릇 푸른 물결 모내기가 몰려와 뒤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보릿고개 넘기러 일찌감치 낫으로 싹둑 머리로 이발시켜 보리이삭 밑동만 남겨 놓은 단정한 논,
소를 동원해 쟁기질로 땅을 갈아엎고 보도랑의 물길을 내어 써레질로 논바닥을 편평하게 고른다.
까칠하던 논에 부들부들, 매끌매끌한 진흙과 반짝반짝 빛나는 윤슬이 가득 차면 모내기를 시작한다.
못자리의 모를 쪄서 흔들흔들 흙을 털어내고, 서너 움큼 모아 짚을 둘러 묶어 모춤을 만든다.
물빛으로 반짝이는 논바닥에 여기저기 군데군데 흙탕물을 튕기며 툭 툭 척 척 던져 놓는다.
논 양끝에 선 못줄잡이 아버지와 엄마,
못줄을 풀었다 되감았다 팽팽하게 당겨서,
물 위에 살짝 띄워 팽팽하게 못줄을 대고, 못줄막대를 단단하게 내려 박는다.
모 심는 모잽이 6남매
왼손에 모를 한 움큼 두둑하게 움켜쥐고, 오른손으로 서너 포기 떼어내어 붉은 표식에 맞춰 내리꽂는다.
잘 벼리진 논바닥 손이 쏙쏙 잘도 들어가지만
시멘트 포장을 했나? 딱딱한 논바닥 손가락으로 송곳을 만들어 구멍을 뚫어가며 모를 심었다.
"못 줄 넘긴다"
아버지의 우렁찬 소리에 모잽이들 여유 부리던 손 다급해지고, 엉거주춤 절벅거리며 뒷걸음질을 친다.
차르락 차르락, 미끌락 미끌락.
"심어라" 소리에
둘이서 짝을 이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찰랑거리는 뻘논에 쉼 없이 착착 척척 모를 꽂는다.
어설픈 모잽이들 솜씨 좀 구경할까나.
잘 심었다 싶었더니 모가 둥둥 떠올라 배영, 평영, 접영 심지어 자유형까지 선 보였다.
내 너를 두 번 다시 놓칠쏘냐, 이번엔 단단히 깊게 박았다.
"이크!"
접시물에도 빠져 죽는다더만, 그것도 물이라고 물에 잠겨 '숨 못 쉬겠다' 난리를 쳐서 다시 뽑아 올렸다.
(이러니 덧셈 뺄셈보다 힘들었지!)
너 마지기 논에서 모를 찌는 것을 시작으로 신나 신나, 기운 펄펄 모를 심고,
누구 코에 붙일 수나 있을는지 모르겠는 반 마지기도 안 되는 논에서
악착같이 달라붙는 거머리에 놀라 '내 다리 내놔라'며 펄쩍펄쩍, 들쭉날쭉 모를 심고,
그 아래 두 마지기 논으로 찰박 찰박 걸어 내려가 해를 끌어안고 휘청휘청, 삐뚤빼뚤 모를 심고,
이튿날 강 건너 한 마지기 하고도 반 마지기를 더 보탠 논으로 달려가
'앗싸! 마지막이다!' 퐁당퐁당 푸르른 5월을 심었다.
다음 날 아침, 머리에서 발끝까지 욱신 거려 골골 대며, 90도로 공손해진 허리로 기어 다니다시피 하였다.
'아뿔싸!'
너무 흥분한 나머지 산답논이 있다는 걸 깜빡하였다.
징검다리 건너 오솔길 따라 하늘과 맞닿은 산답 논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오늘 중에 어야든지 기필코 네게로 가서 푸른 머리 심어 주마.
(이러니 학교 다니는 게 수월했지!)
세상이 참 많이 변하였다.
고사리 같은 손에 낫을 쥐어주고 들녘으로 내몰던 농촌은 기계화가 다 되었다.
보리타작 하던 논, 모내기하던 논 이제 다 사라지고 할 일 잃은 못줄만 외로이 뒤양간을 지킨다.
낫이 무엇하는 물건인지 요즈음 아이들 그 쓰임을 알기나 할까?
내가 자라면서 지겹도록 다뤘던 농기구들은 유물이 되어 이제 박물관에서나 봄 직하다.
못줄 놓고 못줄을 모르는 시대가 되다니 어처구니가 없구나!
*동네에서 제일갔던 너 마지기 논에서의 모내기 풍경입니다.
아버지 바지게에 모춤을 져 나르시다 막걸리 한 사발 걸치고 입장하시네요.
엄마와 언니 둘은 모를 찌고 있네요. 지푸라기로 야무지게 매듭지어 모춤을 만드네요.
동생은 사시사철 땅에서 솟아나는 찬물새미(강녕샘)에서 달콤하고 시원한 물을 떠 와서 나르고 있네요.
오빠는 모춤 들고 섰는데 뭔 일을 벌일 것만 같네요. 장담컨대 배실 배실 얄밉게 웃고 있네요.
조만간 흙탕물 세례 받은 동생들 분노의 함성 빗발칠 것으로 예상되네요.
저와 바로 위 언니는 모를 심고 있네요.
돌무지 위 조그마한 밭에는 정구지(부추)가 자라고 있네요.
새참으로 국수에 정구지나물 무침 올려 먹었나 보네요.
모내기할 때 제일 무서웠던 것은 거머리였어요.
윗집 논 거머리 아랫집 논으로 핑퐁 핑퐁, 아랫집 거머리 윗집으로 촐랑촐랑,
유달리 거머리가 많던 논이 있었어요.
저는 웬만해선 벌레 보고 놀라지 않는데
저의 하얗고 튼실한 종아리에 빨대를 꽂아 피를 쪽쪽 빨고 있는 거머리를 보고는 기겁을 했어요.
찰싹찰싹 아무리 세차게 때려도 떨어지지도 않고, 아~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아요.
모심기할 때 첫 번째 요구 조건이 거머리 없게 해 달라는 것이었어요.
모찌기 모춤을 던져라 툭 툭 첨 첨
못줄잡이 못줄을 대어라 착 착 잠 잠
모잽이 모를 심어라 쏙 쏙 촘 촘
어슴푸레 새벽부터 시작된 모내기는 달이 두둥실 떠올라 하늘 가운데로 올 때까지도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친 발자국, 타박타박, 터벅터벅, 쫄래쫄래 내일을 향해 달려갑니다.
내 몸에 까맣게 눌어붙은 그림자, 내 키보다 많이 작아 흠칫 놀랐습니다.
땅딸보 달그림자 밟고서 낭창낭창 걸어갑니다.
땅딸보 달그림자 헐레벌떡 뛰어 방천을 올라 내일을 향해 달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