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삭아삭 도라지나물
환갑 넘은 아들 하는 일이 여전히 어설퍼 보이는 내년이면 구순 아버지,
'다 큰 자식 뭐라 할 수도 없고' 당신 성에 차지 않아 미덥잖아 하시던 아버지,
밥상머리에서 웬일로 오빠 칭찬을 다하시네.
"너거 오빠 도라지 하나는 과신 잘 볶더라,
우웨 하는지는 몰라도 아삭아삭하니 기가 막히더라
나는 아직 그렇게는 안 되던데 희한하더라"
오빠는 퇴직을 하고 고향에 내려와 세종시를 오가며 발길이 뜸해진 땅을 가꾸는데 재미를 붙였다.
사람 일 알 수 없는 것이라 오빠가 아버지 곁에 있어 안심하고 잠을 자니 고마울 따름이다.
엄마가 지극 정성으로 공을 들인 아들, 오빠가 아침저녁으로 아버지께 지극 정성으로 문후를 드린다.
우리 집 사람들,
요리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기본은 한다.
손 맛 좋은 엄마의 DNA를 물려받아서인지 식재료를 다루는 데 있어 두려움은 없다.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중 첫째가 갑자기 '전화 왔다'며 벌떡 일어났다.
내 귀에는 깜깜한 소리를 첫째는 귀신같이 듣는다. 첫째의 귀는 소리에 아주 영악하다.
말을 해서 보니 내 폰 벨소리가 들렸다.
가서 누구한테 왔는지 확인해 봐라 하였더니, 폰이 어딨는지 보이지 않는다며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소리가 멎었다.
보호색 침구에 엎어져 있던 폰 쉽게 보일리가 있겠냐마는, 주인은 단박에 찾아내어 열어보니 오빠다.
또다시 울리지 않는 걸 보니 '급한 일은 아닌가 보다' 여기고 뒷정리까지 하고 나서 오빠에게 연락하였다.
신호음이 한참을 가서 '설거지를 하고 있나'여기며 느긋하게 기다렸더니, 오빠 그냥 해 봤단다. 싱겁다.
잔정 많은 우리 오빠, 장남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려는 것인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괜찮다고 하는데도 굳이 나서서 부담스럽게 동생들을 챙긴다.
'약물바우' 취재는 언제 하러 올 것이냐를 시작으로
"요즘 뭐 해 먹냐?"
"우리는 파김치에 유채김치에 시금치나물에, 머위에, 풀밖에 안 먹는다" 며 반찬이야기로 빠르게 넘어갔다.
오빠는 그런 것 다 어떻게 하냐고 칭찬으로 물으니
'네 선생'한테 물어보니 다 나오더라며
"아버지도 유채김치 맛있다 하더라"
한 번 상에 올린 것은 치워버려야지, 두 번 올렸다가는 젓가락질 한 번 안 하신다며
까탈스러운 아버지의 식성을 맞추느라 애쓰고 있음을 자랑하듯 하소연하였다.
"풀만 먹다 지겨워서 어제는 고기 사 와서 구워 먹고, 한 번 더 구워 먹을 만큼 남았다" 하였다.
환갑 넘은 지 좀 된 우리 오빠,
노트에 매일 먹은 식단을 기록해 두고 가능하면 겹치지 않도록 식단을 구성하고,
영양 결손이 생기지 않도록 꼼꼼하게 정성을 기울인다.
이참에 말이 나왔으니 아버지가 칭찬하신 도라지 볶음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았다.
오빠 말에 의하면
물을 털어낸 생도라지 그대로 볶다가
물기가 잦아들면서 설익은 상태가 되었을 때 바로 꺼내면
아삭아삭한 도라지나물이 된단다.
그리고 기름 한 방울 두르지 않고 오직 물로 볶는다며 꿀팁을 전수해 주었다.
잇몸이 야물지 않는 나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식감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도라지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기름 한두 방울 두르고 볶아낸 도라지 부들부들 야들야들한 걸로 기억하는데 '아삭한 도라지'라 하여 궁금했었다.
예부터 아버지 동치미 무 한 입 베어물 때 사각사각 뽀도독뽀도독 맛있는 소리가 났다.
절삭력이 약한 내 치아로는 엄두가 나지 않던 것을 아버지는 작두처럼 싹둑싹둑 가볍게 잘라 드셨다.
아버지 옆에 있으면 맛있는 소리가 톡톡톡 터져 침샘이 폭발하였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환갑 넘은 아들이 해주는 아삭아삭한 도라지나물 효도받으며
오래도록 건강하게 우리와 같이 즐겁게 지냅시다.
* 도라지 무침입니다.
겨울에 먹던 생도라지는 달큼했어요.
설 대목장에 팔러 나간다고 밭에서 갓 캐 온 도라지 깊은 밤에 둘러앉아 도라지 껍질을 깠지요.
속 노란 생도라지 입에 넣고 "음~ 달다, 달어!" 사각사각, 잘근잘근 씹어 먹었지요.
나물은 제삿날에나 했던 걸로 기억되고 평소에는 도라지 무침을 주로 해 먹었지요.
새콤 달콤 도라지생채 진짜로 아삭아삭 소리가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