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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시아 Jul 03. 2021

괜찮아, 그래도 불임은 아니니까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범한 날들을 보냈지만

며칠 뒤 남편이 퇴근길에 안겨준 꽃다발과 편지를 받고 엉엉 울었다.


얼마 전 우리에게 왔던 아이.
아직 귀는커녕 심장도 생기기 전이라서 우리 목소리도 못 들었겠지만, 온 가족을 들뜨게 한 만든 귀한 생명이었지.
사실 나도 전혀 실감이 안 났는데 아버님이 태몽을 꾸셨다는 말을 듣고 약간은 기대했던 것 같아.

자기가 불안해할 때 나도 불안했고, 슬퍼할 때 나도 슬프더라고.
새벽에 자기의 표정이 너무 슬퍼 보였는데, 애써 참으려는 느낌이 들었어.
자기가 아이를 기다리며 느낀 기대와 불안, 기쁨과 슬픔 같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
기쁘면 웃고, 설레서 입이 간질간질하면 설렌다 말하고, 슬프면 울어도 돼.
감정을 참지 말고 솔직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나에게만은.

그리고 절대로 자기 잘못이 아니니까 혹시라도 자책하지 말고.
이번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다음에 우리에게 오는 생명은 함께 축복하고, 지켜주고, 잘 살아보자.


‘우리’의 일인데 나 혼자만 기쁘고 슬펐던 것 마냥 혼자 참고 있었던 것 같아 남편에게 미안했고,

이런 건 임신이나 유산 축에도 못 끼니까 슬퍼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참고 있던 나에게 미안했다.


눈물이 계속 나와서 편지를 읽다가 멈추었다를 반복했는데, 마지막 부분을 보고 웃었다.

귀엽고 엉뚱한 남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냥 있길래 붙인거야. 아무 의미 없어. ㅋㅋ



생리 이틀째, 병원에 방문하여 받은 피검사의 수치는 ‘2.7’이었다.

담당 원장님의 휴진일이라 다른 원장님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원장님은 잠깐이긴 했지만 임신이 되었으므로 몸에 호르몬 변화가 생겼을 것이라 하셨고,

몸에 무리가 갈 수 있으므로 이번 달은 쉬어갈 것을 권하셨다.

‘화학적 임신’ 후 쉬는 기간 없이 바로 임신을 시도했다는 글을 보기도 했고,

한시라도 빨리 아이를 갖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바로 시도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렇게 기록해두셨다.

병원을 옮기면서 받은 ‘외래 진료 기록부’에서 본 ‘강력’


임신을 위한 우리 부부의 노력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과정이 진행될수록 내 몸은 점차 나이 들어가고, 돈은 무서운 줄 모르고 새어나간다.

시간도 돈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것은 기약이 없는 일에 마음을 쓰는 것이다. 언제까지 써야 할까…


짧았던 한 번의 임신이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내가 ‘임신을 못하는 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직 임신이 되지 않은 것일 뿐이다.


이 한 번의 반짝임을 붙잡은 채

나는 아직 ‘임신 준비생’의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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