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시술을 하며 생채기 난 마음을 도닥이려 썼던 나의 기록은 어느새 4년 전이다.
정말 운이 좋게 시험관 1차에 예쁜 아들 쌍둥이가 찾아왔고, 남편과 같이 육아를 하다 나 홀로 복직 후 셋째가 생겼다. 셋째는 쌍둥이의 만 1년 되던 날 태몽으로 자신을 알렸다.
출근 준비를 하던 어느 봄날. 늘 일찍 일어나서 엄마가 챙기는 모습을 보는 우리 쌍둥이는 그날따라 늦잠을 잤다.
“여보, 나 고무나무 화분 꿈꿨어!”
당시의 우리는 이사를 준비 중이었고, 뭐든 입으로 가져가는 쌍둥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화분은 큰 고민거리였다. 다른 화분들은 미련 없이 당근으로 새 주인을 만나게 해 줬지만, 유독 예쁘게 자랐던 고무나무는 정말 보내기 싫었다.
신혼집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화훼단지를 다니며 고심 끝에 데려온 고무나무는 매년 새 잎을 보여주며 정말 잘 자랐고, 한 번씩 잎을 닦아주기도 할 정도로 내가 자그마한 애정을 쏟았던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잡고서는 아이들에게 화분 속의 흙은 새로운 탐구대상이었으므로 아쉬운 마음 가득 담아 당근으로 보냈다.
그래서였을까. 꿈속의 나는 새순으로 가득한 빛나는 고무나무를 안고 있었고, 남편에게 너무 예뻐서 보낼 수 없다고, 이건 진짜 우리가 키우자고 설득했다. 남편이 승낙하고 기분 좋게 꿈에서 깼다.
난 임신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내 꿈 얘기를 들은 남편은 바로 임신테스트기를 해보라고 했다.
소변이 닿자마자 변하는 임신테스트기를 보고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무수히 봤던 한 줄 과는 확연히 다른 두 줄. 이건 확실히 임신이었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첫 감정은 당황스러움뿐이었다. 출산 이후에도 임신 전과 다름없이 생리는 불규칙했고, 그때의 나는 3개월 전에 생리를 하고 한 번도 생리를 안 한 상태였기에 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복직 이후 셋째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지만, 셋째를 갖고 싶다면 다시 병원을 가야 할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두줄을 봤던 그날 아침은 남편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해서 셋째의 등장을 바로 축하해주지 못했다. 하루는 하루 종일 가슴이 ‘콩콩’ 뛰었다. 퇴근하자마자 병원에 가서 아기집을 봤다.
정말 임신이었다.
쌍둥이 때와는 다르게 모두 당황했던 나의 임신. 쌍둥이 키우면서 셋째는 또 어떻게 키우려고 하느냐는 주변의 걱정. 금전적인 문제와 현실적인 문제들..
그래도 나와 남편은 혼자서 씩씩하게 우리 곁에 찾아온 셋째를 마음 가득 축복해 주기로 했다.
맘카페에서 간간히 봤던 질문글이 있다.
쌍둥이가 힘들까요, 연년생이 힘들까요?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글을 쓴다.
백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셋째를 키우는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대답은 ‘답은 없다’이다.
왜냐하면 모든 육아는 힘들고, 아이들은 미치도록 예쁘기 때문이다.
쌍둥이는 어린이집에 갔고, 셋째는 잠이 든 시간. 후다닥 집안일을 해두고 짬 내어 글을 쓰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서 이 글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위로와 평안을 가져다주는 글쓰기를 위해 나는 조금 더 부지런히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