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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Sep 16. 2023

선서, 나는 다짐합니다!

시어머니 타박 마소, 며느리 머리 세요

하루하루 늙어가는 시부모님 애달파

"어머니 나중에 저희랑 같이 사시겠어요" 여쭙는 며느리에게 

"나는 니 하고는 한 집에 못 산다, 가만 보니 니 성격이 보통이 아니더라" 며 

입을 삐죽거리며 막무가내로 며느리 눈꼴시려워하는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아직 어둑어둑한 설날 이른 아침(7시경)에 차례상 음식을 장만해 바리바리 들고서, 

계단을 5층 올라 숨을 헐떡이며 들어서는 며느리에게

이부자리에 발을 묻고 앉은 채로 "왜 이리 늦게 오노, 하도 안 와서 전화할라 했다" 며 

코를 실룩거리며 자꾸 채근하는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제왕절개로 첫아이를 출산하고 집에서 조리하는 며느리에게 한 달이 지나자  

"인자 니가 밥 해 무라, 김치도 다 먹고 없다" 며 

자애로움 하나 없이 갑자기 훅 말씀을 날리는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아직 제대로 펴 지지도 않은 구부정한 허리를 붙들고 따끔거리는 배를 부여잡고서

엉거주춤 느릿느릿 몸을 움직여 겨우 저녁상을 차려서

"아버님, 어머님, 식사하세요" 하는 며느리에게

그제야 모습을 드러내시며 식탁을 흘깃 훑어보고서는 

"이게 뭐꼬, 입에 끌어 넣을 끼 없다, 된장이라도 지지지" 라며 

밥상을 팩 되돌려버리시는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 제가 해 드리는 반찬이 입에 안 맞으시면, 직접 좀 해 드세요" 라며 

집 나간 머리를 삭이며 말하는 며느리에게

"내가 니 미워서 그런 게 아니고, 시아버지 밥상아이가"

"인자는 간장만 줘도 내 아무 말 안 하꾸마" 라며 

끝까지 며느리가 차려 주는 밥상 받으시러는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명절날, 돌도 지나지 않은 딸아이 둘러업고서 삼십여 분을 걸어서, 

시댁 현관문을 숨 가쁘게 들어서는 며느리에게

"할 것도 별로 없다, 천천 해라" 하고서는 

목욕탕으로 냅다 줄행랑을 치시는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뽈뽈 기어 다니며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는 아이 다칠세라

가스불에 올려놓은 닭냄비 태울세라

오색나물 데치고 볶고 무칠라 

감칠 나게 탕 끓일라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며느리.

무슨 일이든 며느리에게만 독박 씌우는 안하무인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애 가질 때까지만이라도 같이 살았으면 한다'는 시어머니 바람을 들어 드리고 

첫아이가 태어나고 쌓여가는 불편한 나날로 분가하러는 며느리에게

"돈은 못 보태준다, 내가 너거한테 밥 얻어먹어야 하는데......" 라며 천장만 멀뚱멀뚱 쳐다보시는 시아버지.

"이거는 너거가 내라마, 내러 갈라카니 귀찮다" 며 방문을 열어젖히고 문지방 밖에 서서는 

대출금 상환통장을 방바닥으로 패대기치는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저녁 찬거리 미리 준비해 두고서,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밤 10시가 가까이 되어 조심조심 들어서는 며느리에게

"너거 여 와 봐라" 라며 눈에 빨간 불을 켜고 맞아주시는 시어머니.

외투라도 벗어 놓고자 방문을 여니 귀청을 때리는 오디오 소리.

죄지은 듯 머리를 조아리는 며느리에게

"배는 그레 불러가(임신 6개월 차) 이 시간 되도록 남의 집에서 안 힘들더나? 우째 앉아 있었노?"

"뭐가 그리 바빠가 음악도 크게 틀어 놓고 문도 안 잠그고 갔노?" 라며 

걱정 아닌 불벼락을 내리시는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모두 당신 아들의 소행이지만 한마디 거들지 않는 남편에 며느리는 체념한 듯 씁쓸함만 베개에 파묻었다.)


"내 오늘 병원 안 가봐도 되겠나?"

"니 해 온 '요'가 맨바닥에 자는 것처럼 냉기가 숭숭 뚫고 올라와가

'아(첫 친손주)' 들어오기 전에 솜 깔아가 다시 꿰맬라꼬" 라며 

갓 출산한 며느리에게 당신 아들 결혼할 때 받은 '요'를 나무라는 시어머니.

5월부터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이 오기까지 시부모의 잠자리를 책임져 준 며느리의 상이불.

'요'가 두 분의 옥체에 짓눌러 납작해지자 하시는 말씀이지만 

이미 칼바람을 들이켠 며느리 '썩소'를 띄며 "그러세요" 애써 답한다.

그 후로 십여 년이 지난 시조부 제삿날, 

솜을 보강한 요를 깔고 주무신 시숙모 이부자리를 정리하시며

"아이고, 요가 엄청 무겁네! 들지도 못하겠다" 

"질부 시집올 때 해 온 거 갑네, 요즘에는 이레 두꺼운 것 없다"라고 하신다.

며느리는 묵묵부답, 시어머니 일언반구 없이 자꾸 뺑뺑이만 도시네.

얼마 지나지 않아, 설날음식 준비하느라 부엌에서 혼자 동분서주하는 며느리 불러 세우더니

덧댄 솜을 홀라당 벗겨내고서 원상 복구한 요를 내보이시며 

"한 봐라, 인자 가볍다!" 며 쓸데없는 수고를 들이시는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직장 생활 7년 넘게 하고, 나이를 그렇게 먹고서도 방 한 칸 마련할 돈도 없이 이게 뭐냐" 며 

결혼 자금 한 푼 없이, 한도에 다다른 남편의 마이너스통장에 푸념을 늘어놓은 며느리.

그 소리 건너 건너 듣고서는 

"니는 집 없는 기 그레 설더나.  너거 다음에 이사할 때 이 집 너거한테 주꾸마"

"길바닥에 나가 앉아도, 내 너거한테는 절대 손 안 벌린다" 라며 

탕 탕 호언장담하시며 한시도 쉬지 않고 귀를 털어내시는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수입과 지출을 쪼개어서  

한 푼이라도 더 모으려고 알뜰살뜰한 며느리에게

"니는 젊은 기 어찌 그레 궁상맞게 사노, 아끼도 너무 아낀다" 하시더니

그 말씀 다 마르기도 전에 

"너거 좀 아껴 쓰고 생활비 좀 도, 다달이 올라카면 불편할 끼네 통장으로 넣어도" 라며 

어디 맡겨두고 빌려준 것 마냥 당당하게 요구하는 후안무치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고, 며늘님 추석 잘 보냈습니까?"

"니가 니 입으로 좋은 대학 나왔다 카더만, 니 하는 꼴 보니 안 되겠다, 더 배워오너라" 라며 

며느리 한마디 항변할 새도 없이

비아냥거리며 일방적으로 당신 할 말만 하고서는 전화를 툭 끊어 버리시는 시어머니.

손찌금으로 심신이 얼룩져, 시조모 기일에도 추석에도 연달아 시댁에 모습을 비추지 않은 며느리.

혼자 온 당신 아들에게는 자초지종 묻지도 않고서는, 

속되고 거센말로 며느리만 달달 볶아대는 인면수심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첫아이 출산 후 두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나던 날, 

친정에 가 있던 며느리 시조모 제사라 시댁으로 복귀하려는데 

전날 밤 복통으로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며 잠 한숨 못 이루고 끙끙 앓아

'도저히 못 갈 것 같다' 전화하니 

'누워 있더라도 와야 된다' 며 야박하게 구시는 시어머니.


지엄하신 시어머님 명으로

차 뒷좌석에 드러누워, 꼼지락 거리는 아이를 품에 안고 

기진맥진한 몸을 싣고, 서너 시간 달려서 

제사장까지 봐서 왔건만 집이 휑하다.

어디를 외출하고 오신 건지 한참을 지나 출두하신 시어머니 

눈을 박고 장 봐둔 제수용품 검열하고서는 침대에 꼬꾸라진 며느리에게

세 치 혀를 날름거리며 "하이고, 배는 2개만 샀네. 두부는 없고......." 라며  

투덜투덜 다짜고짜 흠부터 잡으시는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제사장 품목을 적은 쪽지를 받고서도 

허둥지둥 설레설레  장을 본 당사자가 당신 아들임을 알고서는 

말 끝을 흐리며 꽁무니를 빼시는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점심때쯤 방문할 것이라고 미리 전화도 넣었건만, 아들네 도착하니

"너거 밥 먹었나? 안 먹었으면 해 무라, 밥도 다 먹고 없다" 며 

'먹고 왔다'는 며느리 굳이 부엌으로 내모는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마흔 가까이 둘째를 낳고서 한 달 보름이 지나 시아버님 생신 이렀다.

"니 식당 가서 앉아 있을 수는 있겠나, 밥은 내가 하꾸마, 이번에는 집에서 생신 치르자"며 

며느리 생각는 척 먼저 말을 꺼내 놓는 시어머니.

황송하여 가까운 횟집에 부탁하여 한상차림을 그릇째 통째로 옮겨 간 며느리.

밥숟가락 들 힘조차 없는 성치 않은 몸으로 커다란 생신상 펼쳐 들었네.

다리는 후들후들, 손목은 시큰시큰, 언제나 며느리 혼자 용을 쓴다. 

간을 마치지도 않은 밍밍한 미역국에 꾸덕한 잡채를 하다 말다 내팽개쳐 두고서는,

"니 국 간도 맞추고 잡채도 맛있게 해 봐라, 내는 모르겠다" 며

며느리 오기만 기다리며 가만 앉아 있는 무심한 시어머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시어머님 며느리가 낫바 벽바닥을 구르지 마오'라는 어느 조상님의 사설시조.

'빚에 받은 며느린가 값을 쳐 온 며느린가' 구절구절마다 

마치 제 모습을 보는 듯하여 경악을 금치 못한다는 며느리.


이십 년도 더 지났건만 

며느리 시집살이 어제일처럼 생생하고 시댁 문짝만 봐도 답답하여 속이 울렁인다네.

시어머니 이제 그만 타박 하소, 며느리 꺼멓던 머리 허옇게 다 세었소.


시어머니, 시어머니, 백지장도 맞들어 주고 

그저 그저 '수고했다, 고맙다' 하면 될 것을 

그 말한들 세금 내라고도 안 하는데 뭘 그리 아낀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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