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았던 쌍둥이 육아+셋째 임신 기록

쌍둥이에게는 재접근기가 왔고, 나는 조기 수축이 왔다.

by 아카시아

30대 중반의 나는 두 번의 출산을 했고, 세 아이들의 엄마이다.


고위험 산모로 분류되곤 하는 쌍둥이 임신 때도 내 컨디션은 크게 나쁘지 않았었고, 남산만 한 배를 안고 출산 2개월 전까지 회사에 다녔다. 하지만 쏟아지는 잠과 배뭉침은 어쩔 수 없었기에, 점심시간 1시간 중 30분은 낮잠을 자고 남은 30분간 밥을 먹고 일했다.

입덧약의 하루 총량은 4알인데, 4알을 먹고도 회사에서 구토를 하고, 밤이 되면 더 힘들어져서 몇 날 밤을 울곤 했다.

출산 2주 전에는 갑자기 시작된 임신성 치은염으로 4시간마다 타이레놀을 먹으며 치통을 버텼다. 치과에서는 임신 후기 임산부에게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저 가글과 타이레놀로 버텼다.


출퇴근의 힘듦은 휴직 후 좋아졌고, 입덧 역시 휴직하며 잠잠해지기 시작해서 먹는 약의 수를 조금씩 줄일 수 있었다. 뱃속 아기들이 자라는 만큼 자궁경부 길이가 급격히 짧아져서 마지막엔 거의 누워만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예정된 수술 날까지 잘 버텨주었고 무사히 태어났다.

휴직 시점 쌍둥이 임신 배 크기..어떻게 출근했지 싶네

쌍둥이 임신은 수월했다고 생각됐는데, 이렇게 쓰고 보니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셋째를 가졌기 때문에 더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겠노라 마음먹었던 것도 잠시뿐. 심한 입덧과 커가는 아이들의 각종 성장통들로 회사를 다니는 것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눈물을 참으며 입덧을 버텼고, 퇴근 후에는 쌍둥이 목욕만 후다닥 시키고 누워서 잠들기 바빴다.

아이들 목욕은 이른 시간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는 내가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서 무조건 내가 했다. 그때까지도 대화가 가능한 아이들이 아니었어서 나 혼자 이것저것 묻기 바빴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남편은 아이 돌봄과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점점 지쳐갔다. 괜찮냐고 물으면 늘 괜찮다고 했지만, 괜찮아 보이지 않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들은 마냥 해맑고 즐겁게 잘 자라고 있는데, 내가 사랑하는 남편의 얼굴에선 혈색보단 병색이 짙어져 갔다.

그래서 셋째 임신 3개월 차에 휴직을 결정했다.


휴직 전 마지막 퇴근길은 구토로 범벅될 만큼 내 몸도 많이 힘들었다.

남편은 매일 이사할 집 근처의 어린이집으로 아이들을 등원시켰다. 차로 왕복 1시간 반 거리를 라이딩하러 가면 나는 점심때까지 잤고, 오후에는 작은 집안일도 하며 남편과 시간을 보내다가 아이들을 하원시키러 갔다. 남편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했다.

내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아이들 등원 후 맛있는 음식도 먹으러 다니고, 영화도 보면서 꼭 아이들이 없던 시절처럼 데이트를 했었다.

조기 수축이 오기 전까지는 커피도 하루에 한잔정도 마셨었다



쌍둥이라 1개월 일찍 태어난 아기들은 2킬로 대로 아주 작게 태어났다. 이 아기 참새 같은 작은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걱정했던 것도 무색할 만큼 아이들은 평균치를 웃도는 체중을 가진 건강한 아이들로 자랐다.

셋째를 임신하며 최대한 아이들을 들고 안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일상생활 중 아이들을 드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생겼고, 배가 조금씩 뭉치기 시작했다.


거기다 임신 후기를 달리던 여름은 수족구가 유행하는 계절이었다. 어린이집 생활을 하는 쌍둥이는 차례로 수족구에 걸렸다. 한 명이 걸리고 나을 때쯤 다른 한 명이 수족구에 걸려서, 거의 2주 정도 어린이집을 보내지 못한 시점에 추석이 되었다.


양가 어른들은 몇 시간씩 떨어진 타지에 살고 계시고, 아직 다들 일을 하시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육아에 도움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추석 연휴 때는 몸이 무거운 딸을 위해 친정 부모님께서 우리 집으로 와주셨었다. 누워서 엄마가 해주는 음식만 받아먹고, 아빠와 동생들이 쌍둥이랑 놀아주는 모습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잠든 새벽, 가진통이 느껴졌다.

새벽 3시 반에 급히 찾은 병원에서는 출산하기 안전한 주수가 아닌데 조기 수축이 온 것이므로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추석 연휴 중에는 친정 부모님이, 추석 연휴 이후 며칠간은 시어머님께서 연차를 쓰시고 올라와서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덕분에 조기 수축은 잘 잡힌 채 퇴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출산 2주 전, 아이들은 두 번째 수족구에 걸렸다. 하하.


잠들기도 버거운 시기였는데, 아이들과 진하게 시간을 보내고 출산하러 가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부둥부둥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무사히 수술 일자에 맞게 출산했다.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 철저히 계획된 쌍둥이 임신도, 극한의 확률이라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자연임신 셋째도 어느 하나 쉬운 것은 없었다.

더군다나 셋째는 출산 전날까지 입덧약을 먹었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 과정 중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늘 ‘입덧’이라고 말한다. 쌍둥이도 셋째도 큰 이벤트 없이 무사히 잘 출산했기 때문에 입덧이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라는 것에 감사하기도 하다. 이제 입덧했던 기억도 육아에 떠밀려 기억의 저편에 희미하게 자리하겠지.


아들만 셋이기에 딸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아들 셋을 육아하는 지금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행복한 감정으로 충만하다.

피곤하고 지쳐서 커피 없이는 버티기 힘든 일상이긴 하지만, 매일 조금씩 열심히 자라나며 벅찬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아이들을 육아하는 게 나는 정말 너무 좋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아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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