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다.
오늘 본 두 줄이 내일 당장 한 줄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배란통, 생리통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배 통증이 있어서 두줄을 본 뒤에도 계속 불안했다.
몸을 움직이면 배가 아팠고, 조금이라도 크게 웃으면 누가 양쪽에서 줄다리기라도 하는 듯 배가 당겼다.
아직 병원 가기엔 이르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검색뿐이었다.
임신 초기에 자궁이 커지면서 당길 수 있다고 하는데, 그 글들에서 보이는 ‘초기’는 최소한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한 다음부터인 것 같았다.
내 아이는 이제 막 착상한 것 같은데… 벌써 배가 아파도 되는 걸까 겁이 났다.
그러면서도 아침부터 속이 메슥거려 밥을 못 먹었던 것은 ‘입덧’ 증상일 거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내가 예민해서
입덧이랑 배 통증이 벌써 느껴지는 거야.
아이는 무사해.
찬장에 쌓아둔 임신테스트기 중 하나를 꺼내서 한번 더 테스트했다. 여전히 보이는 2줄이 나를 안심시켰다.
임신 극초기에는 장시간 차를 타는 것도 조심하는 게 좋다고 하지만,
결혼 후 첫 명절이었고 내 안에 뿌리내린 아이는 튼튼할 것이라 생각했다. 막연히.
빨리 손주를 보고 싶다는 친정 부모님과는 달리, 시부모님은 아이 계획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셨다.
아직 결혼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기도 했지만, 나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시부모님께서는 나에게 피곤하지 않은지, 남편이 운전하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지는 않았는지 물으시며 축하해주셨다.
감사하면서도 왠지 부끄러웠다.
시댁에서의 첫 명절은 임신 소식으로 가득 찼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다정한 시아버님은 곳곳에 전화를 해서 내 임신 소식을 알리셨고, 좋은 것 챙겨 먹으라고 용돈을 쥐어 주셨다.
모두 함께 즐거운 와중에도 배가 아파서 조금 일찍 잠을 청했다.
이른 새벽 눈이 떠졌고, 챙겨 온 임신테스트기를 꺼내 화장실에 갔다. 어제보다 선이 옅었고 자고 있는 남편을 흔들어 깨워서 보여줬다.
남편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옅어진 테스트기와 배 통증은 나를 불안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내가 불안하면 아이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할 것 같아서 친정에 내려가는 날 아침에는 테스트를 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가 어려웠지만 기뻐하시는 친정 부모님을 보니 가슴이 먹먹했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저씨였던 아빠는 아주 예전부터 아빠는 손주를 보고 싶어 하셨다.
내가 집으로 가는 날,
아빠는 하얗고 큰 뱀이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는 태몽을 꾸셨다. 꿈이 생생했고, 큰 뱀이라면 무서울 법 한데 전혀 무섭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런 아빠에게 내 임신 소식은 집안 대 경사였고
시아버님이 그러셨듯 아빠도 친척들에게 안부 전화 겸 임신 소식 전화를 돌리셨다.
“성! 내가 할아버지가 된다네!!!”
아직 초기라 그렇게 소문내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지 못했다.
난 원래 간장게장을 좋아한다.
쉽게 상에 오르는 음식은 아니지만, 고향이 바다 근처라 그런지 친정에 가면 엄마가 미리 사두었다가 꼭 내어주신다.
집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 열심히 맛있게 먹었을 뿐인데, 그게 또 부모님 눈에는 임신해서 잘 먹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외할머니 댁에 가서도 게장을 잘 먹었는데 모두가 게장을 먹는 내 모습을 지켜보았다.
'임신해서 게장이 당기나 보다.'
나 빼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가족들의 축하가 버거웠지만 티 낼 수 없었다.
다음날엔 배 통증이 덜했다.
며칠간 아팠던 배가 아프지 않으니 또 불안해져서 아침 일찍 남편과 약국에 다녀왔다.
임신테스트기엔 내 불안함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더 옅어진 두줄.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닌데 왜 소문내냐며 괜히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엄마는 병원에 가서 피검사로 확인해보면 안심이 될 거라고 걱정 말라고 다독여주셨다.
초음파 상 아기집이 보이지 않았고, 피검사 두 시간 뒤에 결과를 들었다.
72도, 720도 아닌 7.2랬다.
며칠 뒤에 다시 피검사를 받아보고 피검사 수치가 두배 이상 높아져야 임신이라고 하셨다.
피검사 수치(hCG 농도)가 10 미만이면 화학적 임신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화학적 임신
일시적으로 배아가 착상되어 임신테스트기엔 양성 반응했지만, 자궁벽에 붙어있지 못하게 되어 임신이 종료된다. 초음파 상 아기집이 보이지 않는다.
임신 카페에서 수없이 본 유산 관련 글이 떠올랐다.
난 착상이 늦어서 수치가 낮은 것이고, 이틀 뒤엔 조금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연휴 마지막을 보냈다.
가족들의 축하로 덮어 두었던 내 불안감은
다음날 새벽 붉게 쏟아져 침대 시트를 적셨다.