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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Apr 02. 2024

약물바우의 전설

탐 내지 마라, 우리 집 문화유산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쓸쓸한 가을날이나 눈보라 치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 빛



벼락더미 산중턱에 자리 잡은 우리 집 밤밭에는 밤나무 말고도 진귀한 것들을 가득 품고 있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을이랑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는 벼락더미는 

깎아 찌를듯하는 절벽을 펼쳐 든 00 산의 호국정신과 쌍벽을 이루는 정기를 내뿜어며 

범상치 않은 풍광을 자랑했다.

그 발치에 있던 우리 집 밤밭에는 벼락을 맞고 쩍쩍 갈라진 웅장한 바위와 돌멩이들로 가득하였다. 


우리 집 마당에서도 밤밭에 얼른 거리는 사람 그림자가 훤히 보였다.

옆자락에 있던 정침터에 밭일하러 가신 엄마, 언제쯤 오실까? 

마루 끝 기둥을 붙잡고 하염없이 벼락더미를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아, 

척박한 돌산을 아버지가 열일하여 밤나무밭으로 참하게 일구셨다.

신품종 밤나무 가지 접을 붙여 알맹이가 굵직굵직, 윤이 반질반질 나는 알밤을 생산하셨고,

단감나무를 서너 그루 들여와 새파란 감이 단맛을 내는 놀라운 광경을 보여주셨다.

봄에는 고사리, 깨치미가 뾰족 뾰족 올라왔고 

두릅나무, 산초나무, 엄나무, 오동나무, 반시감나무가 밤나무와 함께 꿈을 키우며 자라고 있었다.


밤밭 초입에 '비행기 기름 나무'라 불리던 지금까지도 이름을 정확히 모르는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 열매 맛이 고소하니 기가 막혔다. 

나무에 올라타기도 쉽고 재밌는 나무였는데, 

네다섯 살 무렵

내가 그 열매를 까먹고 설사병을 된통 맞자 아버지가 곧장 달려가 베어버렸다고 언니가 말하였다.

나에게 풍성한 추억거리로 남아있던 나무의 슬픈 역사를 여태 가해자인 나만 몰랐다니........ 

모두에게 괜스레 미안하였다. 

(나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최후를 맞은 이름 모르는 나무, 나무야 정말로 미안하다.)



밤밭에는 나무만큼이나 많은 온갖 바위들이 위험한 자태로 포효하며 제 자랑을 근엄하게 한다. 

넙적바위, 약물바위, 쉼터바위, 마당바위, 삐죽빼죽 성글성글 덩글덩글 돌덩이 등 등

바위들은 각자의 타고난 소명을 알고 있었으며, 그 소명을 과묵하게 충실히 수행하였다.


정침터 옆 밤밭 허리춤에 마당바위가 있다. 

정침터에 심었던 밀을 바위옆에 닦은 마당에서 도리깨로 타작을 하고,

온 식구가 마당바위에 둘러앉아 새참을 먹었다.

바위에 누워 

오동나무에 걸린 구름을 바라보며 강아지, 토끼 이름을 붙여 하늘에 동물농장을 만들었고, 

바위 아래, 

마당바위를 호위하고 섰던 줄딸기와 머루가 까맣게 빨갛게 익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마당바위에서 곧장 돌무더기 길을 지나 밤밭으로 들어가면 쉼터바위가 나온다.

쉼터바위에서 동생을 돌보며 배, 홍시, 머루를 채집하여 야금야금 먹었다.

쉼터바위의 주된 임무는 집결지였다.

각자 맡은 구역에서 한 앞치마 불록하게 허리가 휠 정도로 밤을 주워 비닐 포대에 두었다가 

"어이, 인자 집에 가자" 

아버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반갑게 들려오면 

밤밭 구석구석 흩어져 밤을 줍고 있던 우리 6남매 밤집게질을 일제히 멈추고, 

묵직한 밤자루를 둘러매고 옆에 끼고 끙끙거리며 쉼터바위로 재빨리 모여들었다.


*약물바우


쉼터바위를 지나 상그러운 골을 지나, 높이 올라가면 국보 1호급에 버금가는 약물바우가 나온다.

이름에서부터 영험함이 느껴지는 약물바위 정상에,

장엄한 바위의 위태로운 끝자락에 

하늘의 기운을 모은 소나무가 야트막하게 손가락을 뻗으며 자라고 있었다.

새가 물고 왔는지 바람에 실려왔는지 소나무 씨앗 하나, 

바람이 몰고 온 가냘픈 흙과 바위에 뿌려진 옅은 물 내음에 몸을 부비어 

바위틈에 발을 내리고 우뚝 서서 강인한 생명력을 과시하였다.


소나무 한 그루

날려가는 흙먼지를 부여잡아 발을 덮고서, 

하늘이 내린 옥수를 아껴 마시며, 

고고하고 푸른 절개를 가감하게 키우고 있었다.


밤을 줍다 말고, 약물바우 소나무 한 번 쳐다보며 허리를 펴고 "우와! 참, 멋지다!"

밤을 따다 말고, 약물바우 소나무 한 번 쳐다보며 땀을 식히고 "우와! 어떻게 저곳에서!" 매번 감탄하였다.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소나무를 품은 약물바우의 전설은 우리 밤밭의 자랑이자 정신이었다.


(아버지 태어나시기 전부터 존재하였다 하였으니 100년은 족히 되지 않았을까 사려 됩니다.

가로 세로 1미터 시야를 꽉 채우던 소나무의 생김새는 큰 바위 화분에 심어진 분재 식물 같았습니다.

가지를 바위에 낮게 드리우고 납작한 푸른 지붕으로 하늘을 떠 받들고 있었습니다.)


 * 약물바위의 약물


비스듬히 바위턱을 따라 암벽등반하듯 네발로 기어, 약물바위 정상에 오르면 조그만 웅덩이를 볼 수 있다.

하늘이 내린 비를 두 손 모아 촘촘히 모아두었다가 

허공을 가르다 지친 새, 목을 축일 수 있게 하고 

병든 인간의 육신, 그 물로 돌보게 하였다. 

약물바우는 지나가는 새도 사람도 모두가 머리를 숙이는 신성한 장소였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당신이 기억하는 그 어린 시절부터 

변변한 약 구하기가 쉽지 않은 동네 사람들 약물바우를 빈번히 드나들었다 하셨다.

바위 웅덩이에 고인 물을 떠다 마시고, 상처 난 피부에 바르며 만병통치약처럼 애용하였다 하셨다.

'효험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시면서 동네 사람들 모두가 신봉하였다 하셨다.


* 약물바우 약물


마른버짐, 부스럼을 달고 살았던 시절에 병증이 깊으면 

동네 사람들 아버지에게 약 해 먹을 수 있도록 소나무 가지를 구해달라 부탁하였고,

아버지 전지가위를 들고 약물바우를 위태롭게 타고 올라가 

소나무 가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최소필요한 만큼만 조심조심 잘라오셨다.

애지중지 손가락만 한 소나무 가지 서너 가닥, 정성 들여 삶아서 그 물을 마시고 온몸에 발랐다 하였다.

내 것 네 것 구분 없이 살던 고향이었지만, 

물은 떠다 마셔도 

소나무는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절대 손댈 수 없는 범접불가의 신성한 물건이었고,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어느 날, 

약물바우 소나무에 천지가 개벽할만한 불경스러운 일이 벌어졌다.(내 기억엔 중1쯤) 

하룻밤 사이 소나무 가지가 흉측하게 댕강 잘려나가 버린 것이었다. 

아버지 '누가 저래 천벌 받을 짓을 했냐'며 고뢰고뢰 고함을 지르셨고, 

정신적 지주였던 '소나무 피습 사건' 소식이 삽시간에 골짜기에 퍼져나갔다. 

해괴망측한 일로 동네 사람들도 술렁이기 시작하였고 평화롭던 마을 한동안 흉흉했었다.


등잔 밑이 어둡고,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더니 

수습도 되지 않는 엄청난 일을 벌인 이는 다름 아닌 집안 아재였다.

'어느 부잣집에서 약에 쓴다고 구한다' 해서 

톱을 들고 가서 굵직한 가지 하나를 송두리째 잘라 주었다고 하였다.

아버지도 예를 갖추고 영물처럼 대하는 소나무, 한쪽 팔이 댕강 잘려나가 버렸으니, 

그 현장을 목도한 아버지는 참담하였을 것이다.

 

아버지 반토막 난 소나무를 보고 부화가 치밀어 

"어데 할 짓이 없어 저런 몹쓸 짓을 하냐" 연일 고함을 벼락 치듯 하였으니  

바람을 타고 강 건너 마을, 집안 아재 귀에 까지 들어갔겠다.

우리 아버지 내지르는 고함 소리, 돌담을 넘기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산천수목이 벌벌 떨었다.  

도둑이 제 발 저렸는지, 집안 대소사로 모일 때마다 얘기가 나오니,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기가 뭣했는지, 아재 어물쩍 실토하더라 하였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말도 않고 멕가지를 싹둑 잘라가지고 볼품없이 만들어버리냐고,

안타까운 사정이 있다 했으면 내가 약에 쓸 만큼 가지를 잘라 줬을 텐데" 

괘씸하기가 이를 때가 없다며 그때의 상실감이 얼마나 깊었셨는지 아직도 그 일을 어제일처럼 얘기하신다.


"절대 남의 물건에 손대는 것 아니다, 엉큼한 짓을 해 되더니 오래 못 살고 가더라"


* 현재 약물바우와 소나무


그 이후로 

나는 약물바위 소나무를 가슴에만 품고 살았는데, 최근에 오빠로부터 뜻밖의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약물바위 사진이 필요해서 오빠에게 부탁하였더니, '바위에 소나무가 새롭게 자라고 있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오빠가 전해주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에 어이를 상실하여 귀를 의심하며 펄쩍펄쩍 뛰었다.


마을 주민이랑 가진 술자리에서 

그 주민이 말하길 '20여 년 전에 자신이 약물바우 소나무가 탐이 나서, 한 달간 공을 들여 뿌리째 캐 갔는데 

지금 어느 분재원에서 갖은 링거줄을 주렁주렁 매달고 잘 자라고 있다' 하더란다.


헐! 우리 동네가 언제부터 도둑놈 소굴밭이 되었다나.

내 마음에 영원히 숨 쉬며 피어있던 소나무의 행방을 알아서 기쁘기도 하였지만

나 또한 남의 물건을 탐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불같이 이는 감정, 괘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약물바우의 약물은 사시사철 변함없이 그 자리에 맑게 흐른다.

약물바우의 소나무 역시 사시사철 변함없이 자리를 푸르게 지킨다.

약물바우를 우러러보며 자란 우리 그 숭고한 얼을 맑고 푸르게 이어나간다.


* 현재 약물바우에서 새롭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입니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에도 흔들리지 않고, 남은 잔뿌리로 새 생명을 잉태한 소나무, 와~!!! 경이롭습니다.


* 우리 아버지 하시는 말씀

 어느 날부터 산에 사람들이 몰려와 밤밭에 나는 것들을 싹쓸이해 간다 하였습니다.

 마을에서 밤밭이 훤히 보이니, 

 수상한 그림자가 밤밭에 얼쩡대고 있어 들에서 일을 하다 말고 쫓아 올라갔더니 

 봉고차를 타고 떼로 와서, 밤을 한 자루씩 줍고서는 '주인 없는 땅인 줄 알고 그랬다'하더랍니다.

 그랬으면 밤을 내려놓고 사과하고 가면 될 것을 

'경계 표시를 안 해 둔 주인 잘못이다'하면서 우락부락 무섭게 덤비더라 하였습니다.

 경찰에 신고를 하였더니 한통속인지 증거물이라고 밤만 압수하고는 흐지부지 시간만 끌더라 하였습니다.

 밤도 잃고 시간도 허비하고 마음만 상했다 하셨습니다.

 개인 사유지라는 플래카드를 만들어 입구에 걸어 놨더니, 밤을 주워 천을 뜯어 가더라 하였습니다.

 '밤밭에 무엇이 있다' 아는 동네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몰상식한 짓을 하여, 아버지 뒷목 많이 잡았습니다. 


 "말도 마라, 말도 마라, 내 당한 것 생각하믄"

 "와~과신 독하더라, 다들 인두겁 덮어쓰고 우째 그런 짓을 하는지 몰라"

  아버지 혀를 껄껄 차시며 분에 겨워 지난날을 얘기하십니다.


* 약물바우의 약물과 소나무


  20여 년 묵은 밤밭 가꾸기 시작한 환갑 넘은 오빠,

  약물과 소나무를 한 컷에 담을 수 없냐는 동생의 물음에 '이제 겁이 나서 안 된다' 하더니 

  위험천만함을 무릅쓰고 이렇게 멋진 사진을 찍어 보내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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