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전쟁의 현장'을 읽고

2가지 관점으로 바라본 당신의 경험

by 중대장 김상준

지금까지 많은 회고록을 읽었다.


맥아더 장군의 이야기, 리지웨이 장군의 이야기... 돌이켜보니 궁금증이 하나 들었다. “왜 나는 대한민국 장군의 회고록을 읽지 않았을까?” 사실 기회는 있었다. 어렴풋이 떠오른 생도 시절, 학교에서는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 “군과 나”가 추천 도서이자, 권장 도서였다. 당시 책에 빠져 살았는데, 그 책을 읽지 않았던 것은, 지금의 나로서 신기한 일이다. 아무튼 나는 대한민국 장군의 회고록을 읽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마주한 책, 최영희 장군의 회고록 ‘전쟁의 현장’. 용기를 내어 읽기로 했다. 책은 그대의 청소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해방, 한국전쟁에서부터 군단장, 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까지 올라간다. 몇십 년이라는 기다란 세월이 300쪽이라는 한 권의 책에 담기어져 있었다. 시간순으로 나열되어 다행히도 누군가의 영웅 서사를 읽듯이 술술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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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은 담백했다. 요즘 나오는 책들에는 MSG가 많이 뿌려져 있다. 앞다투어 자신의 깨달음 그리고 교훈을 전달하고자,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듬뿍 얹어다가 우리 앞으로 가져다 놓는다. 그런 책을 읽게 되면 쉽게 동감이 되긴 하지만, 어쩐지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감칠맛이 나지만, 계속 먹다 보면 질리게 되는 맛이랄까. 하지만, 최영희 장군의 회고록은 구태여 자신이 전장에서 깨달은 것들을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겪은 전쟁의 형태를 글자로 담아 우리에게 보여준 뒤, 감상하라며 미사여구는 붙이지 않는다.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무장을 갖추기 위해서였지만, 전황으로 보아 이번 출동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기에 이 기회에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여러 가지 착잡한 심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본시 상대를 공격하려면 상대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어찌해서 적의 실상(전쟁준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침략할 수 있도록 우리의 허점을 백일하에 노출시켰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영희 장군은 전장에 나서기 전, 부모님께 드리는 하직 인사를 이토록 짤막한 문장에 담고, 이어서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밝힌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신이 죽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부모님께 드리는 어쩌면 마지막 인사를 길고 장황하게 표현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최영희 장군은 자신의 개인적 감상이 드러나는 부모님 하직 인사보다는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자신의 단상을 밝힌다. 독자인 우리를 그의 개인적인 감정의 공간이 아닌, 6.25 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게 된 계기를 생각하게끔 공동의 영역으로 이끄는 것이다.


“어느 날 사단이 춘천 북쪽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을 때 리지웨이 사령관이 예고도 없이 우리 사단을 방문하여 ‘이 전선은 귀 사단의 주방어선이기 때문에 더 이상 후퇴하면 안된다’라고 강조하여 나는 ‘반드시 방어할 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


"그런데 이 무렵의 부대 실정은 나를 비롯하여 3개 연대장이 새로 부임한 데다가 병력마저 대부분 신병으로 보충되어 신편부대나 다를 바가 없는 약체의 전투력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리지웨이 사령관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하루속히 사단 본연의 전투력을 발휘하기 위해 잠시도 쉴틈 없이 소총중대 등 말단 부대에 이르기 까지 방문을 계속하고 있었다.”


책 중에서 최영희 장군의 자신감과 담백함을 볼 수 있는 문장이었다. 자신의 예하에 새로 부임한 연대장이 3명이 오고, 신병으로 보충되었다며 부대가 다른 때보다 약함을 어김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에 관한 감상은 잠시, 최영희 장군은 자신이 말단부대까지 방문을 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탓하기보다 본인이 직접 발로 뛰면서 어떻게든 상급자인 리지웨이의 전략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짤막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여기서도 자신이 고생하고 열약한 상황임을 장황하게 펼치겠지만, 최영희 장군은 간단히 갈무리하며 마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무덤덤하게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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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최영희 장군의 담담함도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 있었다.


“그동안 사단 장병들은 많은 희생자를 내고 천신만고의 악전고투를 겪고 나서도 무엇인가 큰 잘못을 저지른 듯 실망과 체념 속에 있었으며, 심지어 나를 비롯하여 각급 지휘관과 참모들은 외부인사와 만나는 것조차 꺼렸던 것이 사실이었다. 훈장을 받고 내가 사단으로 다시 돌아와 평상시의 모습으로 비행기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참모들은 ‘또 군단에서 몹시 당했구나. 이번에는 진짜 군법회의에 넘겨지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중략)


"그동안 억울하고, 괴로웠던 심정에서 벗어났으면서도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말할 수 없는 공허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횡성전투를 평가하는 전사에는 ‘소를 희생시켜 대를 살린 작전’이라고 쓰고 있으나 희생을 좀 더 감소시킬 수는 없었던 것일까 하는 자생의 목소리가 내 마음속에서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그렇다. 결국 최영희 장군도 누군가의 지휘관이었고, 그토록 수많은 피해를 받은 횡성전투에 있어서, 담백했던 자신의 표현을 무너뜨리면서까지 감정적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꾹 참아왔던 당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특히, 자신의 부하를 아끼는 순간에서 그의 감정이 가감 없이 드러났기에 더욱 뜻깊은 문장이었다.


우리 할아버지 대의 희생이 있었기에 카페에 편하게 앉아 그대의 회고록을 읽고 있지만, 결코 편하게만 지나갈 수 없는 문장이었다. 수많은 휘하의 희생으로 훈장을 받게 되면, 휩싸이는 공허함은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결코 전쟁을 겪지 않은 우리는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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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책은 쫄깃했다. 책은 저자가 겪은 경험의 총체라고 했던가. 책의 절반이 넘는 당신의 전장에서의 경험은 결코 느슨하게 읽히지만은 않았다. 담백한 그의 서체에서 중간중간 뿜어져 나오는 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은 그대로 전달되어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병사들은 평상시에는 나의 언행을 주시하는 듯하더니 위기가 닥치자 슬금 슬금 나의 얼굴 표정을 읽는 것 같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고 입술을 깨물며 의연한 자세를 보이려 안간힘을 썼으나 진정되기는커녕 다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부하들은 지휘관을 주목하게 되며, 그의 표정을 통해 전황을 알려고 하기 때문에, 지휘관의 진가는 바로 이런 때 알 수 있다는 말이 실감됐다. "


" ‘그렇다. 내가 공포에 떤다고 해서 살고, 안 떤다고 해서 죽을 리가 만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치자 호 속에 풀썩 주저앉아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담배를 즐기지 않아서인지 곧 독기가 몸 전체에 퍼지면서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과연 이 장면을 섬세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과 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부하들에게 자신이 아무렇지 않음을 보이고자, 어떻게든 평소에 피지 않는 담배를 꺼내어 한입 무는 장면은 지독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한 내용을 글자로 담아내어 책을 보는 우리에게 하여금 ‘동감’하게 만든다. 당신이 이야기했지만, 이렇게 지휘관은 험난한 상황에서 우뚝 섬으로서 탄생한다. 이를 책은 어김없이 담아낸다.


“때문에 공격하다 장병들은 엉켜붙은 철조망과 지뢰를 밟아 대부분이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으며, 이들을 구출해낼 방법도, 여유도 없이 숨져갔다. 여기에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351고지를 점령했다고 해서 고성과 남강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351고지 서쪽 1km에는 이 고지보다 100m 이상이나 높은 월비산이 솟아있으며, 이를 점령하지 않는다면 351고지의 점령도 무의미했다.”


휴전협정이 막바지로 치달을 때, 휴전산 부근에서의 고지전은 이토록 치열했다. 이제 곧 휴전을 한다는 소문과 함께, 돌격해야만 했던 그때 당시 군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뢰와 철조망에 뒤엉키며 슬어진 그들의 영은 아직 DMZ에 그대로 남아있다. 최영희 장군도 이 순간 고뇌와 망설임을 수도 없이 반복하셨을 것이다.


.....


누군가가 ‘전쟁’이라는 키워드를 던지면, 나는 어김없이 최영희 장군의 회고록 ‘전쟁의 현장’을 추천할 것이다. 당신의 경험은 책으로 기록되어 우리 세대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 이 소중함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오늘도 철저한 국가방위를 위해 열심히 정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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